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가 어쨌든
하지만 일부 극한초보들은 이를 헷갈려 밖에서 보기에도 '전운보초'인 상태로 도로를 달리게 된다...
그리고 이를 발견한 어떤 운전자들은 전운보초를 유명하지 않은 사자성어쯤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이 농담의 시리즈는 몇 가지 더 있는데, 예를들어 누군가 '전운초보'를 붙이고 다니는 걸 목격했다는 버전이 있다.
카셰어링을 할 때에도 초보 운전 스티커를 붙이는 게 좋을까?
운전을 조금 하다보니 그런 고민이 생겼다. 쏘카나 그린카에는 스티커를 붙이긴 좀 그렇다. 종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탈 때마다 붙였다 뗐다 해야 하나. 그랬다가 반납할때 떼는 걸 까먹고 그냥 오면 어떡하지?문구는 뭐라고 붙이지? 역시 <초보운전>이겠지? 심플 이즈 더 베스트니까... 서체는 당연히 궁서체다.
운전연수가 끝나갈 때쯤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나를 고민하게 한 게 있었다. 바로,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느냐 마느냐 하는 것. 1990년대까지만해도 면허를 받은 날부터 6개월 동안 차량에 초보운전자 표지를 부착하도록 하는 조항이 도로교통법에 존재했지만, 1999년 폐지됐다고 한다. 때문에 현재는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일 법적 의무는 없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초보운전자들이 자의로 스티커를 붙인다. 나는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일 것인가 말 것인가! 붙인다면 뭐라 붙일 것인가! 고심끝에 연수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선생님, 저 초보 스티커 붙여야 겠죠?”
“… 안 붙이는게 나아.”
“엥? 왜요? 초보 붙여야 피해주고 양보해주고 그런 거 아닌가…”
“오히려 다른 차들이 더 앞지르고 더 끼어들 수도 있어.”
도로에 대한, 어쩌면 사회 생활에 대한 그의 조언은 현실적이었다. 내가 초짜임을 밝힐 때 사람들이 양보하기보단 끼어들기나 앞지르기를 선택한다는 것. 물론, 도로에서는 너무도, 너무나도 느리게 가는 초보 딱지를 붙인 차들이 종종 보인다. 갈길 바쁜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차를 앞질러 갈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말없이 지나쳐가는 차의 움직임 속에서도 호의와 적의를 분간할 수 있다. 앞지르는 건 좋지만 화를 내면서 앞지를 필요까진 없다.
선생님의 조언이나 도로교통법 때문은 아니지만, 나는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지는 않고 있다. 쏘카나 그린카를 탈 때마다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였다 뗐다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스티커를 붙이지 않았기 때문에, 초보임을 밝힐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를 나로선 알 수 없다. 어쨌든 나는 다른 차량들이 특별히 공격적이라고 느낀 적은 없다. 오히려 초보운전자들이 겁을 집어먹고 있는 것에 비해 더 친절한 선배 운전자들이 많다고 확신한다.
딱지 없이 극한초보의 시기를 보내고 나니 약간의 미련(?)이 남기도 한다. 내게 초보의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 것이니까, 스티커를 몇 달쯤은 붙이고 다니는 것도 재밌지 않았을까, 그냥 다니는 것과 다른 뭔가를 볼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스티커를 붙였다면 어떤 문구가 좋았으려나. 요샌 개성 넘치는 초보운전 스티커도 많지만 딱히 끌리는 건 없다.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도의 무난한 건 괜찮지만, 농담을 가장한 협박이나 무례한 문구도 상당하다. 이와 별개로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는 스티커는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모르겠다. 아이가 타고 있어서 조금 더 천천히 갈 수 있으니 양해를 바란다는 의미일까? 아이를 가진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야 없으나, 차 안에 누가 타고 있든간에 서로 배려하는 운전은 무조건, 무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 마음속엔 오직 '초보운전' 네 글자 뿐이다. 두말할 것 없이 무조건 궁서체여야 한다. 나는 진지하니까. 그 조악한 종이짝을 붙이고 도로로 나선 경험을, 나는 무용담처럼 얘기했겠지.
“내가 왕년에 말이지, A4 한 장에 한 글자씩, 초.보.운.전 이 네 글자 딱 붙여서 도로로 나가면 차들이 홍해처럼 반으로 쩍 갈라졌어.... 모세의 기적을 난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