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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왕수 Mar 10. 2018

이기적 유전자는 어떤 책인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를 읽고

1. 

책을 읽는 목적중의 하나는 관점의 다양성을 얻는 것이다. 관점의 다양성은 결국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해석력 때문에 필요하다. 때문에 관점이 참신하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좋다고 할 수만은 없다. 시각의 참신성보다는 실제로 그 관점이 옳은지 그리고 얼마만큼 짜임새 있는 논리를 갖추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이 책의 관점은 이렇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과 식물은 유전자의 번식을 위한 생존 기계이며, 동식물이 특정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유전자의 번식가능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전자의 번식 가능성에 도움이 되는 행동만을 한다. 책 속에 소개된 사례들이 하나같이 유전자의 번식 가능성 증대와 교묘하게 연결되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그 해석의 기발함과 참신함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 해석적 참신함 때문에 ‘이야기 짓기의 오류’ 와 같은 느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가령 맹수를 만났을 때 자기 키만큼 뛰어올라 동료들에게 맹수의 등장을 알리는 톰슨가젤의 사례가 그렇다. 맹수의 눈에 띄기 쉬운 점프 행동은 죽음 위험을 높이는 행동으로 비쳐지지만, 실상은 건강함의 과시라는 것이다. 높이 뛰기 행동으로 건강함을 과시함으로써 맹수의 사냥 타겟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그 행동을 통해 위험이 낮아진다는 것이 도킨스식 해석이다. 문제는 이 것이 실험이나 사례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증명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진화론에 뿌리를 둔 ‘이기적 유전자론’ 또한 결국은 진화론과 창조론중 무엇을 ‘믿는냐’ 따위의 신념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고무적인 것은 책 속의 사례 해석이나 논리전개가 대체로 반박이 불가한 수준의 치밀함과 일관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비판을 해보자면, “대부분 수긍이 가지만 모든 것을 유전자의 번식 가능성과 결부시키는 것은 지나친 일원론이 아닌가” 라는 정도일 것이다. 책을 통해 복잡한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을 얻기를 기대하는 독자라면 그 효과를 충분히 기대해봄 직한 작품이다. 



2.

"나는 진화에 따른 도덕성을 주장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물이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가를 말할 따름이다. 또한 우리 인간이 도덕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어떠해야 한다는 주장”과 “어떠하다고 하는 진술”을 구별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비정한 이기주의라는 유전자의 보편적 법칙에 기초한 인간 사회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험악한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가 그러한 것에 대해 아무리 개탄한다 해도 그것이 사실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 책을 통해 생물학적인 지식 외에 부수적으로 배워야 할 것이 하나 있다면 사실의 인정과 당위성 주장은 별개라는 부분이다. 도킨스는 책의 곳곳에서 ‘사람=유전자의 번식욕구에 의해 프로그램 된 유전자의 생존기계’ 라는 사실을 전달하고 있지만, 그것이 사람의 이기적 본능의 당위적 발현을 말하고자 함은 아니라고 수차례 밝힌다. 대개의 사람들이 작가가 ‘인간의 본연적 이기성’을 인정한 것을 두고 이를 이기성의 발현에 대한 두둔이라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도킨스가 사실 인정과 당위성의 주장이 별개임을 수없이 해명해도 사람들이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기적인 걸 인정하고 이타성을 배우는 방식과 애초에 이기적인 것을 인정도 해서는 안되다는 생각 중 과연 사회의 이타성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되는 생각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결정론(IQ가 높다고 믿으면 실제 성적이 좋은 것) 에 이토록 영향을 받게되는 것일까? 생각해볼만한 문제다.



3.  

“나는 유전자에 의해 마이크로매니징 당하고 있는가?” 

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사람들은 한번쯤 해봤음직한 질문이다. 내가 나의 개인적 판단과 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사실은 유전자의 판단을 거친 결과물이고, 나는 그저 움직이기만 할 뿐인것인가. 혹시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고 착각한다면, 그것마저 인간의 동기를 관리하기 위한 위대한 유전자의 명령 프로그래밍의 일부가 아닐까와 같은 다분히 음모론적인 상상도 해봤다. 하지만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인간의 뇌가 아닌 유전자의 지침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과도한 억측이다. 도킨스는 유전자의 지배와는 별개로, 개체인 인간은 자유의지와 문명을 통하여 유전자의 독재를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유전자가 생존 기계의 행동을 제어한다고는 하지만 그 시간적 차이 때문에 간접적으로 조정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유전자를 대신하여 뇌가 근수축의 제어와 조정을 통해 생존 기계의 성공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우리는 유전자에 의해 진화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를 향해 움직이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지만, 그것은 원칙과 방향성 측면에서의 작용이며 한계 또한 뚜렷한다. 예를 들면 독신주의를 표방하고 짝을 찾지 않는다거나, 번식의 목적이 아닌 육체적 쾌락을 위해 성관계를 갖는 행위 등은 사실 유전자의 번식행위와는 전혀 무관한 종류의 것들이다. 사실 이 질문에 오면 도킨스의 답변은 다소 궁색해진다. 여기서 도킨스는 또 하나의 새로운 개념을 내놓는다. 그것을 그는 밈(Meme)이라고 불렀다. 


밈은 유전자처럼 서로의 습성과 행동을 모방(학습)하면서 자기 복제를 한다. 그러한 모방 과정은 뇌에서 뇌로 펼쳐지는 무형의 복제이기에 전파 속도가 유전적 진화보다 빠르다. 유전자와 밈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보완적 관계를 형성하지만 때로 적대적 관계가 나타나기도 한다. 예컨대 독신주의와 같은 것은 유전자의 명령에 반하는 종교적 밈이 만들어 낸 진화 형태이다. 이러한 밈의 특성은 인간이 유전적 진화라는 유전자 종속을 넘어서고 독자적 진화로 나아갈 수 있는 능동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국 다른 생물과 다르게 인간은 스스로 사고할 수 있고, 사고의 결과물을 공유하고 누적할 수 있는 데에서 그 특수성이 있다. 유전자의 진화는 100-200년에 걸친 당대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축적되는 누대의 문제다. 반면 밈이라는 문화적 유전자는 번식 속도가 빨라 인간의 행동에 빠르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독신주의나 자살과 같이 유전자의 번식 지침과 대립하는 행동들도 자행하는 인간일진대, 하물며 아침에 몇시에 일어날지, 아침식사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와 같은 문제들에 유전자 이론을 끌어들이는 것은 결정론에 대한 지나친 신봉이 아닐까.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의지와 판단의 힘은 유전자 이론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우리의 삶을 무기력에 빠져있도록 하기에는 너무 막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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