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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븐도 Dec 29. 2024

씨너리

장면들. 와닿지 않길 바라는 것들.






언제나 제1순위는 도망이었다.

어쩌면 실패했다는 예감이 든다.










딱 두 달 전 머리가 깎인 채 목이 마르다고 울던 소녀가 내일 집에 간다고 했다. 바보가 된 줄 알았으나 다시 회복한 것 같았다. 나 기억해, 란 말에 그녀는 약간 중심을 못 잡는 듯한 눈동자로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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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변을 내내 못 봐서 잔뇨량을 체크하고 단순도뇨를 해야 했다. 성인들이 대다수일 뇌신경계병동에서 작은 크기의 도뇨관을 빌려 달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그것이 그녀의 것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를 기억한다고? 뻥치시네. 그러자 그녀는 입을 올려 웃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조금 일그러진 얼굴이었지만 큰 봉지에 든 꼬깔콘을 먹었고 쉬를 못 싸겠다고 울지도 않았다. 포카칩도 먹었고 작은 종이컵에 아빠가 담아 준 블루베리를 포크로 하나씩 찍어서 입에 넣었다.



토끼 인형에는 종이 택이 그대로 달려 있었다. 왜 안 버렸어, 이거 끊어 줘? 하고 물었더니 아빠는 대신, 그냥 놔두겠대요.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집에 가면 뭐 할 거야,라고 묻는 내게 그녀는 한참을 답하지 못했다. 귀여운 입술로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난간에 끼여 있던  황금색 긴 머리의 미미인형을 토끼의 무릎에 앉혔다. 얘 머리 감겨 주면 되겠다. 그녀의 머리를 보고서 알았다. 아, 사람 머리는 두 달 동안 딱 이만큼 자라는구나. 군인들 같은 머리였다. 하지만 몹시 귀여웠다. 나는 그녀가 주머니 같은 걸 뒤집어쓰고 미용실에서 올라온 수술 전날에도 참 귀여운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기억한다고? 그렇다면 수술실과 신경계중환자실과 방사선 종양학과 등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그곳들에서 머물며 울부짖던 밤도 기억할까? 그녀의 기록에는 항상 아빠나 엄마를 찾으며 운다는 문장들이 있었다.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생각했다. 그런 기억들은 잊었으면 했다. 내 주제에.



자꾸 두 명이서 들어와 있는 그녀의 엄마와 아빠 중 한 명을 쫓아냈으나, 그들은 대체 어디서인지 모르게 자꾸 등장했다. 나를 보고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때로 모른 척했고 더러 어쩔 수 없을 때는 한 명만 상주해 주셔야 한다고 했던 말을 또 했다. 나이트 중 병동 사이의 휴게실로 다른 보호자를 찾으러 갔을 때, 자판기 옆의 작은 의자에서 그녀의 아빠가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봤다. 이게 무슨 식상한 휴먼 드라마도 아니고.












기분이 어때, 하는 내 질문에 그는 다 부르트고 염증이 난 입술로 '좋아요'라고 했다.



아마도. 좋아, 였을지도 모른다. 180cm에 49kg. 머리만 잘못 키워진, 빛바랜 불량 인형 같았다.

그제 새벽에는 중심정맥관을 스스로 뺐고, 누운 채 그걸 들어 보이며 '빠큐'를 날렸다고 했다. 그는 중환자실을 거쳐 다시 병동으로 돌아온 후에는 꽤나 악랄한 행동들을 했다. 어제 낮에는 억제대를 풀고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드러누웠다. 여자 다섯이 달라붙어도 거기서 일어나지 않으려 하는, 소변줄까지 가진 그 친구를 병상으로 올릴 수 없어 보안팀 직원을 불러야 했다. 꽂은 게 많아 대충 엎어치듯 위로 옮길 수가 없었다. 그의 엄마는 두 달여를 거친 씨름 끝에 어제 결국 욕을 하며 병실을 떠났다.




