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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 Nov 15. 2019

[실전편_8]조수에게

굴러가 어쨌든


내가 한 8년차 장롱면허였을 때였나. 친구와 쏘카를 빌려 경기도 광주에 있는 화담숲엘 갔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내 친구로, 1년 전 잠깐 운전을 하다 운전대를 놓은 지 한참이었다. 간만의 운전으로 긴장이 많이 됐는지 친구는 내게 질문을 쏟아냈다.


“집순아 이 길 맞냐?”

“내비게이션에서 우회전 하라는 게 지금인가?”

“여기 비보호지? 맞지? 집순아? 어?”


‘친구야… 나 장롱이야… 암것도 몰라ㅜ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핸들에 꼭 붙은 채로 절박하게 답을 구하는 친구를 외면할 순 없었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답이라곤 “응? 어어… 그렇지 않나?”라고 얼버무리는 것뿐이었지만… 그러는 와중에 어느새 하늘은 어둑해지고, 운전길도 어찌저찌 끝나갔다. 처음 시작할 때보단 한층 긴장이 풀린 듯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오늘 진짜 식겁했다. 그래도 운전할 줄 아는 친구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다.”

“!?”



운전석 옆자리를 조수석이라고 부른다. 생각해보면 운전자가 되기 전, 나는 조수석을 옆자리나 앞자리라고 불렀다. 조수라니, 그런 건 발명가나 탐정쯤은 돼야 필요한 사람 아닌가? 하지만 운전을 시작하면서 알게 됐다. 운전자, 특히 초보에게 조수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내비게이션 설정과 판독(?)은 물론, 차선 변경 시점 확정과, 주차 자리 확인, 운전자의 영양상태 관리까지 모두 조수의 역량에 달려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꼽자면 바로 운전자의 ‘멘탈 관리’다. 유리 같은 초보 운전자의 멘탈을 보호하는 것이 조수석의 막중한 임무라고 단언한다.


운전석에 앉으면 상처받기 쉬운 영혼이 된다. 어떤 말도, 초보 운전자에겐 비수가 되어 꽂힐 수 있다. 작은 반응 하나가 가까스로 다잡은 초보의 평정심을 무너트릴 수 있다. 그 정도가 어떠하냐 하면 대략 이렇다. 수년 전 운전을 막 시작한 후배와 함께 공유차를 빌려 해남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른쪽 차와 간격이 너무 가까워서 부딪힐 것 같았다. 그때만해도 운전 경험이 없던 나는 이래라 저래라 말도 못하고 작게 “어어어-“라고 세 마디를 외쳤다. 단지 그 세 마디뿐이었다. 후배는 거의 울먹이며 내게 외쳤다. “어어어라고 하지마요! 그게 더 무서워요! 그냥 가만 있어요 가만히!” 나는 해남으로 가는 길 내내 운전과는 상관없는 날씨 이야기와 연예인 이야기, 해남 땅끝 고구마 이야기 등으로 후배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나도 처음엔 다른 이도 아닌 조수들로부터 상처도 많이 받았다. 보통의 초보운전자가 조수들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면, 그건 운전 베테랑 조수들로부터 운전 실력을 타박 받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 반대였다. 되레 운전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조수들 때문에 속앓이를 했다. 내 주변 대부분이 면허가 없거나 운전 실력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암호같은 내비게이션을 같이 봐주지도 않으면서 “또… 잘못왔네?”라고 툭 던진다거나, 도로가 혼잡해 정신이 없는데 “우리 도착은 할 수 있는 거지?”라고 농담처럼 물을 때 정말이지 야속했다. 사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을 평범한 말이지만, 초 긴장상태의 생초보에겐 모든 게 나를 향한 비난인 것만 같아 속이 상했던 것이다.


그럼 운전 유경험자 조수는 뭐가 그렇게 다르냐고? 다르다. 혹시 오해할까봐 미리 밝히지만, 힘내라고, 잘 하고 있다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그런 말을 해준 게 절대, 절대로 아니다. 그들은 차에 타면 별 말을 하지 않는다! 분명 나와 함께 도로를 보고 있는데도, 길을 잘못 타든 말든 관심도 없다. 한마디 해봤자 “조 앞에 저기로 빠지면 되겠네” 정도의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고속도로에서 나가야 할 때 나가지 못해도 “계속 가야지 뭐…” 이러고 끝이었다. 이러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식의 태도는 오히려 내가 침착을 되찾는데 도움을 줬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자 과거 내가 조수석에 앉았을 때 벌인 각종 만행(?)들이 속속 떠올랐다. 그래서 장롱면허 시절 나를 조수석에 태우고 다녔던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친구야, 진심으로 사과한다.”

“뭘?”

“너 예전에 새벽에 산길 운전하는데 나 혼자 아이돌 노래에 심취해서 소리지르고 노래한 거…”



끝으로 가보지 않은 그 길을 함께 가주시는 모든 초보의 조수들께 한 말씀 올린다.


초보의 조수님들,


여러분은 초보에게 구태여 조언하거나 심지어 응원조차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그 자리에 앉아 준 것 만으로도 맡은 바 소임을 다 하셨으니까요.


목숨을... 거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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