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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C 최혜진 Jan 11. 2020

모두를 위한 미술관이라는 착시

여행 중 각 도시를 대표하는 미술관에 갈 때는 가방 무게를 최대한 줄이고, 가장 편한 신발을 신습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립’, ‘왕립’ 같은 말이 붙은 대형 미술관에서는 감상이 체력전이 될 때가 많으니까요. 


브뤼셀에 있는 벨기에 왕립미술관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왕실이 소장한 중세, 근대, 현대 미술품을 총망라한 컬렉션에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까지 더해진 초대형 미술관이라 개관 시간부터 폐관 시간까지 미술관에만 머물렀습니다. 

다행히 전시실에 벤치가 놓여있어서(전시실 내부에는 앉을 곳이 없는 미술관도 꽤 많습니다) 중간중간 다리를 쉴 수 있었어요. 

그렇게 관람하던 중 손에 들고 있던 브로셔, 카메라, 책 등이 번잡스러워 가방에 정리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전시실 안 벤치에 자리를 잡고 크로스백 안에 있던 파우치와 지갑을 꺼낸 뒤 손에 들고 있던 물건들을 넣으려고 했죠. 

그런데 소지품을 벤치 위에 꺼내자 까만 제복을 입은 중년 남성 안내 요원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강경하고 딱딱한 목소리로 “You shouldn’t do that here(여기에서 이러면 안 됩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저는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졌고, 미안하다고 말한 뒤 서둘러 소지품을 가방 안에 넣었죠. 종종걸음으로 전시실을 나와 다음 전시실로 가는 길에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잠깐 가방을 정리한 게 관람 분위기에 그렇게 방해가 되었나? 작품에 가까이 간 것도 아닌데 너무 유난 아닌가? 큰 목소리로 떠드는 백인 아저씨 아줌마들은 왜 가만히 두고 나한테만 그러지? 혹시 나 인종차별당한 건가?… 당황하니 별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잠깐 동안 벌어진 일이지만, 후에 관람을 이어가면서 자꾸만 제복 입은 사람들이 신경 쓰이고 괜스레 눈치가 보이는 것을 막을 순 없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인식이 의식에서 떠나지 않았던 겁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이 경험담을 꺼내놓으면 ‘맞아, 나도 그런 적 있어’라면서 지킴이에게 경고를 받은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지인이 꽤 많았습니다. 지킴이의 존재 자체가 분위기를 경직되게 해서 마음이 편치 않다는 친구도 있었고요. 이는 국내외 미술관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었습니다. 


전시 지킴이는 일차적으로 작품 보호를 위해 존재합니다. 접촉이나 훼손을 시도하는 관람객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 그곳에 있습니다. 그들의 역할은 감시입니다. 바꿔 말하면 관람객인 우리는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감시에 노출됩니다. 미술관에 가면 우리를 지켜보는 이가 있음을 인식한 채로 작품 앞에 섭니다. 지킴이는 그저 구석에 있지만, 동시에 이런 신호를 보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공간에는 엄격한 질서가 있습니다. 이곳의 규범에 맞는 태도를 보이십시오. 당신은 적절치 않은 행동을 할 가능성을 품고 있기에 감시의 대상이 됩니다.’ 


지킴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미술관의 분위기가 환대와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미술비평가 존 버거John Berger의 책 <벤투의 스케치북>에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존 버거가 안토넬로 다 메시나Antonello da Messina의 그림을 보기 위해 런던 내셔널 갤러리를 찾았을 때 벌어진 일입니다. 그림을 보며 드로잉 하려고 가방에서 스케치북, 펜, 손수건을 꺼낸 다음 가방을 마침 비어있던 지킴이 의자 위에 조심히 올려둡니다. 그러자 무장한 지킴이가 다가와 말합니다. “선생님 의자가 아닙니다!” 

