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영화 '옥자'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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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에는 영화 '옥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보면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작품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 공통점 중 하나는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의연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의연함이라고 말했지만 어떤 의연함인가?
예를 들자면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84년작)'에 등장하는 나우시카는 바람계곡 족장의 딸로 공주와 같은 신분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거대화된 곤충이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파괴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그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작은 실험실도 준비해서 연구도 한다.
그녀는 매일 오염된 지구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지구를 다시 되살릴 방법을 생각한다. 그저 글라이더 (이 글라이더의 이름은 메베로 '갈매기'라는 뜻이다) 를 잘 타는 소녀가 아니다.
원령공주 ('97년작)의 '아시타카'는 17세 소년이다.
마을을 습격한 저주의 신으로부터 오른 팔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저주를 받았지만 마을의 주술사가 서쪽으로 가서 길을 찾으라는 말을 듣고 서쪽으로 향하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04년작)의 '소피'는 18세 처녀다.
곤궁에 빠져있는 하울을 잠시 도왔다는 이유로 '황무지의 마녀'의 저주에 걸리게 된다. 그녀는 90살 할머니가 되는 저주에 걸리게 되지만 자신에게 걸린 마법을 풀기 위해 묵묵히 하울을 찾는 길을 떠나게 된다.
그들은 하나 같이 누군가에 의해, 무언가에 의해 생긴 문제를 안게 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긴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그 여행을 떠나는 과정이 매우 의연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들은 그들이 떠나야 하는 정처없는 그 여행에 대해 어떤 불평도 불만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신들이 처한 운명을 바로 잡기 위해 길을 떠날 뿐이다.
▼ 엘리베이터를 타면 가끔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으려 하지 않아도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 오빠랑 넷플릭스로 봤어.
그냥 당분간 고기를 못먹을 것 같아.
이런 류의 대화가 들린다면 그건 그들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보고 싶은 영화가 그리도 많았건만 차일피일 되도 않는 이유로 보지 않았는데 이제는 절대 그러지 말자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 '옥자'를 본다.
▼ 강원도의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함께 지내는 슈퍼돼지 옥자와 옥자를 키우는 미자의 모습은 어찌 보면 그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스크린에서 이 영화를 봐야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들이었다.
그리고 옥자와 미자는 마치 미야자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 ('88년작)'에 나오는 토토로와 메이와도 같아 보인다.
▼ 봉준호 감독은 영화 '옥자'는 축산식품의 공장식 생산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는 말을 했다.
사실 엘리베이터에서 '당분간 돼지고기를 못먹을 것'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사실 그 얘기는 엘리베이터에서 당당히 할 수 없는 얘기다.
왜냐면 영화 옥자에서 그 광경을 어떻게 묘사했건 지금 우리가 먹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는 이미 그런 시스템 속에서 생산되어 우리의 식탁 위에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영화 '옥자' 속의 현실보다 더 낫다고 볼 수 없을 정도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유투브를 찾아봐도 지금의 현실을 금방 알 수 있다.
만약 지금의 현실에 더 관심이 있다면 영화 '푸드 주식회사 (Food Inc '08년작)'을 한 번 보길 추천한다.
지난 7년여 동안 식량이나 식품의 공급사슬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돌아가는 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한 사람으로 영화 '옥자'는 식품업계가 가지는 문제점을 매우 잘 아는 사람이 만든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봉준호 감독은 많은 공부를 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 그렇지만 유명 신문 기자들조차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못하고 있는 식품의 공급사슬에 관한 이야기 보다 영화 '옥자'에 나오는 미자의 의연한 모습에 더 눈길이 갔다.
그녀는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했을까 말았을까 한 나이의 여자 아이지만 거대 기업을 향해 나의 권리, 주장을 할 줄 아는 소녀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미자는 미야자키 감독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그 어떤 캐릭터 못지 않은 강단을 지니고 있는 아이고, 그 어떤 캐릭터보다 똘똘한 아이다.
글로벌 기업 미란도 코퍼레이션이 옥자를 데리고 가자 그녀는 마치 지브리의 캐릭터들과도 같이 의연한 모습으로 돼지 저금통 (*돼지를 찾으려고 돼지 저금통을 깨는 대목은 약간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을 깨서는 옥자를 찾으로 나선다.
그녀는 자신의 방식대로 옥자를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운명에 대해서도 별 불만도 불평도 없이 의연하다.
결국 그녀는 거대기업 미란도의 CEO를 향해서도 그녀의 옥자에 대한 생각을 전달하고 이를 논의한다.
이때 그녀의 모습은 마치 헝거게임의 캣니스 에버딘과도 같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 누구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고,이런 캐릭터를 만들어 준 봉준호 감독께도 고마운 생각을 하게 된 영화이기도 하다.
아가야
만약 미란도 코퍼레이션과 같은 거대기업이
네가 10년간 키운 돼지, 옥자를 가져가려고 한다면
우선 그들에게 너의 권리를 찬찬히 설명하기 바란다.
만약 그래도 그들이 옥자를 끌고 간다면
넌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한국 지사를 찾아
너의 권리를 말해야 한다
만약 그들이 그래도 옥자를 끌고
뉴욕으로 간다면
넌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뉴욕 지사를 찾아
너의 권리를 그 회사의 CEO랑 얘기해야 한다.
차분하게 너의 주장을 말하고,
그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너의 이야기를 던져 주거라
아가야
난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키울 것이고,
넌 내가 가르친대로 잘 할 것이다.
By 켄 in 양재동 ('17년 7월 2일)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영화 '옥자' (제작사 넷플릭스, 배급사 (주)NEW)에 있으며 이미지의 출처는 네이버영화입니다.
아울러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스튜디오 지브리에 있으며 이미지의 출처는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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