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병으로 덮
힐 리가.
아프진 않다. 아플 것처럼 먹었다. 라면을 3일 내내 먹었다. 친구 탓에 그녀와 나이트가 겹치는 날이면 자동으로 라면이 생각나는 못된 버릇이 생겼다. 이선민 습격 영상에서 그들이 너구리에 계란을 넣어 먹었다. 그게 무척 궁금했다. 근데 또 돈 주고 사긴 싫었다. 그래서 병원에서 먹었다. 어차피 다음달 월급에서 빠지겠지만. 직접 슈퍼에서 사는 것보다야 사원증 띡 갖다대는 게 좀 덜 손해인 기분
필사 노트. 작년 솔로콘서트 굿즈였다. 그가 고른 질문들과 그것과 어울리는 노래 가사가 적혀 있다. 군대에 있을 때 정신을 차려 보니 본인이 쓰는 말들이 죄대 군 용어나 표현뿐이라는 게 느껴져 필사를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배송상의 문제로 2월쯤인가 시작된 그 일정은 이제 아마 60일쯤을 넘겨 간다. 해야지 해야지 늘 생각했다.
잔뜩 밀린 채 아무 데나 펼친 페이지. 언제 마지막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나요? 라는 질문. 나는 그 때 출근 버스 안을 떠올렸다. 데이, 이브, 나이트 다. 버스가 다리를 건너 병원이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마음이 조여들었다. 근데 이건 그딴 걸 묻는 질문이 아니잖아. 그런 기분으로 이걸 할 순 없다고 느꼈다. 좀 상태가 괜찮아지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날은 꽤 긴 시간 오지 않았다.
딸이 면회를 왔다. 전원을 가야 해서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져왔다. 슥 보니 그녀를 포함해 그의 딸은 셋이었다. 그녀는 십 분도 채 있지 않다가 떠났다. 밤새 내내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 를 외치는 통에 처치실에서 재운 환자였다. 나이는 겨우 70. 오늘은 좀 괜찮은가 했다. 당연히 내 착각이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여기 어디예요, 지금 낮이예요 밤이예요, 같은 질문에는 그래도 어설프게나마 대답했다. 그리고 끝도 없이 아줌마와 은영이를 불렀다. 같은 병실의 다른 환자들도 싫은 티를 냈다.
대낮에는 환자를 처치실로 안 뺀다고 했다. 그렇다고 벌써 진정제를 놓기도 그랬다. 노티 사유? 약을 줘야 하는 이유? 생각나지 않았다. 뭐라 그래, 시끄럽다고? 누가, 내가 듣기에? 맞잖아. 근데 이런 거 내가 여기 처음 와서 제일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그는 양 팔이 침대에 묶여 있었다. 풀어달라고 했다. 계속해서 풀어달라며 욕하고 소리쳤다. 따님 몇 분이세요, 라는 질문에 셋. 이라고 답하면서도 풀어달라고 했다. 안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안 돼요. 라는 말에는 그럼 화장실은 어떻게 가냐고 잇몸뿐인 입으로 웅얼거렸다. 짠했다. 딸이 몇인지는 기억하면서 소변줄에 기저귀를 한 본인 처지는 몇 번을 가르쳐 줘도 못 기억한다니. 짠한 건 짠한 거였다. 두 시간쯤. 반성했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 여튼 반성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사람들은 한때 다 보통의 인간들이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그리고 오후에 그는 또다시 외마디 고성들을 질러 대다 내가 그의 앞에서 어떤 게 필요하신 거냐고 물으면 합죽이처럼 주름진 입을 다물고서 대답을 안 하기를 반복했다. 정신병이 따로 없었다. 그 말고 내가. 사람들은 단지 잠을 못 자서 향정신성 약물들을 복용하기도 하는걸? 그럼 나라고 정신병이 없을 리가. 이대로 진료를 본다면 나도 몇 종류쯤은 처방받아서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예민함, 피해의식, 열등감, 다시 예민함. 병이 별건가? 약 먹으면 병이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싫은 점을 잔뜩 써 놓자니 내 마음이 지나치게 선명히 보여 징그러웠다. 사실 한 번에 꺼내보인 것도 아니었다. 근데, 좀 징그러울 수도 있지. 겨우 마음인걸. 뜰채처럼 뭔가를 건져낸다고 칠 때, 두리뭉실 형체도 없는 것보다는 굵직한 건더기를 빼내는 게 쉬운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못난 것들을 떠내서 버렸다고 생각하자고. 뭔지 알았으니 그러지 않으면 된다고. 그런데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2-3분에 한 번씩은 고함을 쳐대는 대낮의 그 앞에 서 있자니 언젠가의 기억이 떠올랐다. 고려장. 코트 소매가 기억나는 걸 보면 겨울이었다. 1월이나 12월쯤.
