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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이 되고 싶다던 아들

연락 하기 힘드네..

by 조앤

둘째아들과 연락이 정말로 쉽지가 않다.

바쁘단다. 전화를 해도 받질 않고, 안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고, 가족 단톡방은 아예 읽지를 않고, 이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없다. 그럴때면 버럭 속에서 화가 난다. 아니 아무리 바빠도.. 그래도 그렇지 .. 우리 죽어도 모르겠구만.. 우리의 분노 게이지가 마구 올라갈 때 쯤.. 가끔씩 답이 한꺼번에 온다. 너무 바쁘단다. 미안하다고.. 또 어떨 땐, 불쑥 4시간이나 걸리는 집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면 부글부글 끓던 마음도 사라지고.. 얼마나 바쁘면 그럴까 하는 생각에 짠하다.


어릴 때..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물으면

아들은 한 동안 해적이 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 아들이 귀엽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해서

'왜 하필이면 해적이야..?' 물으니

보물선을 발견해서 거기서 나온 보물을 다 갖고싶다고 했다.

아마도 레고 시리즈 중에 보물선과 해적선을 좋아했는데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다.

너무나 특이한 희망이라

아들을 생각하면

항상 해적이 되고 싶다고 했던 생각이 난다.


조금 커서는

온 세상을 여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더니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당시 초등학교 사회교과서 중에

'사회과 부도'라는 것이 있었다.

온 세계의 지도와 자세한 정보들이 있는 책이었는데

그 책에 자주 몰입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고 또 읽었다.

매일 그 책을 읽었고 매일 일기를 썼다.


그러다가 미국을 오게 되고

미국에 온지 한 달만에 이젠 동전을 모으기 시작한다.

왜 동전을 모으는 지 물어 보았더니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값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미국에서 적응하느라 고생 많이 했다.

어릴 때 별명이 '김 수다'였다.

아들은 애기때 부터 말을 참 잘했다.

그러던 아이가 미국와서 처음에 한 마디도 못하고 못알아듣고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찌저찌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그때는 우리가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었는데

9학년일때 아들이 학교에서 액티비티로 레슬링을 했다.

시합이 있다기에 가서 구경했는데

코치가 와서 하는 말이

미국 애들 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고 추켜세워 주었다.

고마웠다.

힘들었던 미국생활에 잘 적응한다는 말 같아서 고마웠다.


그랬던 아들이 다 커서 말과글로 승부를 봐야 하는 직업을 갖고 살고 있다.


저렇게 바빠서 장가는 잘 가려나.. 알아서 잘 하겠지만

자기가 다 알아서 할 거니까 걱정 말라고만 한다.

아들 결혼시키는 일이 이거 너무 쉬운거 아닌지... 이대로라면 결혼식 당일에나 만나게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ㅠㅠ

연락이나 되어야 뭘 의논을 할 건데

알아서 한다니 하도록 놔 두는 수 밖에..


연락안되도 그냥 기다리는 게

그게 도와주는 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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