존 버거가 가방을 들어서 자신의 두 다리 사이 바닥에 내려놓고 계속 드로잉을 이어가니 지킴이가 경고합니다. “가방을 바닥에 두시면 안 됩니다.” 어깨에 가방을 걸치고는 드로잉 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하는데도 최후통첩이 돌아옵니다. “가방을 어깨에 메십시오! 여섯까지 세고 경비 책임자를 부르겠습니다. 하나! 둘! 셋! …” 



존 스큐리, 미술관 경비, 2015년, 66x82cm



미술평론가인 존 버거가 왜 굳이 이 에피소드를 글로 발표했을까요? 

현대의 공공미술관은 한 목소리로 ‘모두를 위한 미술관’을 표방하지만, 들여다보면 미술관의 질서는 수평적이라기보다 위계적입니다. 경비, 제복, 지킴이 의자로 상징되는 ‘관官’은 다양한 개인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감상을 환영하지 않는 듯한 느낌으로 공간을 운영합니다.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에서 공공 프로그램과 출판을 담당하는 마르흐르트 셰버마커르Margriet Schavermaker의 자기반성적 고백처럼요. 


(우리 미술관의) 공공 프로그램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공공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은 미술관에 열 번 이상 방문한 분들로 대부분 전공자였습니다. ‘공공 프로그램’이 아닌데도 계속 ‘공공’이라는 이름을 기만적으로 사용해왔죠. (…) 그동안 미술관이 열린 공간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 월간 <미술세계> 68호, ‘심포지엄 리뷰 : 미술관에서 연구란 무엇인가’ 중 


그간 공공이라는 이름하에 결국 미술계 내부 인사들이 모이는 장소로 기능했었다는 냉정한 자기반성 후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은 미술을 모르는 대중이나 이민자, 환자, 소외계층처럼 미술에 관심을 둘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씀이신지…? 


미술관이 ‘일부 계층을 위한 공간’처럼 느껴지는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이 또 있습니다. 바로 미술관 특유의 언어 구사 방식입니다. 일반 관람객을 위한 전시 설명문을 읽다 보면 당최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글과 만날 때가 많습니다. 

난해함이 무조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연구자들을 위한 논문이나 학술적 목적으로 작성한 자료라면 ‘그들만의 리그’ 언어를 사용해야 마땅합니다. 이를테면 양자물리학 논문을 일상적인 언어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죠. 같은 논리로 불특정 다수를 위한 글은 대중의 감수성에 맞추는 게 옳습니다. 그러나 많은 공공 미술관이 이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영국의 현대미술가 그레이슨 페리Grayson Perry가 쓴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에는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회학자 알릭스 룰Alix Rule과 예술가 데이비드 리바인David Levine이 공공기관에서 개최한 동시대 미술 전시회의 수천 가지 보도자료를 언어 분석 프로그램으로 돌려 ‘국제 예술 영어’의 특징을 도출했다고 합니다. 


“국제 예술 영어는 평범한 영어에는 명사가 부족하다는 점을 비판한다. ‘시각적인’은 ‘시각성’이 된다. ‘전 지구적’은 ‘전 지구성’이 되고, ‘잠재적인’은 ‘잠재성’이 된다. 그리고 ‘경험’은 물론 ‘경험 가능성’이 된다.” 


전시 설명문에 현학적이면서 어색한 번역투의 문장이 유독 많은 이유를 짐작하게 합니다. 그레이슨 페리는 ‘형이상학적 멀미’를 일으키는 미술계 특유의 화법이 1960년대 미술 비평에서 시작되어 들풀처럼 공공기관, 상업 갤러리, 논문으로까지 번져갔다고 설명합니다.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를 구사하면 예술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지닌 듯 보일 수 있기에 미술계 내부자들이 상호 참조를 해가면서 엘리트 언어가 자리 잡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작성된 전시 설명을 읽고 있으면 전문 용어를 모르는 일반 관람객 입장에서는 ‘아,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어렴풋한 배제의 느낌이 반복적으로 쌓이면 미술관과 멀어지는 길로 가게 될 확률도 높아지고요. 




미술관 씨는 언제부터 이렇게 도도했나? 


