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무력감을 가지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혹은 당신들에게
무력 : 의욕이나 활력이 없음.
무기력 : 의욕이나 활력이 없음.
출처 - 다음 국어사전
무력과 무기력 단어의 사전적 뜻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줄 오늘에서야 처음 알았어.
혹시 조금이라도 다를까 싶어 한 번 찾아봤거든.
요즘 사는 게 좀 어때? 지긋지긋하니? 아니면 힘들어서 숨이 좀 가빠?
사실은 내가 그래. 한동안 괜찮아진 줄 알았어. 그런데 괜찮은 게 아니었나 봐. 있잖아.
절망과 희망은 끝과 끝, 대척점에 있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 종이 한 장 차이일 수도 있고 한 뼘만큼의 거리감일 수도 있고, 광년단위만큼 멀게 느껴질 수도 있고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을 수도, 아서왕의 칼 마냥 단단히 못 박혀 고정되어 버릴 수도 있고 그렇잖아.
요즘 나는 어째서인지 희망의 ㅎ도 보이질 않아. 더듬이 한가닥이라도 보일까 꼭꼭 숨은 바퀴벌레마냥
어디 마음 한구석 벼랑 깊숙이 도망가버린 느낌이야. 마치 도돌이표처럼 다시 찾아온 짙은 불안과 우울을
견디다 못해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병원을 찾았는데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걱정하시는 것에 비해
정말 열심히는 살고 계시다고.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어. 선생님은 긍정의 의미를 담아 말씀하셨겠지만
나는 글쎄. 어떻게 받아들였을 것 같아?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못 돼먹은 또 다른 나는 기어코 선생님의 말을 곡해해버리고 말지.
그러게요, 선생님. 제가 정말 소득 없이 열심히만 살고 있지요.
무기력이 온몸을 짓누르고 있는데 성실하게 출근하고 운동하고 병원 다녀오고 꼬박꼬박 밥 챙겨 먹고
공부도 하고. 그러게. 정말... 객관적인 정보만 들어보면 이렇게 성실할 수가 없겠다 싶어.
그런데 어째서 내 마음은 이렇게 하루하루 지옥일까 모르겠어.
의사 선생님과 비슷한 말을 상담선생님도 하시고 헬스장의 담당 트레이너 선생님도 하셔서
그들의 말만 들으면 마치 '성실'이란 단어를 사람으로 그려놨으면 그게 내가 됐을까 싶을 정도야.
그런데... 있잖아. 오래된 전래동화 혹은 교훈을 주는 어떤 이야기들을 보면,
거기 주인공들이 그렇게 성실하잖아. 성실하고 바르고 예의 있고 선함이 기본 설정이잖아.
그래서 온갖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삿된 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본인만의 신념을 지키며
씩씩하게 살다가 결국 복을 얻어 행복해지잖아.
주인공을 못살게 굴던 악역들은 전부 그에 마땅한 처지가 되어버리고 말이야.
그러니까 권선징악이라고도 하는 이 교훈말이야.
나는 그럼 언제 이 고생에 대한 보답을 받고 인생이 좀 편해질까. 나는 딱히 괴롭히는 악당들이 없어서
교훈이 될만한 이야기가 아니라서 이렇게 잔잔하고도 지독하게,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빛볼날 없이
고생만 하다가 끝날 그저 그런 이야기가 돼버리는 걸까? 아니면 나는 그냥 성실하기만 할 뿐
특별히 선하지도, 바르지도 않은 그저 그렇고 그런 인간이라 고생 끝에 낙이 온다의 주인공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걸까?
어떤 드라마에서 그랬지. 버티는 놈이 이기는 거라도. 그리고 어떤 유명 배우도 비슷한 말을 했어.
살아남으면 된다고. 오래 살면 된다고.
이 버티면 된다의 버티기가, 언제까지일까? 유효기간이 달리 정해지지 않은 무한정 버티기가 이제 슬슬
정말로 버거워. 정말로 숨쉬기가 힘들어. 이 무력감에 정말 끝이 있을까.
너는 어때? 잘 버티고 있어? 계속, 그렇게 버티면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