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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 Apr 18. 2024

제5도살장

인간만이 존엄하다고 여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 아이바오, 러바오, 푸바오, 루이바오, 후이바오의 사랑스러움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5도살장』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살아남은 포로였다. 그는 시간의 환각(소설에선 시간여행이라고 표현하는데 내가 읽었을 땐 환각과 다름없었다.)과 외계행성에 붙잡혔다고 믿는 환각을 번갈아가며 겪고 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도 일부 섞여있다. 작가 본인이 전쟁에 참전했고 포로로 붙잡혔고 간신히 살아남은 과거가 있다.


내가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주인공이 외계행성에 납치된 일화를 소개하는 대목이다. 주인공에 따르면 우주 어딘가에는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이 존재하고 이 행성의 거주자들은 지구에서 인간을 하나씩 채집해 자신들이 마련해 둔 “인간동물원(유인원)“에 인간을 가둔다. 인간 생활습성을 고려한 인간의 거주 환경을 마련한 뒤 인간을 관찰한다. 언어가 통하진 않으나 간단한 의사소통은 번역기로 번역이 가능하여 유인원 철창 밖에 있는 트랄파마도어인과 인간의 짤막한 문답 정도는 가능하다. 잡혀온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소리를 지르거나 스트레스를 못 이기고 이상행동을 하면 관람객들은 불쾌해하며 자리를 뜬다. 주인공이 트랄파마도어에서 겪은 이 일화는 책에서 극히 일부분을 차지함에도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1969년에 출간된 이 소설이 21세기를 사는 내게 온전히 닿았다.


푸바오의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명백히 푸바오는 동물원에 갇혀있고 또 다른 동물원으로 이송된다.(옮겨지는 곳이 국내보다 월등히 좋은 환경이라고 해서 다행이다.) 푸바오의 자유의지는 그 어디에도 없다. 동물원에서 자라는 동물들에게 사육사 개개인이 아무리 애정을 쏟아도, 야생에서 살아야 하는 동물에게 완벽한 환경일 수 없다. 푸바오는 귀하고 인기가 많아 관심과 보살핌을 누리지만 그렇지 못 한 동물들의 현실은 어떨까.


인간의 존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는 왜 인간만이 존엄하고 자유의지를 보장받아야 하며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여길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이 오만함의 끝은 어디일까.


푸바오 중국송환을 지켜보던 엄마는 중국인들은 푸바오를 돈벌이로밖에 보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 용인 에버랜드는 뭐 크게 다른가 싶다. 푸바오의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으로 에버랜드는 유래 없는 인기를 누렸고 푸바오를 보기 위해 에버랜드를 찾는 관람객들은 입장료를 비롯해 푸바오 캐릭터 상품에도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다.(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에버랜드는 사파리에 있는 다른 많은 동물들의 복지에 힘쓸 것인가. 정말 그럴까.


동물원은 최종적으로는 없어져야 하지 않은가. 정말로 멸종위기동물을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함이라면 더더욱, 구경꾼을 허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역지사지 사자성어가 이처럼 사무쳤던 읽기가 또 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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