교양의 행방

안 보이지롱

by 이븐도





눈 감으면.






가진 못된 버릇 중 하나는 연락을 잘 안 받는 것이다. 보통 말하는 잠수, 가 그건 줄 나중에 알았다. 카카오톡은 늘 나한테 숙제였다. 노트북을 열어 허리를 편 채 앉아 하루치의 연락들에 답장을 하는 게 대학생 때의 일과였다. 나는 스스로도 그게 무슨 허세인가 싶었지만 허세라기에는 그냥 성향 같았다. 남자친구를 만날 때도 사실은 연락하는 게 너무 귀찮았고 싫었고 사실 안 받고 싶었던 걸 보면. 침입 같았다.




이브닝 시작. 데이번과 더블라운딩을 도는데 환자가 물을 떠다 달라고 했다. 그는 찬 물이 아니면 안 마신다. 나는 급하게 물통에 물을 받아 오다 그걸 떨어뜨렸다. 컵이 깨져 복도 전체에 물이 흥건했다. 흘린 건 닦으면 되는데 문제는 물통.

나는 일을 시작해야 했고 그런 걸 사원님께 사다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환자들이 놓고 간 물건이나 뭔가 남아도는 걸 넣어두는 공간에서 빨대컵을 하나 본 것 같았는데 막상 보니 없었다. 아직 퇴근을 못 한 차지한테 가서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요.. 라고 불쌍한 척 말했다.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비죽비죽 났다. 말하면서도 알았다. 이걸 타개할 방법은 그녀가 의료기상사에 다녀오는 것밖에는 없다는 걸.


그녀는 내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야. 너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물통 사 오라 이거야? 어? 야. 얘봐, 이제 나한테 이런 것까지 시킨다아? 했다.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요.. 진짜 죄송해요. 선생님. 근데, 근데 뭐? 너 뭐 방법 있어? 없잖아! 나밖에 없잖아! 야! 나 없다. 나 찾지 마. 나 얘 시킨 심부름 시키러 갔다 와야 하니까. 그리고 그녀는 호방하게, 사실은 안 호방하게 헐레벌떡 뛰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환자에게 소리를 많이 질렀다. 그는 얼굴이 노랗다. 몸도 노랗다. 심슨만하다. 입원 왔을 때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갈수록 더 했다. PTBD를 한 번 꽂고, 또 한 번 꽂고, 다시 하나 더 꽂았는데도 나아지질 않았다. 그런데 자꾸 집에 간다고 했다. 그만큼이나 나이가 많은 아내는 10분에 한 번씩 전화를 했다. 우리 아저씨 잘 봐주세요, 냉장고에 과일 끄내 먹여 주세요, 수술은 절대 안 한다고 해, 자기야. 오늘은 과일이 없던데. 주스, 토마토 주스 꺼내 먹여 주세요. 안 먹는대두 주세요. 왜 전활 안 받았어어, 라고 끊임없이 말했다.


그는 머리 가르마가 잘 잡혀 있었고 머리숱이 연세치고도 많았다. 아마 목사 같은 거 아니었을까 생각될 만큼. 편견이라면 편견인데 그런 외형이었다. 교양 깨나 있어 보이는 생김새. 그런데 그걸 병원에서도 찾으려 해서 문제였다. 교양이나 존엄 같은 거. 11월, 이 병동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는 여기서 존엄을 찾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쪽팔리지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왜냐면 그게 조금도 없어 보이는 곳이라서.




그는 배가 집채만하게 부풀어 옆으로 돌아눕는 것도 힘겨워하는 주제에 자꾸만 침대에서 일어나 소변기를 찾았다. 기저귀에 보시면 된다고, 보시고 바로 말씀해 주시면 갈아드린다고 몇 번을 말했다. 그는 그 정도 말을 잊을 정도로 인지가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매일매일 그래야 했다. 고집이었다. 나는 짜증을 냈고 소리를 질렀다. 왜 말은 안 들으세요, 환자분. 왜 말 안 들어요? 지금 넘어지신다구요. 옆에 이것도 있고, 이것도 두 개나 꽂혀있는데, 이거 풀 줄 아세요? 이거 여기 있는데 다 당겨지게 반대로 앉으셨잖아요. 혼자 움직이기도 힘드시면서 왜 제 말 안 들으세요? 그럴 거면 왜 오셨어요. 여기. 여기 어디예요? 병원이잖아요. 왜 병원 사람 말 안 들어요?