마지막으로 현대 미술관의 가장 의미심장한 특징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혹시 화이트 큐브라는 용어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무균실처럼 새하얗고 탁 트인 큐브 형태의 전시실을 일컫는 말인데요, 미국의 미술평론가이자 개념미술가 브라이언 오 도허티Brian O' Doherty가 1976년 <아트포럼>지에 세 편의 글을 기고하면서 탄생한 미술 용어입니다. 우리 머릿속에서 미술관, 갤러리 하면 처음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도 이런 화이트 큐브 형태일 때가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익숙하고 보편적인 전시실의 모습이죠. ‘미술관은 원래 그런 모습 아니야?’ 반문이 드는 분도 있을 거예요. 


결론부터 말하면 미술관, 갤러리가 현재와 같은 모습을 띄게 된 지는 채 10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1929년 뉴욕 모마The Museum of Modern Art in New York의 초대 관장인 알프레드 바아Alfred Barr가 부임 후 처음으로 개최한 전시 <세잔, 고갱, 쇠라, 반 고흐>에서 처음으로 사방의 모든 벽을 면직물로 덮고 기둥이나 벽의 세부 마감을 제거한 화이트 큐브 형태의 전시실을 선보였다고 해요. 


<세잔, 고갱, 쇠라, 반 고흐> 전, 뉴욕 모마, 사진 : Peter Juley


그럼 이전까지 미술관의 전시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무엇보다 일반 관람객이 그 차이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근대적 박물관의 시초는 1793년 문을 연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라고 합니다. 그전까지 ‘뮤지엄’은 유럽의 대부호나 귀족들이 세계 각지에서 모아 온 진귀한 것들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자신의 손님들에게 보여줄 때만 문을 여는 수장고였죠. 근대 박물관처럼 체계적인 분류법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이 수장고 안에는 온갖 종류의 수집품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아래 도판에서 보듯 미술관, 자연사박물관, 민속박물관이 구분 없이 섞여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수장고를 독일에서는 ‘경이의 방’이라는 뜻으로 분더카머Wunderkammer라고 불렀고, 프랑스에서는 ‘호기심의 방’이라는 뜻으로 카비네 드 큐리오지테Cabinet de curiosité라고 불렀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스투디올로Studiolo라고 불렀다고 하고요. 


작가 미상, 약제사 페란테 임페라토의 자연사 박물관 방문, 1599


프란스 프랑켄 2세, 예술과 호기심의 컬렉션, 1636



최초의 근대적 박물관인 루브르 박물관은 혁명 후 계몽주의 흐름에 맞춰 일반 대중에게 문을 엽니다. 전시실의 분류 체계도 생겨납니다. 

당시 루브르 박물관은 회화 작품들을 이탈리아, 플랑드르, 네덜란드, 프랑스라는 네 개 유파에 따라 분류했다고 하는데요, 작품 사이 시각적 유사성이 아니라 지역과 역사를 기반으로 작품을 모아놓으니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 어떠한 구조적 관계가 있는지 연구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미술사학이 크게 발전했다고 하네요.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실 내부 풍경을 볼 수 있는 18-19세기 회화 작품은 꽤 많습니다. 도판에서 보시는 것처럼 당시 전시실에서는 모자이크처럼 빽빽하게 그림을 걸었습니다. 

당시 미술관과 살롱의 전시 공간 연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벽면의 공간이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해요. 벽 크기에 맞춰 그림을 자르는 일도 빈번했다고 합니다. 회화 작품 하나하나에 집중했다기보다 웅장한 공간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데에 ‘그림의 덩어리’가 기여하도록 한 것입니다. 



위베르 로베르, 루브르 그랑드 갤러리 보수 계획, 1796년 경



여기에 아주 중요한 생각거리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시선을 던질 곳이 오직 개별 작품밖에 없도록 작품 이외의 모든 공간의 요소를 묵음으로 처리하는 방식(화이트 큐브의 방식)과 작품이 공간과 건축물에 녹아들도록 배치하는 방식(근대 루브르 박물관의 방식)은 각각 어떤 함의를 갖고 있을까요? 그리고 어떠한 이유에서 현대의 미술관과 갤러리는 화이트 큐브 방식으로 전시실을 연출할까요? 