금목걸이를 하고 사투리를 쓰고 덩치가 큰 그의 아버지가 보호자로 왔고 그는 조금 얌전해졌다, 나이트 때 그의 아빠가 그에게 쌍욕을 해서 그 옆의 보호자가 학대 아니냐고 하며 스테이션으로 나왔다고 했다. 나이트번은 아빠도 좀 이상하니 조심해,라고 조용히 말해 줬다. 아무튼 나는 그 팀의 근무자들이 굉장히 힘겨워하는 꼴을 지겹도록 봤기에 긴장하며 출근했다. 붙어 있는 거 떼고, 주삿줄 뽑고 그러면 집에 못 가. 그러지 말라고 이거 묶는 거야, 알겠지. 하는 말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거대한 해먹 같은 것에 누워 잠깐 붕 뜬 채로 몸무게를 재는, 그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는 대답했다.




나는 내과병동에서 일했던 기억을 살려 매듭을 두 번 세 번 묶었다. 침상 난간에 한 번, 그 아래에 한 번. 나름 그의 손이 닿을 부분은 살살 매듭을 지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내가 묶고 있는 그 반대쪽의 매듭을 풀었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돼요, 하면서. 나는 좀 무안했다. 그는 모든 억제대를 한 환자들이 그렇듯 창의적인 방식으로 매듭을 풀고 다른 것들을 뽑고 건드리고 떼냈기 때문이다. 걱정이 되었으나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아, 네 알겠습니다, 했다. 매듭을 풀든 어쩌든 그 무서운 아빠가 그를 잘 제지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체중이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자기도 하루 있어보니 도저히 입맛이 없더라, 중환자실에서는 줄을 꽂아서 코로 뭘 했던데 그걸 하면 안 되느냐, 안 먹는데 저렇게 놔둬도 되느냐 등의 이야기를 중언부언 길게도 했다. 그는 사실 못 씹거나, 정신이 아주 온전치 못해 뭘 삼켰다가는 도로 목에 걸려 CPR을 치게 되는 등의 입장은 아니었던 터라 비위관을 삽입할 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비슷한 설명을 최대한 간결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몇 번이고 해야 했다. 밥을 먹을 수 있으나 본인이 순응하지 않는 거라고. 단지 병실이라는 환경이 낯설고 그의 아들의 상태 때문에 입맛이 없는 그 체격 좋은 아버지 당신과의 상황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의 아들은 그런 감상적인 이유로 섭식을 거부하기에는 꽤 아픈 환자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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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는 한두 시간쯤 뒤에 다시 나와 그럼, 딸기우유는 먹어도 되냐, 요 밑 편의점에 두 개 오천 원 하는 군고구마는 먹어도 되느냐 하는 질문을 했다. 목에 걸리지만 않으면 괜찮습니다. 혹시나 걸릴까 봐 죽 먹는 거예요. 천천히만 주세요, 했더니 그는 고구마가 똥 싸는 데 좋다고 애엄마가 그러길래, 그럼 그거 으깨서 줘도 되는 거죠,라고 했다. 나는 역시 비슷한 대답을 또 다른 식으로 그에게 해 주었다.



그는 내가 근무하는 내내 거의 잤다. 뼈밖에 안 남은 몸에서 나오기 힘든 혈압이 자꾸 측정됐다. 그는 한 달 전보다 더 몰골이 초췌해졌다. 병동 복도를 엄마와 심하게 티격거리며 어떻게든 걸어 다닐 때만 해도 머리는 까만색이었으나, 오늘 가까이에서 본 그 머리카락은 갈색이고 상당히 퍼석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당황스러웠다. 나는 어떻게든 그와 맞서 그의 몸에 삽입된 모든 관들을 지켜내겠다는 각오로 출근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무례하게 구는 대신 내게 주절주절 했던 말들을 자꾸 또 했고 그 친구는 잠만 잤다. 큰 눈의 흰자가 반쯤 보이게 감은 눈에 누런 낯빛으로.