그러면 그는 그랬다. 처녀한테 보이기 미안해서 그렇다, 고. 일주일쯤 지나자 그는 내가 그렇게 입을 열라치면 다 노래진 얼굴로 알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게 더 열받았다. 나는 본인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제발 안 넘어지기만을 바라는 건데. 미안? 당신이 민망한 걸 왜 거짓말하세요, 라고 하고 싶은 걸 내 목소리가 복도를 다 넘어가 들릴 걸 생각해 참았다.








공항과 병원의 공통점. 외부인과 내부인이 극명히 구분되고, 떠날 사람들이 드나든다는 것. 며칠간 나는 출국하는 날 공항에서 내가 여직원에게 짜증을 잔뜩 냈던 걸 곱씹었다. 그 여자한테만 그랬던 게 아니라 그 날 아침 공항버스로 가는 택시에서도 그랬고 한 달 전의 또다른 택시에서도 그랬다. 나는 내가 여권과 항공권에 이름을 다르게 써서 여권 인식이 안 되고 있다는 것도 가서야 알았다. 사람 셋 정도를 거치고 어딘가를 한 바퀴 다 돈 후에야 한 직원 앞에 당도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조금 많아 보였다. 일곱 시가 조금 넘은 공항.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벌써 피곤해 보였다.


내가 상황을 설명하자 그녀는 이쪽으로 오시는 거 아닌데 제대로 알고 오신 거 맞냐고 물었다. 나는 화날 때 그런 말투를 썼다. 내가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어쨌든 또 내가 손은 대야 하고 내 앞의 사람은 권한도 없는 내게 뭔가를 또 바라고 있을 때. 나는 화가 났고 짜증이 났다. 나는 그 여자의 표정을 그렇게 읽었다. 그래서 표정을 표독하게 만들었다. 눈을 더 싸가지 없게 떴다. 기에서도 여기로 가시라고 해서 왔는데 또 가라는 거냐고. 그러면서 저한테 그렇게 물으시는 거냐고.




그러자 그녀는 얘가 보통 진상이 아닐 수 있겠다는 눈치를 깠는지 한숨을 참았다. 이후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어딘가로 연락한 다음 몇 분을 서서 기다린 채 어떻게 하면 된다는 안내를 하고서는, 다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원래는 저쪽에서 해결하시는 게 맞는데 이쪽으로 오셔서 해드린 거예요, 안녕히 가세요. 나는 그 말투와 표정으로 알았다. 내 잘못 아니니까 어디 가서 또 지랄하지 마라는 뜻.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나도 그래본 적 있어서.


택시에서나 거기서나, 트립닷컴 관계자들이나, 내가 여행 내내 마주친 사람들은 죄다 말단이었다. 딱히 뭘 해줄 수 있는 힘은 없지만 그걸 계속 응대해야 하는 사람들. 나는 그 직원들을 보면서 병원에서의 나를 다시 봤다. 알고 그랬다. 열받아서. 어디서나 나한테 난리치는 인간들 뿐이었고 그 사람들은 더 큰 권위를 가진 사람들 앞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내 앞에서만 그랬다. 그러라고 있는 사람이다, 이거지. 그래서 일부러 짜증을 냈고 항의를 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일은 아닌데. 그리고 알았다. 내가 병원에서 느꼈던 진리 아닌 진리. 지랄하면 해준다. 예외는 없다,는 것.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저 문제 덩어리를 치우기 위해서라도 해준다는 것.


