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스텔 Apr 05. 2023

계절이 바뀌었다

심란함은 덤으로 찾아왔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운동하러 가기 위해 새벽같이 기상했고 집을 나섰다. 일기예보처럼 어제부터 날씨가 흐리더니 오늘 아침에는 비가 제법 내렸다. 분명 비바람 불고 공기도 차가운데 춥다는 생각보다 습하고 꿉꿉하고 불쾌하게 여겨지는 걸 느끼면서 계절이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겨울은 완전히 지나간 것이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는 거겠지. 한 겨울에는 아침 일찍 헬스장에 도착하면 해가 뜨기 전이라 실내가 살짝 어두운데 한창 운동하다 창 밖을 보면 어느새 해는 높이 떠올랐고 자각하지 못한 새에 실내는 환하게 밝아져 있다. 이 변화의 순간을 정말 좋아하는데 겨울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은 선명하게 바뀌었는데 봄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벚꽃이 피어있는 순간은 몹시 짧았다. 주말에 벚꽃 잎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걸 친구들과 구경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우리가 함께 이 장관을 볼 수 있음을 기뻐했다. 흩날리는 꽃잎 아래 모두가 행복한데 나만 혼자일 때 그게 얼마나 처절하고 슬픈 일인지 우린 잘 알고 있었다. 


전날 저녁부터 이어지는 매서운 비바람에 나무에 가득 피어있던 꽃잎이 다 떨궈지고 있었다. 주말에 난 혼자가 아니었음에도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나무 아래에서 너도 나도 다 같이 함박웃음을 짓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게 괜히 심술이 나서 빨리 비나 내려서 다 떨어져 버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꽃잎이 가차 없이 후두득 쏟아지는 걸 보고 있자니 두배로 심란하다. 지난주부터 예고된 비였고 내 바람 때문에 내린 비도 아닌데...


아침에 헬스장을 갔더니 꽃잎 몇 조각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바람을 타고 창문 틈새로 들어왔나 보다. 자기들이 화려하게 피어났었던 존재임을 나에게 보란 듯이 알리고 싶은 것처럼 구석구석 흐트러져 있었다. 그걸 보는데 세배로 심란하고 미안해졌다. 내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고 그냥 심술궂은 생각만 좀 했을 뿐인데 뭘 이렇게까지 마음이 안 좋을 일인가.


모질고 매몰찬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망하곤 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되고 싶다고. 매사에 무감하고 무심한 사람이 되면 이렇게 혼란스러운 감정, 불안, 고통의 감각을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우연히 창문 틈으로 들어와 바닥에 널브러진 꽃잎을 보면서 되지도 않는 감상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무래도 이번 생에는 이루지 못할 소망이겠지. 

작가의 이전글 무기력과 불안과 허무 그 어디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