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도시 매거진 vol.04_안동 (1)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처음 이 표지판을 봤을 때는 살짝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붓글씨로 길게 늘여 쓴 안동의 슬로건이 도시 곳곳에 걸려있는데요. 과도한 진지함이라고 할까, 살짝 촌스러운 구석이 있는 문구. 한편으론 우리가 안동에 가지고 있는 선입견인 전통과 보수의 이미지와 딱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아이 서울 유'와 '다이내믹 부산'이 판치는 도시 브랜딩의 세상에서 안동은 정면 승부를 고집했습니다.
슬로건은 'I ♡NY'처럼 강렬해야 해. 'I amsterdam'처럼 경쾌해야 돼. 브랜드 전문가 여러분, 안동에 오셔서 어디 한번 조언해보세요. 아마도 상대방은 조용히 붓을 들고 '한국 정신...'이라고 천천히 쓰기 시작할 겁니다.
맞는 말이긴 합니다. 우리의 행정수도는 세종시이고, 소비와 물질문화의 괴수가 서울이라면,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뿌리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곳은 누가 뭐래도 안동입니다.
500년 전, 승승장구 출세 가도를 달리던 한 남자가 서울 생활을 버리고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사립학교를 세워 수양, 연구, 교육을 병행했는데, 전국의 인재들이 문하생이 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에 숨은 진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라.' 그가 주창한 철학은 동아시아에 전파되고 후세에 이어졌습니다. 도산서원에서 퇴계 이황이 이룬 업적입니다.
우주만물의 이치와 근원을 찾기 위해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머물던 도시. 유교, 불교, 전통문화가 길러진 장소가 바로 이곳, 안동입니다.
학자들의 고담준론만 벌어졌던 것은 아닙니다. 삶의 공간에도 우리의 정신문화는 뿌리내렸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안동의 어느 훌륭한 가문에서 자란 맏아들이라면, 평생의 직업이 태어나자마자 정해집니다. 집을 지키고 조상을 기리는 일 말입니다. 종갓집을 잘 가꾸고, 가족 구성원의 변화를 기록하고, 대대로 내려오는 음식의 비법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때마다 씨족들을 모아 제사 지내는 임무가 당신에게 주어집니다. 아직도 이러한 가족과 지역 중심의 전통문화를 지키는 종갓집이 안동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혈연과 지연을 기초로 세워진 우리의 오래된 가치와 행동 규범이 이 도시에서는 아직도 지켜지고 있습니다.
이럴진대, 안동이 스스로를 정신문화의 수도라 선언한다고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런데 매력도시 연구소가 취재한 안동은 정신문화의 수도와는 다른 또 하나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안동 중심가에는 멋진 스페인 식당 <존 하테치아>가 있었고, 외곽으로 조금 나가 보니 지역 이름을 내건 브루어리 <안동 맥주>가 영업 중이었습니다. 도시를 돌아본 후, <라비엉퀴진>에서 근사한 프렌치 디너를 즐겼습니다. 물론 병산서원과 하회마을을 지나친 것은 아닙니다만, 한옥에서 숙박을 하고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의 문화에 바탕을 둔 매력 장소들을 돌아다닌 것은 기대치 않았던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요컨대 우리가 체험한 안동의 매력은 한국의 전통문화와 글로벌 문화의 강한 대조였습니다. 전통과 글로벌의 원투 펀치가 번갈아가며 반전의 매력을 더했습니다.
안동에서 만난 사람들도 반전의 연속이었습니다.
굽이굽이 깊은 산길을 따라 들어가니 전통 마을 <지례예술촌>을 지켜내는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지례예술촌의 대표는 차분한 목소리로 어떻게 새로운 시대에 오래된 한옥이 의미 있게 이용될 수 있을까 설명했습니다. 안동의 도심에는 콧수염을 기르고 머리띠를 두른 사장님이 뜨거운 철판에 소고기 패티를 굽고 있습니다. 그의 용감한 열정 덕분에 안동 시내에 첫 번째 수제 버거 식당이 생겼습니다.
전통과 글로벌의 정반합正反合.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고 머릿속에 그린 매력적인 안동어 Andonger의 이미지입니다.
전통과 글로벌 문화의 정반합
비록 서로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있었지만, 우리가 만난 안동의 매력적인 사람들에게는 비슷한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내 방식을 지켜간다는 고집스러움 말입니다. '아니, 인구도 얼마 없는 이런 소도시에 스페인 식당이 웬 말?' 만약 이런 질문을 한다면, 안동이 고향인 셰프는 '내가 하고 싶으니까'라고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묵묵히 하던 요리를 계속할 겁니다.
지금 안동에 글로벌 매력을 더하고 있는 새로운 세대들은 하나같이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내가 생각한 방식대로 할 거야'라는 고집스러움이 은근히 드러났습니다. 일본 말을 빌리자면 '곤조根性'가 있는 매력적인 고집쟁이들이었습니다.
백 년 넘게 이사 한번 안 가고 종가를 지켜내는 가족이든, 다른 사람들 생각 같은 것 신경 쓰지 않고 고등어를 서양풍 음식에 얹어내는 셰프든, 매력도시 연구소가 만난 안동어들은 하나같이 흔들림 없이 자신이 믿는 바를 지켜내려는, '한 성격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근성과 정신. 안동의 슬로건을 가볍게 웃고 지나칠 일이 아니었습니다.
고집쟁이들의 매력
트렌드와 라이프 스타일의 도시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다른 소도시들 사이에서, 점잖지만 완고한 어조로 우린 정신이 매력이야,라고 말하는 안동. 관광객의 흥미를 끌기 위해 전통 음식점과 카페를 적당히 섞어 복고풍 거리를 조성하고 있는 여타의 전통 도시에게 안동은 생각지 않았던 메시지를 보냅니다.
전통은 전통대로, 현대는 현대대로.
두 시대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강한 컨트라스트를 이루면서 도시가 매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안동의 정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신구 세대가 도심과 자연 속에 흩어져있는 점조직의 도시. 이것이 매력도시 연구소가 그린 안동의 상像입니다.
자, 안동이 지켜온 정신에 새로운 세대들이 글로벌 옷을 입히고 있는 이 중요한 시점을 확인하러, 함께 가보시죠. 매력도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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