바깥에서도 다를 건 없는 것 같았다. 왜 간호사 애가 입원하면 리마인더를 써놓고 더 경계했는지 거기서 더 잘 알게 됐다. 그런 지랄을 겪어봐서 더 효율적으로 반복할 수 있는 인간들이라서. 물론 아닌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타산지석. 남의 흉한 모습을 보고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것. 어느새 사라졌다. 본가 지하철역으로 아빠가 데리러 왔다. 옆자리의 엄마는 뭘 보자기로 덮어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멥쌀인데 양이 너무 적어 찾아갔던 방앗간에서는 안 해준다고 퇴짜를 맞았다고 했다. 원래 그렇게 해? 원래가 어딨냐, 자기 맘이지. 기계 다 닦았다고 안 해준대. 지금 두 시밖에 안 됐는데 닦았다고? 1키로밖에 안 된다고 하니까 안 된대. 뭐야, 그래서 그냥 집 가는 거야? 그래야지, 어떡하냐. 안 그래도 일하기 싫은 표정이었어, 아저씨.

아니. 그럼, 뭐라고 했어? 뭘 뭐라고 해. 본인이 안 하겠다는데. 그건 그거고, 왜 말을 그렇게 해. 다 닦았다고 가라는 게 어딨어. 그냥 하기 싫은 거지. 화내서 뭐하냐. 뭐하냐고?

그리고 그 날 저녁 엄마와 아빠는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








그 노란 할아버지의 맞은편에는 마흔 살쯤 된 사람이 한 달 넘게 입원했다가 떠났다. 그는 대만에 있던 병원에 입원했다가 항생제를 맞고 검사를 하다가 집에 갔다. 건축사에서 일하는 사람이었고 타오위안을 따오위안, 이라고 했다. 그럼 중국어 잘 하세요? 했더니 생존용으로요 하고 허허 웃었다. 십 년 전인가는 말레이시아에 있다가 들어와서 무슨 수술을 받은 기록이 있었다. 그는 퇴원 날과 그 전날 모두 내게 커피를 내밀고 고맙다는 말도 안 듣고는 커튼을 치고 돌아섰다.


그리고 그 자리로는 83세 할아버지가 생검을 하러 왔다. 당연히 낙상 고위험군이라 생각한 데이번은 매트를 깔아놓고 내게 인계를 줬다. 그러나 그는 아주 튼튼한 사람이었다. 눈이 빛났고 기억력이 좋았다. 노란 할아버지와 그 옆의 물을 하마처럼 먹고 소변은 그만큼 더 보는, 다리에 봉와직염이 크게 생겨 거동을 못 하는 환자를 보느라 계속계속 움직이고 뛰고 소리지르고 주의를 주는 나를 보고 그는 저녁쯤에 이야, 고되네. 고돼. 밥은 안 먹어요? 했다. 그러다 아몬드 드링크에 빨대를 꽂는 나를 보고 본인의 빵을 떼 가라고 내밀었다.

사양했더니 손 씻고 떼어먹은 거라 괜찮다고 했다. 예의상 조금 뜯었더니 내가 갖다준 플라스틱 컵에 그걸 뚝 떼어 건넸다. 나, 이거 안 써서. 괜찮어. 하면서. 빵 먹으면 살쪄요, 했더니 그렇게 먹고는 안 돼. 지금 일곱 시잖어, 했다. 미스윤, 미스윤 하면서 내가 일하는 전산 화면과 사원증 뒤에 적힌 전화번호들을 흥미롭게 쳐다봤다.






