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에 나열한 것은 가급적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작은 재앙들이며, 후술한 것은 차라리 전자보다 나은 커다란 사건들이다.전자의 경우 환자도 정상인도 아닌 채로 일해야 하며, 후자의 경우 환자로서 집에서 쉴 수 있다.
애매한 병세는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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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유치한 말로, 장염 할래 대상포진 할래, 하면, 나는 대상포진을 고르겠다.
병동에는 바이러스 15종 검사에서 뭔가가 잔뜩 나온 애들이 포진해 있었다. 격리를 할 수 있는 병실이 더는 남아있지 않았고 아침 엑스레이 촬영 후 오후에 흉관을 꽂고병동으로 돌아오는 애들이 늘었다. 그래, 그건 늘 그랬으니까. 시기가 좀 늦었을 뿐이다. 11월이 되면 병동에는 센트럴 모니터로 산소포화도를 계속 지켜봐 줘야 하는 독한 폐렴에 걸린 애들이 가득했고, 하이플로우(많은 양의 산소를 축축하고 따뜻하게 데워 숨 쉬는 걸 돕는 기계)가 부족해 니큐며 소아중환자실과 소아응급실에서 급하게 빌린 후 갚기를 반복해야 했다. 올해 11월에는 이상하게도 뇌종양 애들이 더 많았고, 12월인 이제야 그 시기가 도래한 모양이었다. 그렇지. 원래 아픈 사람들을 관리하는 곳이 병원 아니던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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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플 수 있지. 사람이니까 아플 수 있다.
골룸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일했다. 한 번도 앉지 못했다. 일곱 시에 시작된 일은 오후 다섯 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살이 빠질 때의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배고픔과 분노와 우울, 슬픔 등등의 감정에서 해탈하면, 기력이 줄어들면서 이상하게 차분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몸의 부피가 줄어든다. 보통은 환자 수의 업다운이 있기 마련인데 작년 이맘때쯤보다 더 심했다. 빈 베드가 생기면 응급실에서 득달같이 신환이 올라왔고 매일매일 중환자실에서 전동을 내려보냈다. '쌩신규'도 아닌데 병동이 무서워지려 했다. 집에 오면 아무튼 씻고 잤다. 출근하면 그제야 허기가 져서 병동 냉장고에 남은 초콜릿이나 빵이나 프로틴바를 우걱우걱 먹었다.
그래. 살 빠지는 기분 좋아, 하며 옷을 챙겨 입었다. 기력이 없었다.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다 내려놓은 것 같은 상태로 출근하는 게 나았다. 무슨 게임 퀘스트 깨듯이 복도를 달리고, 전화를 받고, 온갖 쓸모없으나 해결하지 않으면 상당히 귀찮아지는 일들을 응대했다. 온몸이 욱신거렸다. 귀에서 내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숨이 목젖까지 찬 것 같았다. 느낌이 왔다. 아. 인플루엔자다.
나는 복도에 카트를 세워 놓고 보호자와 외래 일정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으나, 몽롱했다. 방금 열을 재고 해열제를 달아 준 친구의 체온이 찍힌 체온계를 내 귀에 넣었다. 38.7. 절망적이었다. 겨우 네 시.퇴근까지는 여섯 시간이 넘게 남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픈 게 처음은 아니었다. 사람인데, 그럼.
나이트 근무 중 선임이 '목 뒤에 뭔 여드름이 그렇게 쭐쭐쭐 났어요?' 하길래 머쓱했었다. 자꾸 작은 번개를 맞은 것처럼 번쩍번쩍동시다발적으로 쑤시던 그 느낌의 실상은 한의사가 침을 잘못 놓은 게 아니라 (나는 그런 줄 알고 그를 속으로 원망하며 한의원에 갔다. 그리고 그는 나를 진료실로 데려가 체온을 잰 후 옆의 내과로 가셔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대상포진에 걸린 거였다.
