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21년 12월 31일이라고요? 내년이 2022년이라고요?
단행본 <프리랜서로 일하는 법> 출간
단행본이 나왔다. 독립출판이 아닌 출판사에서 작가로 계약해 내는 첫 책. <프리랜서로 일하는 법>은 프리랜서로 겪은 경험과 고민, <프리낫프리>를 만들며 만난 프리랜서와의 연결을 통해 다듬은 일하는 태도에 대한 책이다. 2020년 유유 출판사에서 제안을 주었고, 본격적으로 쓴 기간은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그리고 10월에 세상에 나왔다. 내 이야기와 생각으로만 책 한 권을 쓴다는 게 꽤 녹록지 않은 작업이라는 점을 알았고, 그럼에도 어떻게든 쓰다 보면 책에 넣을만한 글이 나온다는 것도 알았다. 출간 후 리뷰와 판매지수에 집착한 순간이 있었지만, 이 책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집착을 멈췄다. 책을 쓴 작가들을 존경하게 됐다. 일에 대한 글을 쓰다 지칠 때면 무용한 글쓰기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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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한 어쩌면 더 내밀한 이야기를 글로 썼다.
유년시절의 이야기, 당뇨 환자로 살며 식단 관리에 성공하고 실패하는 우당탕탕 생활습관 잡는 이야기. 캠핑하는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 등등.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를 시도해보기도 했고, 어떨 때는 너무 깊숙하게 내밀한 감정을 들여다보느라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했다.
사무실이 생겼다.
프리랜서 동료 나이이즘 박은아 편집장과 플랫폼P에 입주했다. 2인실에 처음 입주하던 날 스타트업을 막 시작한 청년들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책상을 이리저리 옮겼다. 1년 간 이곳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고 (물론 좋은 일. 돈 버는 일) 소망하며 한창 사무실 꾸미기에 열중했다. 사무실이 있어도 여전히 스타벅스와 동네 카페를 전전하지만, 돌아갈 베이스캠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프리랜서의 불안 일부는 사라진 느낌이다. 엊그제 사무실에 출근해 책상과 책장을 새로 정돈했다. 새로운 마음으로 내년에도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해야지. 돈 많이 벌어야지.
사무실 메이트가 생겼다.
29일 사무실 메이트 박은아 편집장과 종무식을 했다. 회사 다닐 때는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던 종무식과 시무식을 프리랜서가 되고 혼자서라도 조촐하게 챙겨 왔다. 한 해의 일을 끝내는 마침표와 한 해 시작점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올해는 처음으로 사무실 메이트이자 프리랜서 동료와 함께 종무식을 했다. 종무식이라고 해봤자 맛있는 저녁을 먹는 게 전부였지만, 나름대로 올해의 00을 꼽아보며 한 해를 돌아봤다. 질문의 원칙은 일에 치중하지 않고 신선한 질문일 것. 올해의 흑역사, 올해 생전 처음으로 시도해본 것, 올해 가장 설레었던 순간, 올해의 흑역사 등등 신선한 질문을 하나씩 던졌고 기억을 더듬거리며 소소하지만 중요했던 순간을 공유했다. 오늘 이 글을 쓴 이유도 그와의 종무식에서 나눈 이야기의 잔상이 남았기 때문이다.
매주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했다.
화창했던 어느 가을날, 이사 후(2020년 9월에 이사했다)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그래서 여전히 테이프로 칭칭 감겨있던 배드민턴 채를 꺼냈다. "안 되겠어. 오늘 집에만 있으면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야. 1분에 1원씩 좋은 날씨를 누리지 못한 비용을 치르는 것 같다구." 그렇게 남편과 배드민턴을 치러 갔다. 배드민턴이라는 걸 치다니!! 기쁜 마음에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동네 주민인 정문정 작가에게 연락이 왔다. "저도 배드민턴 진짜 좋아하는데 칠 사람이 없어요! 언제 한 번 쳐요!" 그렇게 매주 월요일 아침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했다.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한 때가 이미 늦가을이라 몇 번 치지도 못한 채 추위로 배드민턴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옆동네 사는 조카에게 구민체육센터 배드민턴장이 저렴하고 시설이 좋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렇지! 배드민턴은 실내 운동이지! 그렇게 정문정 작가와 실내 배드민턴장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기 시작했다. 실력이 고만고만하고 게임의 룰은 잘 몰라서 공을 핑퐁하는 게 전부지만, 꽤나 운동이 된다. 날아오는 공을 주시하기 위해 고개를 번쩍 들고 칠 자세를 잡느라 어깨를 한껏 펼쳤다. 정문정 작가와 나는 배드민턴은 우리처럼 노트북에 코 박고 글 쓰는 작가들한테 최고의 거북목 치료 운동이 분명하다며 낄낄댔다. 승부가 중요한가. 고개를 번쩍 들고 공을 바라보고 온 몸의 근육을 움직여 공을 쳐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루 만보 걷기를 목표로 삼았다.