같이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근대 이전의 종교화, 벽화, 조각 작품의 제작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그것의 원래 자리는 어디였을까요?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가 시스티나 성당에 ‘천지 창조’ 천정화를 그릴 때, 성당이라는 장소적 맥락을 고려했을까요, 고려하지 않았을까요?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같은 궁정화가들이 왕족의 초상화를 그릴 때, 자신의 그림이 누구를 위해 복무하는지 고려했을까요, 고려하지 않았을까요? 17세기의 뛰어난 네덜란드 정물 화가들이 교역으로 부를 축적한 신진 상인들에게 작품을 판매할 때 그 행위가 ‘순수’한지 아닌지 고민했을까요? 


미켈란젤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시스티나 성당


요는 지금 우리가 미술관, 박물관에서 만나는 많은 작품들이 원래는 일상생활의 공간과 맥락 안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18세기 전반까지 미술은 종교, 건축, 왕권, 국가, 당대의 풍속 등에 종속되어 있었습니다. 현대에는 공예와 예술을 ‘응용 미술’, ‘순수 미술’ 같은 말로 구분 짓지만, 당시에는 이런 구분이 필요 없었습니다. 어차피 모든 작품이 일종의 실용적 목적에 복무하기 위해 제작되었으니까요. 요즘 기준으로 보자면 죄다 순수하지 못한 미술이었던 거죠. 


애당초 주술적, 종교적, 정치적, 실용적, 장식적 목적 등으로 만들어졌던 작품을 근대 이후부터는 원래의 맥락에서 떼어내어 박물관, 미술관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일괄적으로 모아 두고 감상합니다. 회화의 액자와 조각의 받침대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죠. 

성당에 있을 때는 벽의 일부였던 종교화가 미술관으로 옮겨올 때는 액자에 둘러지는 점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조각은 어떤가요? 광장이나 건축의 일부로 장소를 장식하던 조각품이 미술관에 들어올 때는 자신의 장소를 탈피해 받침대 위에 놓입니다. 이렇게 근대 박물관의 탄생과 함께 미술의 1차적인 독립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 개념이 등장하면서 미술은 완전한 독립을 꿈꿉니다. 종교, 윤리, 정치, 실용 그 무엇에도 복무하지 않고 미의 진보만을 목표로 삼는 움직임이 태동합니다. 액자와 받침대로부터도 벗어나는 미술을 꿈꾼 거죠. 

이런 물결 끝에 등장한 추상 미술은 화폭을 통해 대상이나 자연을 재현하기를 거부합니다. 대상을 통해서 감각을 다루지 않고, 원초적 감각 그 자체를 화폭에 담습니다. 영원, 진리, 순수성, 숭고미, 초월적 정신성 등을 추구하는 추상 미술과 개념 미술, 이후의 동시대 미술은 공간이 그 무엇도 지시하지 않은 새하얀 무균실에 있을 때 그 힘이 극대화됩니다. 

화이트 큐브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바깥세상과 차단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일상적 질서, 장소적 맥락이 모두 제거되고, 오직 미술만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무중력 공간에 도착한 느낌을 받죠. 흡사 성스러운 예배당에 발을 들인 것처럼요.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은 미술이 이렇게 오직 미적 향유만을 목표로 한 이후부터 오히려 예술 작품의 위상이 변질되었다고 말하며 <내용 없는 인간>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제 관람자가 목격하는 것은 더 이상 그가 의식 속에서 곧장 자신의 가장 고차원적인 진실로 발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관람자가 예술 작품 속에서 발견하는 모든 것은 미적 표현에 의해 중재된다. 미적 표현은 이제 내용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최고의 가치인 동시에 스스로의 힘을 작품 자체를 토대로 작품 자체를 통해 설명하는 은밀하기 짝이 없는 진실로 등극한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왜 가치가 달라질까 


한편으로 이런 전시 공간은 작품에 권위와 무게를 실어주는 역할도 합니다. 실용적인 목적으로 대량 생산된 물건이 미술관에 들어가 완전히 다른 대접을 받은 유명한 사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뒤샹의 ‘샘’은 원래 공장에서 만들어진 변기였지만, 미술관에 들어간 이후엔 아무도 그것을 원래 목적과 내용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마르셀 뒤샹, 샘, 1917



우리 시대의 중요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인 뱅크시Banksy는 2013년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의미심장한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길거리 화가의 좌판이 모여있는 곳에 하나의 좌판을 만들고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그림을 개당 60달러에 판매하도록 한 것입니다.

