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는 아닙니다 2
닭도리탕은 닭볶음탕이 될 수 없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나는 미식을 즐기지 않는다. 무언가를 먹는 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열렬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오감 중에 미각이 가장 떨어진다. 지나가는 개미 소리에도 짜증을 내는 내가 그나마 사람대접을 받고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가 무엇을 만들어줘도 접시에 고개를 처박고 아무 말 없이 배를 채우는데 집중한다. 가끔 상한 찌개 국물도 아무 생각 없이 입에 넣었다가 뱉기도 했다. 그런 무심한 면에서 나는 최고의 딸이었다. 우리 엄마에게는.
생일이나, 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나, 여튼 엄마가 보시기에 대견한 일이 했을 때 나는 늘 닭도리탕을 주문했다. 엄마는 그때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아유우, 우리 딸은 만들기 쉬운 음식을 좋아해서 너무 이뻐.”
내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좋아하지만 부엌에서 고생하시는 엄마의 모습이 가슴 아파 일부러 간단한 음식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희대의 효녀였다면, 아마 우리 엄마는 조금 더 행복하셨을 거다.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나는 엄마가 만들어주는 음식 중에 닭도리탕이 제일 맛있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부엌에 들어와 요리하는 도중에 참견하는 것을 질색하셨던 엄마의 성정 덕분에 나는 지난해까지 이 맛있는 걸 어떻게 만들어 먹는지 알지 못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봄, 엄마가 내 곁을 떠나신 후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아 이제는 엄마가 해주는 닭도리탕을 영영 먹지 못하겠구나.
엄마의 레시피는 간단했다(고 하셨다). 손질된 생닭에 고춧가루를 솔솔 뿌려 자박하게 끓여내면 된다고 하셨다. 이것도 음식에 대단히 고급 취향을 가진 미식가인 오빠가 요리법을 물어보자 알려주신 거다. 나는 애초에 그런 걸 물어볼 딸이 아니었으니까. 요리에도 취미가 있었던 오빠는 그렇게 하면 물이 너무 많이 나와서 엄마가 해준 그 맛이 나질 않는다고 대답하니, 별다른 대꾸 없이 씨익 웃으셨다. 결국 우리 둘 다 엄마의 비법은 모른 채로 살아가게 되었다.
며칠 째 잠을 이루지 못해 늘 피로하던 지난 해 어느 여름 낮에 나는 마트에서 닭볶음탕용 생닭과 한 팩과 감자 한 봉다리를 사왔다.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가 해준 그 요리를 내 손으로 해봤다. 인터넷에서 찾은 황금 레시피를 차근차근 읽으면서. 조심조심 닭을 씻어서 고춧가루를 솔솔 뿌리고 고추장과 맛술과 다진 마늘을 한 숟갈 넣고 보글보글 끓였다. 수십 분을 끓이니 꽤나 그럴듯한 닭요리가 완성되었다. 야들야들한 날개를 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엄마가 해준 맛과 비슷한지 아닌지 아리송했다. 아마 거기에는 한참 모자란 느낌이었던 듯하다. 이틀 동안 한 마리를 다 먹어치우고 다시는 이건 요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식당에서 닭볶음탕은 주문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게 닭볶음탕을 먹으러 가자고 말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생일마다 늘 먹었던 그 닭도리탕이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