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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 Aug 09. 2019

[실전편_5]겨울, 아이폰, 그리고 공유차의 비극

굴러가 어쨌든






무더운 여름이니까, 오싹한 이야기 하나 해볼까. 지난 겨울 아침고요수목원에 눈 구경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날이 워낙 추워 그런지 사람이 드물었다. 시린 손을 주머니에 꽂고 앙상한 수목원을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왠일인지 같은 곳을 계속 맴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집에 에어컨을 켜둔채 2박 3일 여행을 나온 것 같은 이 찜찜한 기분... 한기와 걷기에 점점 지쳐가던 동행이 말했다.



“우리 이제 그만 돌아갈까?” 

"그럴까요? 지금 몇 시지?”



그땐 몰랐다. 시간이나 확인해보자는 우리의 대화가 얼마나 한갓지고 순진한 것이었는지.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스마트폰 전원이 나간 것이었다! 뒷골이 싸늘해지고 몸은 더욱 떨리기 시작했다. 이날 우린 쏘카를 타고 수목원에 갔다. 내 폰으로 예약하고... 내 폰으로 문을 잠그고... 내 폰으로 다시 문을 열어야하는 쏘카를!



때는 겨울이고, 내 폰은 아이폰이었다. 완충을 시켜도 추운 곳에만 있으면 작동을 멈춰서는 이 웬수. 몇 시간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보조 배터리는 물론 충전 케이블까지 차에 두고 나온터였다. 바람이 차가워 닭살이 돋는지, 우리가 처한 상황에 소름이 끼친 것인지. 놀란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잃고 수목원 한 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었다. 뭐, 해결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저 멀리 불을 켜고 영업 중인 수목원 카페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충전값으로 커피를 사고 한 십여분 충전을 하고 나왔다. 주차장으로 가는 그 순간에도 뚝뚝 떨어지는 배터리 게이지를 보며 마음을 졸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나마 카페가 있어 천만다행이지, 만일 인적 드문 산 중턱이었다면? 편의점도 없는 어느 외진 해변이라면?! 아니, 폰을 아예 잃어버렸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차 문은 안 열리고, 어디 전화도 못하고, 날은 춥고… 스마트폰 전원이 나가면 언제 어디서든 난감하긴 마찬가지지만, 공유차 운전 중일 때에는 사태가 심각해진다.



공유차를 타는 게 불편하진 않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불편한 점이라... 물론 있다. 배터리 문제는 가끔 있는 일이니 차치하고, 탈 때마다 신경이 쓰였던 것을 꼽자면 바로 매번 ‘집순 동기화’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타던 차라 운전석이며 사이드미러, 룸미러의 각도를 탈때마다 조절해야 한다. 한 번은 운전석의 목 받침이 애매한 상태로 서울에서 대전까지 운전을 했다가 다음날까지 머리가 쪼개질듯한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아무리 의자며 목받침을 조절해봐도 뭔가 불편한 차도 있었다. 누군가 핸들을 한껏 뽑아놓았거나 바싹 밀어넣어둔 경우다. 분명 조절하는 기능이 있을텐데, 찾지 못하다 얼마전에야 방법을 알았다. 이후 한층 편안한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다. 아, 공유차 초창기엔 주차할 때 명함이든 뭐든 번호를 남겨둬야 해 불편했다. 차에 꽂아둔 명함을 잊고 그대로 반납하기도 다반사였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안심번호'라는 시스템이 생겨 번호를 남기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차를 빌린 나에게 바로 연락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수많은 동기화 항목 중에서도 가장 애타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음악이다. 탈 때마다 스마트폰과 공유차 사이에 새로 블루투스 연결을 해줘야 한다. 내가 못하는 건지, 원래 복잡한 건지 더럽게 연결이 안 된다. 그렇다고, 음악 없이 차를 탄다는 건, 특히 장거리 운전에선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요샌 꼭 케이블을 가지고 다닌다. 선으로 연결하면 바로 음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유차를 타면서 아예 포기해야하는 것도 있다. 바로 편도 이용이다. 편도 서비스가 너무 제한적이어서 사실상 불가능하다. 웬만하면 빌린 곳에 그대로 반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린카는 일부 노선을 정해 편도 서비스를 허용하고 있지만 일부 노선이란 게 정말로 '너무 일부'라 내 입장에선 쓸만한 게 없었다. 쏘카 역시 서울과 몇몇 지역에서 제한적인 편도 서비스를 제공해 왔으나 그나마 2019년 7월부로 중단했다는 공지를 봤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차를 배달시키는 쏘카의 ‘부름’ 서비스의 경우 추가 요금을 내고 다른 장소에 반납 수 있다. 성북구에서 빌려 김포공항에서 반납하는 걸로 견적을 뽑아보니 편도 추가요금이 2만1,200원이다. 음?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다. 해외 여행을 좀 길게 가거나 짐이 많을 때 유용할 것 같다. 어디보자, 그럼 서울에서 빌려 지방에 반납하는 건 어떨까? 서울 성북구에서 출발해 부산 신세계백화점센텀점에서 차를 반납하는 경우로 견적으로 내보니 편도를 이용하는 대가로 30만7,600원을 지불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공유차가 곳곳에 널려 있다고 해도 결국 내 집 앞에 있는 건 아니라는 거. 한번은 친구가 비중격만곡증 수술이란 걸 하고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멀쩡하던 그녀의 코에서 코피가 쏟아지기 시작한 건 깊은 새벽이었다. 코피가 귀엽게(?) 한 줄 흐르는 게 아니라,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콸콸 쏟아졌다. 두툼한 타월이 시뻘건 선혈로 푹 젖을 정도였고, 친구는 목으로 넘어오는 피 때문에 제대로 말을 못했다. 요행이 차로 딱 5분 거리에 대학병원 응급실이 있었다. 하지만 새벽, 주택가라 택시 잡기가 여의치 않았다. 발만 동동 구르던 우리는 근처를 순찰하던 경찰차를 타고 응급실에 갈 수 있었다. 처음으로 우리 집 앞에 내 차가 세워져 있었으면 싶은 순간이었다. 소유한 주차 공간이 있다면 이를 쏘카존으로 만들고 할인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알아보기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각 자치구 도시관리공단에 신청하면 '거주자우선주차구역'이란걸 배정해 주는데, 해당 자치구에 등록된 차량이나 계약서를 첨부할 수 있는 렌터카까지만 허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구별로 사정이 다르니 한번 전화해 알아보시기를. 예를들어 서초구는 쏘카과 계약을 맺고 거주자우선주차구역 일부를 공유차량 공간으로 내주고 있다. 



하나하나 짚어보니 공유차의 한계도 상당하다. 그래도 나는 공유차의 한계가 실망스럽기 보단, 앞으로 어떤 기술과 시스템을 통해 한계를 극복할까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그리하여 과연 내가 언제까지 차 없는 운전자로 살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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