목표로 삼았다고 하는 이유는 매일 만 보를 걷지는 못해서다. 날이 춥지 않았을 때 종종 집에서 사무실까지 도보로 걸어갔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걸으면 5 천보가 된다. 중간중간 이동하며 걷는 걸음을 더하면 대략 만 보 정도를 걷게 된다. 지금은 추워서 걸음 수가 줄었지만, 만보 걷기를 목표로 한 것만으로도 일상이 조금은 달라졌다. '걸어서 15분 거리? 만보 채우기 좋은 거리네', '오늘 별로 안 춥고 한가하니까 걸어가 볼까?' 이렇게 조금이라도 걸을 기회를 찾는다. 작년보다는 평균 걸음수가 늘었다.
프리랜서 온라인 작업 모임을 하며 루틴을 정돈했다.
지난해만 해도 불안정했던 루틴이 올해 거의 자리 잡았다. 올 초부터 프리랜서 동료들과 한 오전 10시 - 오후 1시 온라인 작업실 모임 덕분이다. 집중이 잘 되는 오전에 최대한 일을 많이 하고 싶은데 게으름을 피우는 날이 이어져서 특단의 조치로 온라인 작업 모임을 만들었다. 규칙은 간단하다. 오전 10시에 줌 온라인 작업실에 출근하기. 그리고 40분을 일하고, 20분은 화면을 끄고 쉴 수 있다. 3사이클을 돌리면 오후 12시 40분, 퇴근이다. 모임은 대략 5-6개월 정도 이어졌다. 온라인 작업 모임 덕에 아침에 일어나 씻고 출근하는 습관이 생겨서 이제 쉬고 싶은 날에도 습관처럼 샤워를 하고 정신을 차려보면 출근해있다.
바쁜 와중에 휴식하기를 연습했다.
일이 많은 성수기에는 점심 약속 잡는 것도 부담스러워했던 내가 한창 바쁜 성수기에 무려 캠핑을 갈 정도로 일과 휴식의 밸런스를 맞춰 가고 있다! 쉴 수 있을 때가 아니라 그냥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여가를 즐기고 쉬어주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의 여유가 없이 휴식을 미루곤 했다. 그 결과는 번아웃이었다. 번아웃 후유증에서 2년 만에 겨우 벗어났는데, 번아웃 후유증에서 벗어나자마자 다시 일 과몰입 상태로 들어가려는 나를 발견했다. 두 번째 번아웃은 정말이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일상, 휴식, 여가를 놓지 않고 가능한 만큼 일하려고 애썼다. 바쁘지만, 캠핑이 가고 싶을 땐 캠핑장을 예약했다. 병원에 가야 하면 집중이 되지 않는 오후에 병원을 다녀왔고, 주변 사람들도 챙기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하이 상태가 와도 오후 9시면 노트북을 껐다. 휴식하기는 수영처럼 연습해야 나만의 호흡을 찾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올해 처음 휴식하기의 호흡법을 알게 된 것 같다.
동계 캠핑을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동계 캠핑을 했다.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기온이 적당히 높아 온열기가 필요 없을 때에만 캠핑을 다녔는데, 추운 겨울 캠핑장에서 난로로 주전자에 물을 끓여 커피를 내려마시는 로망이 있었는데, 늘 고민만 했다. 미련이 길어지면 해버리는 게 나을 때가 있다. 올해도 내내 지난겨울 캠핑을 해볼걸 후회하며 지냈으니 이번 겨울에 동계 캠핑을 해보지 않으면 내년에도 지난겨울 캠핑을 해볼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내내 따라다닐 것이 분명했다. 동계 캠핑이라고 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는 걸 감안해서 적당한 가격대의 장비를 구매했다. 지금까지 두 번 동계 캠핑을 했는데 직전 동계 캠핑은 그야말로 혹한기 훈련이었다.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는 파주 캠핑장에서 뜨끈한 집 대신 텐트에 저렴한 등유 난로와 전기장판에 기대어 하룻밤을 보냈다. 고생이 체질인가? 고생스러운 겨울 캠핑만의 매력에 빠졌다. 망설이지 않고 그냥 해보길 잘했다.
이 외에도 새로 해본 일이 참 많다. 차마 글로 쓰지 못한 내밀한 성찰도 있다. 아직은 깊은 이야기까지 글로 써내지 못하는 서툰 작가지만, 2022년에는 더 내밀한 성찰을 유려하게 글로 풀어내는 작가로 성장하고 싶다. 아 또 다른 목표는 근육 만들기. 글쓰기 근육이 아니라, 진짜 근육. 배드민턴을 치는 체육센터에 필라테스 강습을 충동적으로 등록했다. 좋은 충동이었다. 글쓰기 10분 전에는 실내 자전거를 충동구매했다. 역시 좋은 충동이었다. 운동과 건강에 있어서만은 충동적으로 뭐든 해보려고 한다. 2022년에는 근력이 생기면 좋겠다. 그리고 2022년에도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만큼 새로운 것들을 많이 하는 한 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