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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빼고 내가 태어나 처음 읽은 책

유기열의 일상다반사-읽고 싶은 책 맘대로 읽을 수 있어 행복해

by 유기열 KI YULL YU

내가 태어나 교과서 빼고 처음 읽은 책은 플루타르크 영웅전이다. 1996년1월18일(목) 전북대학교 입학시험을 본 다음 날인 1월19일로 안다. 대학입시(大學入試)에서 해방된 나는 아침 밥을 먹은 뒤 무작정 전주시립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은 집에서 약5km 떨어져 있는 전주시 경원동에 있었다. 길은 좁고 꾸불거렸다. 언덕이나 얕은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비포장 길이었다. 당시는 내가 살던 마을을 지나는 시내버스가 운행되지 않았다.


겨울의 추위 속을 땀나게 걸었다.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다는 한 가지 희망이 나의 모든 생각과 어려움을 덮어버렸다. 아마 하늘이 무너지면 뚫고서라도 갔을 것이다. 그만큼 교과서가 아닌 위인전이나 소설책 등을 읽고 싶은 열망이 컸다.


정말 교과서가 아닌 책을 읽고 싶었다. 그러나 돈이 없어 참고서도 못사는 마당에 소설 책 등은 나에게는 사치였다. 설령 어떻게해서 산다고 하더라도 소 깔(풀)을 베고 농사 일 등을 도와야 되기 때문에 학교 공부할 시간도 없는 처지여서 소설책을 읽는 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 탓으로 대입시험을 볼 때까지 단 한 권의 소설 책도 읽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상식과 문화교양은 거의 빵점이었다. 하여 친구들끼리, 특히 여학생들하고 이야기하다가 이해를 못하여 하도 어이 없는 엉뚱한 말을 해서 웃음거리가 되고, 창피해서 얼굴을 붉힌 적도 많았다.


1994년에 사서 현재 가지고 있는 플루타르크 영웅전


전주시립도서관에 가서 제일 먼저 빌려 읽은 책은 플루타르크 영웅전이었다. 왜 내가 이 책을 제일먼저 대출받았는지 그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손에 쥔뒤 책에 미친 사람처럼 정신 없이 읽었다. 시험걱정도 없고 겨울철이라 일거리도 적어서 며칠 간을 계속 도서관에 가서 책만 읽었다.


그때 읽은 책이 몇 권인지는 모른다. 다만 책을 빌려주는 안내가 나를 보고 웃으며 한 말은 어렴풋이 기억한다.


“다 읽기나 해요? 매일 책을 그렇게 많이 빌려가고 반납하는 데.”


그때 읽은 책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단테의 신곡,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등으로 생각된다. 정말로 많은 책을 실컷 읽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돈과 시간이 없어 읽지 못한 책을 죽을 둥 살 둥 맘껏 읽었다. 하지만 이해는 아주 쪼금, 그저 책장을 넘긴 수준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맘대로 읽을 수 있었던 그때 그 희열(喜悅)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으랴!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이었고 마음의 빈 공간이 채워지는 만족감을 맛보았다. 교과서에서는 알 수 없는 새로운 것을 알아 가는 재미는 정말 컸다. 새로운 세상과 지식에 대한 욕구가 조금씩 충족되는 황홀함은 나만이 느끼는 것일까?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었다.


그로부터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독서하는 기쁨과 행복에 흠뻑 젖어 산다. 다만 60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부족하지만 글을 쓴다는 점이다. 이젠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누군가에게 피가 되고 영혼을 맑게 하는 한 줄의 글이라도 쓰려고 한다.


필자 주


1. 1994.02.20일에 나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의 한가람 문고에서 플루타르크 영웅전 1권, 2권(도서출판 한아름, 외국어번역연구회 옮김)을 각 6,000원을 주고 샀다. 책을 빌려 읽은 지 28년만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책을 읽고 있다.


2. 플루타르크 영웅전(네 안에 잠든 영웅을 깨워라)은 플루타르크(Plutarchos)가 쓴 로마와 그리스의 정치가, 영웅 등 50여명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세트(신복룡 옮김, 전 5권, 2021) 속의 국내외 주요 서평(書評)을 보면 아래와 같다.


-. 루트비히 판 베토벤: 나는 때로 창조주와 내 존재 자체를 저주했다. (그러나) 플루타르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알려 주었다.


-. 랄프 왈도 에머슨: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정수(…). 세계의 도서관이 불탄다면 나는 서둘러 셰익스피어와 플라톤, 그리고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구해낼 것이다.


-. 김헌(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플루타르크는 상상과 신화의 영역이 아닌 실제 역사의 현장에서 뜨겁게 타올랐던 그리스와 로마의 수많은 영웅들을 보여 주었다. 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려는 독자들 역시 시대의 한계를 뚫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 이 책 속의 인물들로부터 지독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 어떻게 원하는 바를 이루고,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그리고 운명이 자신을 가차 없이 팽개칠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유럽 역사의 초창기를 수놓은 정치가와 장군들의 삶이 그 질문에 답한다. 이것이 바로 “플루타르크 영웅전”이다.


-. 에라스무스, 윈스턴 처칠 등 많은 사상가와 정치가의 바이블이자 셰익스피어와 실러 등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안겨준 고전 그리고 누군가 에게는 삶에 대해 가르쳐 준 책.


-. 인류 역사상 최고의 영웅 열전이자 서양 문화의 모든 씨앗을 담은 보물 상자.

-.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리쿠르고스, 페리클리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가장 위대한 영웅 평전이자 서양교양의 기원


3. 저자 플루타르크가 밝힌 책을 쓴 동기와 목적


-. 내가 이 책을 쓴 동기는 이렇다. 우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각 인물들의 업적이나 투쟁 전사나 생애에 대한 사실이나 평가는 역사가들의 손에 맡기고 나는 인물들의 마음의 특성에 근거하여 그들의 생활 자체를 그려 나가려 한다.

-사람들은 위인들의 훌륭한 언행이나 사악한 행동까지도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자신들의 생활을 바로 잡아 스스로 큰 도움을 받게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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