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당신은 영원히 모를 이야기
있잖아요. 저는 당신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 어지러워요.
인간이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당신 한 사람을 통해 대부분 겪었고 여전히 겪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들은 고통, 불편, 분노, 불만, 불안, 슬픔이겠고, 그 끝에 아주 간신히 안쓰러움과 애정이 매달려 있어요. 이 감정들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에 누가 서있는지 알면 사람들은 날 손가락질 할지도 몰라요. 글쎄요, 소수의 사람들은 이해해 줄지도 모르죠.
보통의 인간관계였다면 마음 편히 관계의 종결을 선언했을 거예요. 혹은 거리를 좀 뒀을 수도 있겠죠. 정말이지 보통의 관계기만 했다면 말이에요.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매일 매 순간, 나를 더욱더 고통스럽게 만들어요. 이쯤 하면 내가 말하는 대상이 누구일지 눈치 빠른 이들은 알아챘겠네요.(이런 수사적 표현 꼭 써보고 싶었어요. 많은 책에서 저자들이 자주 쓰잖아요. ‘여기까지 읽은 당신이라면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하는 표현이요. 난 이 문장을 읽으면서 한 번도 저자의 의도 혹은 저자가 가리키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챈 적 없거든요.)
여하튼 당신은 이런 내 생각을 먼지 한 톨만큼이라도 알까요.
알면 뭐가 달라질까요.
배신감이나 들지 않으면 다행인 일이겠죠.
어쩌면 평생, 죽을 때까지 모르는 게 나을 거예요.
그렇잖아요.
굳이 알아서 좋을 것 없는 불편한 진실,
몰라도 좋을 이야기,
알아봤자 상처에 소금뿌리는 것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는 사실들...
이런 것들을 일일이 다 알면서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내가 독립운동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나라를 위해 이 한 몸 바쳐 싸우고자 하는 영웅도 아니고요.
세계사를 뒤엎는 엄청 거대한 숨겨진 진실을 밝혀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우주먼지보다 못한, 작디작은 한 인간과 또 다른 인간 사이에 있는,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감정의 파편일 뿐인데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는데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정말로, 궁금했는데
이제와 알아서 뭘 어쩌겠어요.
무엇을 바꿀 수 있겠어요.
내가 나로 살아야 하는 건 변하지 않는 진리이고
당신 역시 그러하죠.
내가 과거를 바꾸거나, 시간을 역행할 수 있거나, 과거 잘못된 선택의 순간을 번복할 수 있는-
그러니까 양자역학을 완전히 거스를 수 있는 어떤 힘이 주어진다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굉장히 좋아하는 만화책이 있어요. 주인공은 꿈도 미래도 희망도 없는 텅 빈 여자아이예요.
그리고 무수한 사건을 거쳐 종국에는 세계의 신이 됩니다.
붙잡을 것이 없어 공허했던 주인공의 삶 속에 간신히 찾아온 우정과 사랑, 이 모든 것을을 뒤로 한 채.
이것들을 저버린 것이 이 여자아이의 선택이었는가. 그렇지 않아요.
모든 것은 이 여자아이를 신으로 옹립시키기 위한 시련 또는 시험이었던 거예요. 참으로 잔인하죠.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바꿀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지만 그게 순리에 어긋난다는 걸,
그래서 그 선택을 하면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우리의 주인공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기꺼이 운명을 받아들입니다. 신이 된 거예요.
나는 이 주인공이 참 부러웠고 또 대단했어요. 나에게 그런 힘이 주어진다면 나는 미련 없이 주저하지 않고
오로지 나의 안위만을 위한 아주 이기적이고도 못된 선택을 할 자신이 차고 넘치거든요.
그로 인해 마치 나비효과처럼 몇몇의 인생을 다소 비틀게 된다 해도, 죄책감 가지지 않을 것 같거든요.
또 모르죠. 그럴 수 없으니까 이렇게 못되게 말할 수 있는지도 몰라요.
당신 때문에 내 삶이 이토록 고통스럽다 같은 평면적이고 시시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됐죠.
머리로는 아는데, 사무치게 잘 아는데,
다른 이를 탓해봤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고 나의 고통만 가중된다는 걸 정말로 잘 알고 있는데도
이 모든 번뇌를 털어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당신을 원망하고 이해하고 또 원망하고 이해하고... 끊임없이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네요.
인간이어서,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걸까요. 하잘것없는 보통의 이기적인 그저 그런 인간이라서?
혹은 내 그릇이 간장종지보다도 작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