중환자실에서 300일을 가까이 있던 애가 지난주에 전동을 왔다. 계속해서 경련을 하는 애였고 아마 멀쩡했을 그 애는 이제 기관절개관을 꽂고 눈을 희부옇게 뜬 채 누워만 있었다. 그 병실로 갈 마다 비닐 가운을 입고 벗어야 했다.




아침 경구약을 주러 갔을 때 그 친구의 엄마는 캐비닛 위에 올려놓은 태블릿 화면 속 아이들에게 말했다. 양말과 장갑과 밥 한 숟가락이 어쩌니 하는 말들. 그 화면 구석의 작은 또 다른 화면에 가운을 입은 유니폼의 내가 보였다. 사실은 내가 아니라, 누워 있는 그 친구가 그 가정집의 거실과 이 병실에 공존하는 거였겠지만. 그녀는 창문에 가짜 튤립을 테이프로 붙여 두고 병실 안 가구들을 나름의 방식대로 전부 재배치해 놓았다. 나는 그런 것을 볼 때마다 경외감을 느꼈다.


내가 할 일을 하는 동안 그녀는 욕창 방 쿠션임이 분명한 그것을 베고, 내가 학교 다니던 때에 책상에 엎드려 자던 방식으로 그 친구의 옆에서 머리를 괴고 졸았다. 중환자실 환자 리스트를 볼 때마다 이름이 떠 있던 그 어마무시한 친구. 막상 보니 지금은 상대적으로 '괜찮아'보였다. 그러니 병동으로 왔겠지만. 나는 긴장한 것보다는 조금 안심하며 병실을 나섰다. 엄마는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 내게 밝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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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장기 환자들은 바쁜 와중에 고요했다. 나는 계속 병실을 들락거려야 했지만 잔뜩 비관적으로 예상한 것보다 정신이 없지는 않은 상황에 감사했다. 엄청난 라인업의 애들을 보게 되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으나 조금 다행이었다. 거의 읽지 않는 대학 동기 단톡방에 한 링크가 마지막으로 뜬 게 보였다. 전라도 어딘가의 공항. 대충 봤고 채팅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전부 수도권에 있으면서도 가끔 일정을 맞춰 가면서까지 모여서 타지방으로 여행을 갔다. 이번엔 저 쪽인가, 대단하다. 고 생각했다.





점심. 비닐가운을 입고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 엄마가 그 친구의 몸을 오른쪽으로 아예 돌려놓은 상태라서 혈압을 잴 수 없었다. 자세 바꾸시면 저 좀 불러 달라고 말했다. 뉴스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남녀를 나눈 사망자가 합해 74명이라고 했다. 저 밑에 병원들 난리 났겠어요,라고 엄마가 그랬다. 원광대, 전남대, 전북대.. 또 있나요, 어떡해. 뭔가 잔뜩 불타고 있었다. 특보였다. 나는, 그럼 다 한국 사람인 거겠네요? 했다. 또 할 일을 하고 가운을 벗고 나왔다.

이런저런 일들을 잔뜩 했다. 입원환자들이 왔고, 나는 이제 꼴에 중간 연차 취급을 받아서 답지 않게 혼자 온갖 것들을 해야 했다. 그 단톡방이 생각났다. 아, 이거였구나, 했다. 나이트를 마친 입사 동기들은 자는지 동기 단톡은 수선생님과 월급과 이 주의 로또 이야기가 한바탕 오간 후 잠잠했다. 절대 '칼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비교적 간만에 늦지 않게 퇴근했다.