또 다른 나이트가 끝난 아침, 온몸을 누가 때리며 따뜻한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컴퓨터 앞에 널브러져 있다가 체온을 쟀다. 39.8. 사람이 이렇게 열이 오르면 탈의실까지 갈 기운도 없구나, 하고 아, 애들한테 더 친절하게 해 줄 걸 하는 반성을 잠시 했다. 그리고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퇴근시간이 훨씬 지났으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A형 독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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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전부는 아니나 아무튼 이 두 가지의 질병을 겪었을 때 나는 병가를 받았었다. 차라리 출근이 나을 정도로 상당히 괴로웠다. 생각해 보니대상포진으로 병가를 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써놓고 보니 이상한 문장이다. 질환이 명시되어 있는데도 병가를 받기 어려웠구나. 전염력이 떨어져 나의 격리가 필요치 않다는 게 사유였다.
이제 보니 대상포진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재앙 카테고리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흠.
정정한다. 대상포진보단 차라리 장염이 낫다.
내게 유익한 질병은 인플루엔자뿐이다. A형이면 더욱 좋다.
열이 그렇게 올랐던 날, 나는 나만큼이나 열이 나는 애들에게 해열제를 달아 주고, 투약 스케줄링을 조절하고, 속도를 확인받고, 누군가를 중환자실로 전동 보냈다. 인계를 받는 뒷턴은 '쌩신규'였다. 내가 빠뜨린 게 있을까 봐 무서워서 엄청나게 자세한 인계를 주었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병동 비품 이부펜 시럽을 내 체중에 맞게 먹어대도 효과가 없었다. 집으로 가는 차편을 찾았을 때는 두 시였다. 깜깜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밤중의 택시를 탔다. 나름의 운치를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세상이 돌았다.
늦게 퇴근하는 게 슬플 연차는 지났다. 그런 날도 있고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이전 병원에서 그런 건 학을 뗐다. 하지만 목이 말랐고 추웠다.
나는 택시를 기다리며 열 벌은 족히 넘을 겨울 외투들을 생각했다. 언젠가 한 번 SNS에서 보고 디자인에 한 번, 가격에 한 번 놀랐으나 결국은 몇 개나 가지게 된 백팩들을 떠올렸다. 모양새와 재질이 마음에 들어 색깔별로 결국 하나씩 다 사게 된 가방들을 생각했다. 아무것도 삼킬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인데 목이 깔깔했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머리가 무거웠다. 백팩, 코트, 워커, 스니커즈, 키링, 다이어리, 책, 비즈 팔찌. 내가 잔뜩 가진 그런 쓸데없고 예쁜 것들을 생각했다. 나는 이것과그것들을 등가교환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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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그 신발이 '닥터마틴'이라는 걸 알았다. 아. 아이돌들이 짧은 치마랑 바지에 신는 게 저 신발이구나. 온갖 화려한 옷들에 더해진 그 까맣고 군더더기 없는 워커. 투박한 디자인이지만 끈을 꽉 묶어 발목과 긴 다리를 강조하고 의상이 가진 튀는 느낌을 중화시킨다. 짧은 옷이 아니라면? 바짓단을 접어 올린 테이퍼드 진 아래에 딱 맞도록 발목에 올라붙은 가죽의 높이가, 완성된 뭔가를 보는 쾌감을 줬다.
가격을 검색해 보고는 깜짝 놀랐다. 무슨 신발이 한 켤레에 25만 원이나 하나. 대학생 때 엄마는 모르는 장학금을 받아서 첫 닥터마틴을 샀다. 사실 실망했다. 발뒤꿈치가 너무 아팠고 막상 내가 내려다본 모양은 그냥 '왕발' 같았다. 이게 아닌데, 생각했다. 다이어트를 더 해야 하나 고민했으나 어쨌든 샀으니 신어야 했다.
나는 이제 그 브랜드의 신발을 열한 켤레 가지고 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재질이 다르고 홀 개수가 다르며 눈, 비가 올 때 신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뉘고 어떤 스타킹이나 하의를 입느냐에 따라.. 아무튼 더 이상은 살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차라리 사복으로 하루종일 나다녔던 대학생 때 그 신발이 그렇게나 많았으면 더 활용도가 높았을 것이다. 지금은 사십 분 간의 출근 여정을 빼면 그 무거운 가죽 신발보다 유니폼에 크록스를 더 많이 신고 입는다. 어쩌다 있는 약속이나 외출 때나 신게 되는 것이다. 그때는 돈이, 지금은 시간이 없다.
(사실 지금도 둘 다 없는데?)
