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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왕수 May 07. 2018

즐거운 만남의 조건

나이가 많아질수록 인간관계의 외연은 넓어진다. 지인의 숫자가 누적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주 만나는 친구들의 숫자 역시 마냥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내 시간이 비싸지기 때문이다.  


대학시절에는 원하는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한 학기에 많아야 21학점을 듣는 일반적인 학생에겐 일주일에 최소 40시간을 근무하는 직장인이 가질 수 없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게다가 일년에 4개월씩 어김없이 주어지는 방학도 있으니 사실상 바빠서 누군가를 만날 수 없는 상황은 흔치 않다. 학과공부에 아르바이트까지 시간을 쪼개어 사는 학생들에게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핑계를 대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대학생때 시간적 여유가 가장 많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학시절 이보다 더 바쁠 수 없다고 말했던 친구들은 사회로 나가 하나같이 더 큰 목소리로 시간의 부족함을 호소한다. 그때 조금 더 다양한 활동을 해보지 못해 후회스럽노라는 이야기가 쉬이 들린다. 호시절은 대개 인식하지 못한 사이 지나가 아쉬움을 남긴다. 결혼후 아이를 낳게 된다면 사실상 개인적인 시간은 거의 없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가 용인하는 일정만을 소화한다. 육아에 대한 부담은 서로를 상대에 대한 둘도 없는 감시자로 만든다. 결혼을 한 친구들이 경조사나 회식 핑계를 대고 나와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드라마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사람은 자원이 한정되어 있을때 사용처를 더욱 깊게 고민하게 된다. 내가 가진 거의 유일하며 비싼 자원인 시간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다. 상대에게 거짓말까지 동원하며 어렵사리 만든 시간을 원하지 않은 만남에 투자할 팔푼이는 없다. 문제는 상대 역시 같은 입장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구매자인 동시에 공급자다. 내가 시간을 더욱 의미있게 쓰고 싶은만큼 상대 역시 그렇다. 내가 만남을 통해 더 좋은 자극을 받고 에너지를 얻고싶다면 상대 또한 마찬가지다. 일과 가정에 치이는 빡빡한 삶에서 나에게 시간을 내어준 친구가 있다면 그는 나만큼 이 만남을 통해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것이다. 좋지 않은 일이 있어 어쩌다 한번 우울한 이야기를 할 수는 있지만, 매번 그럴수는 없다. 한 사람은 만날 때마다 쌓여왔던 스트레스를 풀고 상대는 그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얻어가는 일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건강하지 못한 관계다. 일방적인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래서 취미가 비슷하거나 관점이 유사해서 동일한 소재를 가지고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함께 스트레스를 풀어갈 수 있는 친구들의 모임만 살아남게 된다. 내가 만남을 통해 새로운 것을 경험할 때, 열심히 살며 상대가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볼 때,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을 남을 통해 배우게 될때 즐겁다면, 상대 또한 그렇다. 


오늘 누군가와 보낸 시간이 즐겁고 의미있었는데 내가 원할 때 그 사람을 또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축하할 일이다. 그에게 당신이 괜찮은 사람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관계속에서 당신이 많은 자극을 받고 성장할 수 있는 양분을 얻고 있다면 마땅히 축하받을 일이다. 역으로 내가 사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매번 나를 힘빠지게 한다거나 만남의 끝에 어김없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면 그들을 탓하기에 앞서 거울을 봐야한다. 장기적인 관계는 생각보다 균형적이다. 때론 세상이 무섭게 공평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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