어제는 참 예쁜 하늘을 봤다. 달리기의 매력은 매번 예측하지 못하고, 눈으로만 담을 수 있는 찰나의 풍경을 계속 감상하며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제 5시 40분, 횡단보도에 서서 노란색과 회색이 섞인 연보라색의 차가운 하늘에 잔뜩 감탄하며 신호를 기다렸다. 일부러 시간을 기억했다. 내일도 이 시간에 맞춰 나오고 싶었다. 내가 뛰는 방향이 해가 지는 쪽이라는 걸 알았다. 뒤를 돈 시야에는 그 투명한 그라데이션이 보이지 않았다. 30분 만에 겨울 하늘은 초저녁에서 매서운 푸른색으로 색을 바꿨다. 나는 내내 행복해하며 뛰었다. 내일도 꼭 이때 나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절대 똑같은 빛깔은 없다는 게 이 활동의 특성이었지만. 아무튼 다른 방식으로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앉아서 96명, 이라는 숫자를 봤다. 아마 공항일 곳에서 소방관들이 뭔가를 못 알아듣게 발표하고 있었다. 나는 왜 이런 현실들은 자꾸 영화보다 더 극적인 걸까 생각했다. 이를 다시 닦고, 버릴 게 없나 생각했다. 생이 엉망으로 흘러가는 것 같을 때 나름의 제자리를 찾는 방식이었다. 버릴 게 없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이어폰을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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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뜬 셀로판지 같은 것처럼, 완전히 유리되어서 살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이 많은, 효용성 없는 감정에 흔들리는 생의 반복이, 알 수 없는 무게감이 지겨웠다. 지나쳐 달린 사람들은 웃고 있었고, 강아지를 산책시켰고, 쇼핑백을 들고서 가끔 나를 쳐다봤고, 카페 안에서 뭔가에 열중하거나 모여서 웃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내일 출근을 해야 했고 이제 매일 하는 짓이 된 그것을 하러 나와 반복하고 있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껴 어제 같은 투명함은 없었다.



나는 어제와 똑같은 신나는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숨을 고르고 무릎에 힘을 줬다. 도망. 이런저런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자판 위로, 길 위로 쏟아 놓고 도망. 감정과 사연에 흔들리지 않고 도망. 내 일상을, 흔들리지 않게 지킬 도망. 사람들에게 항상 같은 스탠스를 취하기 위한 도망. 나는 흔들리지 않고 싶었고 변덕을 부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도망치길 원했다. 원할 때, 가능한 곳으로 언제든 갈 수 있게 매일 노력하자고 우습게도 혼자 생각했고 그래서 잡념들을 쏟아내 정리했고 해 진 거리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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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했다. 며칠 전 눈발이 얕게 날렸을 때, 친구가 나보고 올해 수고했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어, 어때. 이게 F의 감성이다, 고 카톡을 보내왔던 게 생각났다. 그런 조근한 의미부여가, 다 무너지고 속절없이 휙 사라지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고통스러울 그 장면을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실패했다. 왜, 대체. 나는 여기서 이렇게 멀쩡히 달리거나 앉아 있는데. 이 감정과 생각은 도무지 쓸 데가 없는데 이렇게도 이입하게 되는가 질문했다.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내일 출근해야 하니 얼른 들어가 씻고 자자고 생각했다.




어디로, 어떻게 도망쳐야 하는가. 숫자는 170여 명으로 늘었다고 했다. 나는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이런저런 사연과 감정의 등락에서 도망치고 싶다. 그들이, 못내 가엾은 이 부질없는 마음을 버리고 싶다. 어차피 쓸모도 없을 텐데. 비극은 계속되는 건데.












나는 이렇게 잔뜩 썼다. 그리고 사실 모든 글은 다 거짓 아니던가. 모든 작품들은 현실을 모사한 허상인 것처럼. 이 안에 든 모든 에피소드는 현실을 옮겨놓고 싶은 내 마음에 비친 잔상일 뿐, 내 현실과 멀다. 나는 내일도 출근한다. 안온히 일상을 사는 주변인들이 있고, 멀쩡히 자판을 두드리는 내가 있다. 그러니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 괜찮다고.



사실은 세상이 끝나 버린 것 같은 극적인 감정조차도 그냥 다, 내 머릿속의 현상일 뿐이니 괜찮다고. 슬픔이고 절망이고 그런 것들은 다 어디다 쓸 데가 없는 현상일 뿐이니 괜찮다고.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나 살아 있다는 책망 같은 건 더더욱 부질없는 것이니, 정말로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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