집에 와서는 정말 먹고 자기만 했다. 눈을 뜨면 출근 생각에 죽고 싶었다. 내가 한 잘못들과 스스로가 싫은 마음과 그렇다고 더 친절히 해줄 수는 딱히 없었을 것 같은 상황들이 또 반복인 게 싫었다. 승영언니는 매일매일의 카톡을 내가 확인하지 않자 문자를 했다. 솔로콘서트 티켓팅 인증 날이었다. 그건 필요한 거니까 보는 대로 답장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내가 사는 동네의 메가커피에서 파는 음료수 메뉴를 말하며 나갈 때 연락을 달라고 했다. 나중에 할까 하다가 그조차도 귀찮을 것 같아 나갔다. 그러는 데에 한 시간이 걸렸다. 갔더니 그녀는 케이크도 한 조각 시켜 놓았다.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소아과에서 나는 그래도, 필요한 만큼만 나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애들은 어차피 엄마아빠 품 속에서도 울었고 처치팀 사람들 앞에서도 울었고 그냥 집에 갈 때도 울었다. 나만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나만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그 노란 할아버지가 불쌍했다. 트리돌로는 사실 아픈 게 안 가라앉는 것 같았다. 가운 입은 사람만 보면 저 사람이 의사냐고 나한테 물었다. 의사라고 해도 그 사람 담당은 아니었고 다른 사람의 동의서를 받으러 온 전담간호사인 경우가 더 많았지만.


나는 매일매일 집으로 오면서 노티해서 페치딘을 줄 건지 물어볼걸 그랬나 생각했고 얼굴 한 번 안 비치는 그런 사람을 주치의로 만난 그가 불쌍하다고 느꼈다. 거기다 나같이 떽떽거리는 간호사와 하루종일을 부대끼게 된 것도. 그는 이제 왜 이렇게 감금을 시키는 거냐고, 지레 죽이라고 말했다. 할 말이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싫었다.

어차피 그런 생각을 안 해도 그다음 날도 출근이었고 내 못난 모습들은 이미 많았다. 눈을 감자고 생각했다. 어차피 아무한테도 말 안 하면 모르는 일. 공항에서 그 직원에게 그런 것도, 택시기사의 말에 몇 배는 더하게 되갚아주듯 성질을 부린 것도. 그 환자를 좀더 유하게 대하지 못한 것도. 그러자 그나마 오프가 견딜만 했다.








대만에서 사 온 다른 책. 백 가지의 아르바이트를 해보며 느낀 점을 다룬 책. 그는 두세 가지의 육체노동을 해본 후 처음으로 서비스직을 하게 된다. 백화점인가 큰 상가 아래서 '헬퍼'로 일하는 것. 그리고 그 날의 마지막. 다시는 하지 않을 일이라고 했다. 몸이 힘들면 잠이 잘 왔지만 감정의 더께를 다 쓰고 온 날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고.

나는 내가 그 말에 위로 같은 걸 받은 것 같아서 그조차 싫어졌다. 그런 데에 이입할 자격이 있나 싶어서. 거기서 그 공항 직원 얼굴이, 그 날 아침이, 내가 병실에서 했던 행동들이 다시 생각났기 때문이다.




친절하게 일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건 너무 자주 확인해서 기정사실이 됐다. 그럼 나는 노력해야 하는 건데. 뭘 위해서 왜 노력해야 하나. 간호사라서? 이런 일이라서? 나는 이 직업의 이름조차 싫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전형적인 명분이 아니면 납득이 안 되는 지경이 됐다. 뭘 찾겠다는 이유는 생각보다 더 거창하고 멀고 지나치게 수준이 높은 거였다. 나는 내가 그래도 조금 따뜻한 구석이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냥 이중성이 심한 역한 인간이었다.


인간관계가 다 없어지면 더 편해질까 생각했는데 그걸 뚫고 들어오는 이들이 있었고, 선의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차지는 내가 치킨 기프티콘을 보내자 본인이 거절의 여왕인 걸 몰랐냐며 니가 미안해할 것 같으니까 컵값은 받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래서 그 다음날 빵을 몇 개 사갔다. 그녀는 그건 받았다.





언젠가 여유나, 부드러움을 찾는다 해도 그게 내 기본값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고 느꼈다. 말을 안 하고, 티를 안 내면 모르는 일이 되고 없는 일이 되니까. 렇게 흘려보낸 날들이 이미 많으니까.


착각하지 말고 조용히 살아야겠다.

나는 이런 사람이므로.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0화정병제례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