전혀 훌륭한 소비라고 할 수 없으나 어쨌든 나는 그 신발들을 사랑한다. 닥터마틴만 그런 게 아니었다. 많은 것들을 그런 식으로 샀다. 갖고 싶었으나 멈칫했던 것들, 충분한 쓸모를 다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으나 내가 원하는 것들. 그런 예쁘고 실용적이지 못한 것들과 어느 정도의 내 미래를 위한 자금과 이런 노동을 교환하는 거였다.
택시에서 내리는데 휘청했다. 그다음 날, 아니. 자정이 지났으니 다시 오늘의 출근을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조금 서러웠는데, 서러워도 되는 건가 생각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잔뜩 가졌으니까. 그런데.. 그게 이런 방식으로만 살 수 있는 것들인지 의아해졌다. 꼭 이래야만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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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기가 힘들어서 깊게 잠들지 못했다. 동네 병원에서는 내 몰골을 안쓰럽게 본 후 안타깝게도 독감은 아니라고 진료실에서 전해 주었다. 내일 배양검사 결과가 나올 테니 다시 오라고 했다. 폐렴 같다고 했다. 아, 아니라니. 그때랑 증상이 너무 비슷했는데.
혹시 몰라 이미 출근 준비를 다 하고 거길 간 거였다. 수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폐렴은 격리가 필요하지 않아 병가를 주기 어렵다고 했다.
나는 내가 어떻게, 얼마나 아픈지를 설명해야 했다. 분명 내가 어제도 지금도 겪는 일인데,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열이 안 떨어졌고 오후부터 온몸이 통증이 있고 기침이 어쩌고.. 아니, 내가 정말로 거짓말을 하는 게 맞았으려나. 병원에서는 검사결과를 보고 진단명을 본다. 전염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진다. 나의 주관적 진술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 방식대로 일했고 그래서 그 사정을 모르지 않았다. 폐렴은 여타 염증들과 더불어 추정진단에 불과했고 당장 입원해 주사 항생제를 맞아야 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정말 그냥 꾀병을 부리고 싶은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지 않고 싶었는데, 꽤, 많이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안 그러고 싶었는데 많이 서러웠다. 이렇게만 돈을 벌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갑자기 내가 꾀돌이가 아니라는 항변을 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잘' 일하는지 수간호사에게 설명하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왜 변명하듯 그런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스케줄이 짜여서 나오는 교대근무의나이트 수당. 그걸 빼면 내가 받는 월급은 확연히 줄어든다. 실제 근무 시간과 강도는 이 병동에서 3교대를 할 때보다 더 강했으나 나이트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음 보는 액수의 월급을 받은 적이 있다. 2교대 병동으로 지원을 갔을 때였다. 알고 있었다. 내 월급이 사무직인 내 친구보다 조금 높은 듯한 이유는 이게 전부라고.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아니, 그런 거창한 단어를 댈 것도 없이 당연한 것이다. 직장이니까. 월급 받고 일하는 곳이니까. 그 대가로 나는 돈을 받아 사고 싶은 것을 사고 그것을 행복이라 말하고 즐거워하니까. 그러려면 레고처럼 꽉 맞물려 한 조각도 빠지면 안 되는 스케줄과 내 건강을 지켜야 했다. 그러면 나는..자격 미달인 건가, 잘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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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렴 추정진단을 받기 위해서는 9만 원에 달하는 금액을 내야 했다. 이게 과연 무엇을 위한 대가였는지 모르겠다. 세상에, 내가 A형 독감을 구매하지 못하는 걸 아쉬워할 줄이야.
나는 내 동기들의 오프가 안 잘린 것에 안도했고, 수선생이 나를 울보 찡찡이 정도로 생각하게 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괜찮다. 나는 그렇게나 고귀한 인력은 아니나 아무튼 없으면 섭섭한 노동력이고 그녀는 당장 나를 자를 권한이 없다. 또 달리 그녀가 나를 더 예뻐한다 한들 배정된 환자수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생각했다. 싫으면 때려치우면 된다고. 그 말이 내게 조금의 자유를 주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그만둘 곳 아닌가.
이제야 생각하게 된다. 언젠가 여길 떠나 정말로 다른 돈벌이를 할 대책을 조금은 마련해야 할 수도 있겠다고. 바깥은 지옥이다. 병동도 지옥이지만 바깥도 다르지 않다. 쉬운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당장 다음 주부터 안 나갈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