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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 Sep 18. 2023

절망에 대하여

희망은 신기루에 가까운 반면 절망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있잖아. 그런 날이 가끔 있어.

지금 내가 밟고 서 있는 이 지면이 언젠가는 폭삭 무너져서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발이 푹푹 꺼져버리는 모래사막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감정을 느끼는 날.

발이 꺼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끝내는 온몸이 고꾸라져 모래로 뒤덮인 채 그렇게 파묻힐 것 같은 공포를 느끼게 되는 날.


희망은 한없이 가늘고 연약하고 또 희미해서 그 존재감을 눈치채는 데만도 수개월이 걸렸는데 절망은 어째서 이토록 가까이, 이토록 선명하게 사람을 위협하고 축소시킬 수 있는 걸까?


희망은 도통 곁을 내어주려 하지 않고 마치 내외하듯이 멀찌감치 떨어져서 손에 닿을 듯 말 듯, 당장 자길 잡을 수 없다면 금세 사라져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위협하는데 절망은 바로 곁에, 가느다란 숨결도 천둥소리처럼 들리는 귓가에 바짝 붙어서 진혼곡을 연주하며 널 위한 노래라고 위협하지.


희망을 절망처럼, 절망을 희망처럼 착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진혼곡은 사실 아름다운 곡이기도 하니까. 이름다운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애써 살아가려는 영혼을 끊임없이 유혹하잖아.


인간이 희망보다 절망을 더 가까이, 친숙하게 여기는 것은 사실 어쩌면 당연한 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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