나는 그 언젠가의 날에 고려장을 이해했다. 이래서 그런 말이 나왔구나, 하고. 그런데,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그 단어를 검색한 결과 그건 낭설일 뿐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실제로 그런 풍습 따위는 없었으며 당연히 엄벌에 처해졌다고. 그 날 내가 느낀 거? 어떤 있어 보이는 말로도 설명 안 되는 기분. 무서웠다. 회피하려 했겠지만. 나 스스로가 무서웠다.
결국 한 팩 샀다. 라면. 하나만 사려고 했는데 오피스텔 아래 슈퍼에서는 번들로만 팔았다. 어제는 김치를 넣어서 끓여 먹었다. 퇴근하면서 했던 생각은 빨리 안전한 집으로 가서 라면이나 끓여 먹자는 것뿐. 이래서 안 사 놓는 건데. 오늘. 물은 더 적게 넣고 지난 주의 짬뽕국물을 넣었다. 면을 다 건져 먹으니 국물은 거의 바닥에 눌어붙은 것만큼 남아 있었다.
엄청나게 짜고 또 짠 라면. 바깥에는 햇빛이 밝고 봄이 왔다. 나가 걸어도 모자랄 판에 방구석에서 라면이나 먹는 내가 한심하긴 했다. 근데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당분간은 그렇다. 꽃은 어차피 계속 피는걸.
오늘도 나는 나의 못난 모습과 마주했다. 근데 그래서 어쩔 건데. 나는 그 엉망인 환자들의 딸이나 손녀 손자들이 멀쩡한 모습으로 주말 면회를 올 때마다 속으로 당황스럽다. 그리고 이상하게 반성을 하게 된다. 난 뭘 잘못하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반쯤은 생각한다. 저 사람들조차 어쩌지 못하는 게 노화라서 그들은 이곳에 있는 거라고.
나는 알 수 있다. 이제 착해지기는, 아니. 선해지기는 글렀다는 걸. 느끼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이제는 화면에서 웃고 떠드는 것마저 돈을 버는 수단인 그들에게 단 1분도 쓰기 싫어진 것처럼.
그러니까 아무것도 극복하거나 제쳐내지 못했고 해결되지 못했다. 아침엔 재밌는 말을 들었다. 목울대로 말하는 그 환자가 나한테 간호사보다는 다른 게 어울린다고 한 것. 나는 정확히 십 년 전 고등학교 교무실에서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 내가 뭘 그리 싸가지가 없게 행동했나 싶었는데, 맥락상 그건 반은 욕이고 반은 칭찬이었다. 어쨌든, 본성 자체에 뭔가 어그러진 데가 있다는 거지.
와중에 그는 그래도, 나는 잠시만요 해놓고 이십 분 있다 오지는 않고, 누굴 무시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일을 잘 한다고 했다. 그럼 다른 사람은 무시해요? 했더니 그는 웃었다. 저 무뚝뚝해요? 라는 말에 그는 '솔'음을 연습하는 톤으로 다른 간호사들을 흉내냈다. 전 안 그래요? 그랬더니 그는 또 웃기만 했다.
만성질환이다. 내 상태도, 짜기만 짠 인스턴트도. 정신병을 나트륨으로 덮어 또다른 병을 부르는 사이클.
남은 라면 셋. 버릴 수도 없고. 내일 병원 탈의실에라도 갖다 놔야 하나.
아, 그리고 직장으로 연결된 사이에서는 카톡 하나 전송에 만칠천원쯤 붙는 기능이 생기면 좋겠다. 모바일 청첩장들. 답장이 정말 너무 귀찮다. 모르긴 몰라도 나는 사회성까지 박살난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
만약 결혼하게 된다면 하객 알바를 쏠쏠히 불러야 할 것이다. 매년 하는 생각이다. 고질병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