경매에서 최하 2만 5천 달러를 호가하는 그의 작품도 전시장 바깥으로 나오니 다른 대접을 받습니다. 하루 종일 그림을 팔았는데, 고작 3명이 8장을 사 갔다고 해요. 

작품 자체는 변한 것이 없고, 작품이 놓인 문맥만 바뀌었습니다. 이 퍼포먼스를 통해 뱅크시는 질문을 던집니다. 같은 그림이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왜 가치가 달라지는가.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건 누구인가. 현대의 제도권 미술은 어떻게 스스로를 비호하는가, 라는 질문들이죠.  


뱅크시 유튜브 화면



이렇듯 전시 공간은 다양한 층위에서 감상자의 인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사실을 절실히 체감한 제 경험담을 나눠볼까 해요. 


저는 그간 종교화에서 감동을 얻은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비슷비슷, 고만고만한 그림이라고 생각해 지루하게만 느껴졌죠.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틴토레토Tintoretto 그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워낙 유명한 화가라 대형 미술관에 가면 그의 작품을 종종 만날 수 있었는데, 특별히 흥미를 느낀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 베니스 여행 중 우연한 기회로 틴토레토 그림이 걸려 있는 산 자카리아 성당에 가게 되었습니다. 원래부터 그 공간, 그 자리를 위해 그려져서 수백 년 동안 같은 곳에 걸려 있는 작품과 마주했습니다. 


성당 안쪽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간 방은 세상의 소음이 다 사라진 듯 조용했습니다. 자그마한 창문으로 스며든 햇빛이 틴토레토 작품과 저 사이, 비어있는 공간의 먼지 입자에 반사되어 농밀한 춤사위를 만들어냈습니다. 경건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빛의 품 안에서 틴토레토의 그림을 보았고, 저는 눈물 흘렸어요. 같은 틴토레토의 종교화였지만 미술관 전시실에서 만날 때와 느낌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상상해봅니다. 그림이 아닌 그림을 둘러싼 외부 요인에 힘입어 감동한 그날의 저를 만약 틴토레토가 본다면 뭐라 할까요? 순수하게 그림에만 집중하지 않았다고 꾸짖을까요? 작품 외부의 요소로 감상에 영향을 받았으니 ‘진보’적인 미적 체험이 아니라고 무시할까요? 


이런 상상을 해보는 이유는 현대의 우리가 당연시하는 화이트 큐브 전시실에서의 감상이 미술 감상의 유일한 방식이 아니란 점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근엄한 순수 예술의 세계라는 개념도 근대 이후의 발명품입니다. 미술사학자들이 ‘이것이 미술이다’라고 명명한 수많은 작품이 과거에는 일상생활의 맥락 안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속과 성스러움의 구분짓기를 통해 가장 이득을 보는 주체는 누구인가, 제도권 미술 내부자가 아닌 한 명의 개인인 나는 이 구분짓기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라고요. 


저는 혼자 고고히 부유하는 미술은 별로 반갑지 않습니다. 있어 보이기 위해 괜스레 근엄한 척하는 것도 별로고요. 같은 이유에서 엄숙함을 벗은 전시 공간을 더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밝은 얼굴로 웃어주는 미술관, 친절한 말투를 가진 미술관, 미술의 권위와 아우라를 소중히 여기는 것만큼이나 관람자의 감상 경험을 소중히 생각하는 미술관이 많아진다면 미술과 우리 사이 거리감도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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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술관 가기 전, 예습하시나요? : https://brunch.co.kr/@hyejinchoi/148 

2) ‘미알못’인데 전시회 가도 재밌을까요? : https://brunch.co.kr/@hyejinchoi/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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