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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 Oct 21. 2019

[실전편_7]배려와 겁 사이

굴러가 어쨌든


그리고 타이밍은, 그저 찾아드는 우연이 아니다.
간절함을 향한 숱한 선택들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순간이다.
주저없는 포기와 망설임 없는 결정들이 타이밍을 만든다.
그 녀석이 더 간절했고 난 더 용기를 냈어야 했다.
나빴던 건 신호등이 아니라, 타이밍이 아니라, 내 수많은 망설임들이었다.

-응답하라1988 中-


친절하시네요



“내가 못 끼어 들어서 지금 이러고 있는 거 같지?”

“….”

“실은 저 차들 먼저 가라고 양보 운전하는 거야. 넓은 마음으로.”



“안 물어 봤어.”



차선 변경을 위해 깜빡이를 켠 채로 도로에 우두커니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면 나는 동행에게, 또 내 자신에게 이런 최면을 건다. 난 겁이 나는 게 아니다. 그저 하해와 같은 맘으로 다른 운전자들을 먼저 보내주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말야. 깜빡이 소리가 원래 이렇게 컸었나? 정말로? 대답좀 해주면 안될까?



어느 타이밍에 차선을 바꿔야 하는 걸까? 도무지 ‘그 때’를 알 수가 없다. 옆 차선에서 달려오는 차가 얼마나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지, 얼마나 가까운지 여전히 감이 잘 안 잡힌다. 옆차선에 텅 비어 있다고 해도 안심할 일이 아니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다. 뒤에서 오는 차가 없길래 3차선에서 2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하는데 1차선을 주행하던 차량도 2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했던 것이다. 상대 차량이 경적을 길게 누르기 전까지 나는 위험성조차 깨닫지 못했다. 차선 변경을 할 땐 자신이 옮겨 탈 차선뿐만 아니라 주변 교통상황도 두루두루 살펴봐야 한다는 걸 그 때 알았다.



그래서 열심히 좌고우면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내 상황은 애먼 깜빡이만 켠 채로 오도가도 못하는 데서 한 발치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옆 차선에서 내달리던 차가 깜빡이를 켠 내 차를 발견하고 속도를 낮춰줬다. 들어오라는 명백한 표시. 여유 공간도 충분했다. 그러나 나는 차선을 변경하지 못했다. 대체 왜? 브레이크를 몇 차례 밟으며 감속하던 그 차는 결국 멈칫멈칫하다 나를 지나쳐가 버렸다.



사실은 뒷차가 나를 들여보내주지 않아서 차선을 변경할 수 없던 게 아니었다. 망설이고 눈치보는 나 자신 때문이었지. 그 눈치라는 것도 생각해보면 우습다. 길을 막고 차에서 내려 “저기요 조금 전에, 먼저 갈 생각이었어요? 아님 저에게 양보하실 생각이었어요?” 물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뒷차 운전자의 생각을 눈치 본 것이니까. 그럼 그분은 분명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그러는 그쪽은, 들어올 생각이었어요 아님 직진할 생각이었어요? 깜빡이만 끔뻑이지 말고 어디 속 시원히 말 좀 해봐요!”



남의 생각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고, 그러니 본인의 생각에 집중하라고. 많은 이들이 조언한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이 명제를 체득하게 된 건 바로 운전을 하면서였다. 도로에서 분명한 것은 신호등과 내 판단뿐이니까.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깜빡이며 비상등이며 경적으로 내 뜻을 확실히 표현하는 것이 전부니까. 적어도 도로 위에선 그것 만으로 충분하다.



사회 생활 8년차에 접어든 나는 요즘 부쩍 자동차 대시보드 위에 놓여있는 강아지 인형 같단 생각을 한다. 차가 흔들리는대로 끄덕끄덕, 누가 앉든, 뭐라고 말하든 끄덕끄덕이는 강아지 인형. 그런 내게 사람들은 배려심이 깊다고, 다정하다고 얘기해준다.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근데 과연 그랬을까? 차선 변경이 어려워 깜빡거리는 채로 도로 위에 서 있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과 어긋나는 게 겁이 나서 끄덕거리기만 했던 건 아니었고?



내 모든 배려가 거짓이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중 일부는 분명 배려의 가면을 쓴 겁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언제나 미리, 많이 우려했다. 나는 이렇게 하고 싶은데, 저 사람이 동의해 줄까?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그런 걱정은 늘어만 갔다. 타이밍을 재고 눈치를 보는 사이 나는 너무 먼 길을 돌아온 것 같다. 제때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멀리멀리 돌아가야 하는 도로의 냉정한 현실처럼.



차와 차 사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차선을 바꾸고 끼어드는 것은 아직도 내겐 풀지 못한 숙제다. 그래도 그 수 많은 머뭇거림과 시행착오 속에서 배운 게 있다면 어찌됐건 깜빡이를 먼저 켜야 한다는 거다. 내가 갈 길을 명확히 하는 것. 거기서부터 모든 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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