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일의 '집요한 상상' 을 읽고
1. Creative 란 무엇인가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이 가져온 변화는 내가 취업을 할 무렵 취업시장에도 불어닥쳤다. 창의적 인재에 대한 요구가 늘어난 것이다. 미술이나 음악 분야에서만 요구되는 것으로 생각했던 창의력에 대한 시장의 높은 관심에 나를 포함한 많은 친구들이 좌절했다. 창의력이라는 단어는 취업 시즌이면 듣게되는 '센스'보다도 더 막연하고 어려운 개념이었다. 마침 그 해, 이제 갓 8살이 된 뽀로로는 2011년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창의성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한다. 창의성을 증명하기 위한 이야기를 지어내기에 급급했던 나에게 한 국가의 창의성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한 뽀로로라는 녀석은 부러운 존재였다. 이 책은 뽀로로 아버지 최종일 대표가 밝히는 그의 Creative 론이다.
이미 적지 않은 작가들이 창의성을 천재성 혹은 영감이라는 개념과 떼어 놓고자 노력했다. 최종일 대표 역시 창의성은 순간적 영감과 거리가 멀다고 한다. 그의 대답을 찬찬히 뜯어보면 외려 창의성은 철저히 전략적으로 계산된 결과임을 깨닫게 된다. 그가 밝히는 창의성은 전략, 이성, 조사, 모방에 뿌리를 둔 개선과 유사한 개념이다.
많은 사람들이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오해를 한다. 타고난 재능을 가진 이들이거나 아주 특별한 경험을 가진 괴짜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것이라는 오해 말이다. 선천적으로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나 역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게 뛰어난 점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남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투여해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일뿐이다. 나와 크리에이티브는 노력의 산물이다. 물론 뽀로로도 예외가 아니다.
뽀로로라는 캐릭터의 탄생만해도 그렇다. 캐릭터 선정부터 글로벌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최종일 대표는 피부색 등의 한계가 있는 사람보다는 동물이 더 적합한 캐릭터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들을 나열하고 시장내에 이미 각 동물의 카테고리를 소유하고 있는 경쟁자가 있는지 조사한다. 그렇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동물들과 경쟁력을 기준으로 하나씩 검토하던 중 리스트 저 아래에서 펭귄을 발견한다. 당시 펭귄을 모티브로 한 가장 유명한 캐릭터는 영국의 ‘핑구’라는 캐릭터였다. 그는 새로운 펭귄 캐릭터가 자칫 핑구의 아류작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핑구’ 의 캐릭터, 디자인, 스토리, 연출, 제작방식, 마케팅, 수출 등을 빠짐없이 분석한다. 그리고 모든 부분에서 핑구와 차별화되는 포인트를 둔다. 핑구가 펭귄의 외양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가지고 있다면, 뽀로로는 귀여움을 강조한 이등신으로 표현했고, 핑구가 펭귄 가족을 내세웠다면 뽀로로는 친구를 내세웠다.
뽀로로와 친구들의 행동과 움직임에 대한 묘사도 그는 작가적 상상력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는 서점에 가서 어린이들이 동화의 어떤 장면을 보고 웃는지 관찰했다. 아이들이 놀다가 싸우면 말리지 않고 싸움이 어떻게 전개되고 마무리되는지 지켜봤다. 집에 놀러오는 아이의 친구들에게 시제품을 틀어주고 그들이 실제 어디서 웃는지 무엇에 집중하는지 메모하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뽀로로는 치밀하고 까다롭게 계산된 창작이다.
2. 좋은 목표란 무엇일까
뽀로로의 브랜드 가치가 결코 작은 성과는 아니지만, 아직 ‘제2의 미키마우스’ 를 꿈꾼다고 말하기는 섣부르다. 그래서 우리는 사업적인 부분에서 디즈니를 뛰어넘겠다는 포부로 접근하지 않는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달성 가능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앞뒤로 몇 번 읽었다. 아마 최종일 대표의 모습이 이질적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1990년대까지 대한민국은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하청제작국이었다. 업계에는 우리의 애니메이션 제작기술이 좋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만연했지만, 그는 우리나라의 싼 인건비에 주목했다. 제작기술보다도 싼 인건비가 핵심이라면 이 산업은 언젠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로 넘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금강기획이라는 꽤 규모있는 광고업체에서 애니메이션 기획을 하던 그는 IMF 로 팀이 구조조정을 겪자 팀원들을 이끌고 아이코닉스를 창업한다. 그는 세계를 무대로 하는 애니메이션 '기획' 업체를 만들고자 했다. 자본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 직장의 사장을 만나 가장 먼저 투자할 수 있는 ‘기회’ 를 주겠노라고 당당히 이야기했던 그의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그런 그의 이미지가 이 대목에서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그가 생각하는 목표의 조건이 너무 도전적이지 않다고 느꼈던 것 같다.
조직의 목표는 도전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개인의 목표와는 다르다. 조직의 목표는 많은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좋은 목표는 조직에 영감을 주고 사람들로부터 흥분을 이끌어 낸다. 담대하고 도전적인 목표는 구성원들의 심장 박동을 빨라지게 한다. 조직의 목표는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담대하고 원대할 필요가 있다. 조직 구성원들은 리더의 목표에 관심이 많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 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리더의 꿈을 이루는 데에 조직 구성원의 협력은 필수적인 요소다. 그래서 조직의 목표는 그들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하던대로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겠다 싶은 현실적인 목표가 결코 조직적 관점에서 좋은 목표는 아니다.
목표는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연 매출 30억을 하던 사업의 연간 매출 목표를 35억으로 정하면, 작년에 하던 방식에서 조금 더 개선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연 100억 매출을 목표로 삼는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생각의 방향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조직의 목표는 ‘가능한’ 원대하고 도전적이어야 한다.
‘가능한’ 이라는 정치적인 수사를 쓴 이유는 듣기에만 마냥 좋은 목표가 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은 리더의 목표가 무엇인지 자주 묻는다. 묻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리더를 관찰한다. 과연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본다. 결국 구성원들이 믿는 것은 리더의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리더의 행동이 실제 그들이 말하는 목표와 얼마나 연관되는지를 보고, 리더의 눈과 목소리를 통해 그가 진심으로 목표를 믿고 있는지 본다. 떨리는 목소리와 진심어린 눈빛이 느껴지고, 또 리더가 진심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행동하고 노력한다고 여기면 구성원들은 폭발적인 잠재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리더는 진심으로 달성 가능하다고 믿는 목표를 말해야 한다. 어차피 거짓말은 오래갈 수 없다.
두 가지를 종합해 볼 때, 조직의 좋은 목표는 리더가 달성 가능하다고 믿는 최대치의 목표가 된다. 리더가 달성 가능성을 믿고 그를 위해 헌신할 수 있다면, 화성 식민지의 개척이 연 매출 1천억 보다는 훨씬 값진 목표다.
사실 앞서 인용한 문장은 전후의 설명이 부족하다. 짧은 문장 하나를 두고 좋은 목표냐 아니냐를 이야기 하는 것은 말꼬리만 잡는 일이 된다. 책의 후반부에는 최종일 대표가 시종일관 세계 최고와 1등이라는 목표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사실이 잘 나타난다. ‘그럼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나는 직원들에게 ‘최고’, ‘1등’에 대해 말한다. 워낙 자주 하는 말이어서 직원들은 새로울 것도 없을 것이다. ‘최고’ 를 말할 때 아이코닉스 구성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해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열망을 품고 있고, 비록 진행 속도는 완만해 보일지 몰라도 우리가 목표로 하는 방향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다는 믿음과 언젠가는 분명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