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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insing Jul 12. 2017

박열, 최승희, 이태리 정원

#34.'이태리 정원'은 박열의 시대를 설명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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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한 복판에 인력거 한 대가 지나간다.
어디선가 가냘프고도 구슬픈 가락이 들려온다.

"맑은 하날에 새가 울면
사랑의 노래를 부르면서
산 넘고 물을 건너
님 오길 기다리는
이태리 정원 어서 와 주세요"

낭랑한 목소리로 들리는 이 곡이 설마 최승희 씨께서 부른 곡이라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최승희가 1936년 부른 근대 가요 '이태리의 정원'


▼ 지난 주말에 영화 '박열'을 보러 갔다.

영화의 배경은 일본이 여러 측면에서 문명국가로의 발돋움을 하던 1923년이었다. 그리고 우리 민족에게는 영원한 한과 상처로 남을 '간토 대지진'이 일어난 해이기도 하다.

경쾌한 가락의 이 곡은 들으면 들을수록 따라 부르고 싶은 곡이었다.

함께 나왔던 배우들이 모두 멋진 영화였기 때문에 더욱 영화에 몰입했던 것 같다.

알고 보니 박열의 아내인 카나코 후미코 역할을 맡은 최희서는 나처럼 어려서 일본에서 공부한 친구여서 더욱 친근감이 생겼다.

실제 박열 가네코 후미코(왼쪽)-영화 '박열' 스틸. 출처|메가박스(주)플러스엠


▼ 영화는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의 모습을 보이며 그들은 이제 심지어 자신들이 문명국에 사는 국민이라고까지 자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929년에 다가올 세계 공황을 시작으로 일본 자본주의의 결함은 서서히 드러나게 될 것이며 비록 1931년에 일본국 최후의 희망인 만주국을 건국해서 숨통을 틔워보려고 했지만 국내에서는 끊이지 않는 암살과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던 1923년이 배경이다. 


그리고 그 1923년은 근대화에 성공했고, 자신들은 문명국에 사는 국민이라고 자부하던 그들이 간토 지방을 중심으로 발생한 대지진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진 때이기도 하다.


또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둥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는 둥 하며 자신들만 살고자 발버둥 치며 '15엔 50전' 같은 말을 하네 못하네 하는 이유로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을 살육하던 야만의 시기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기 22년 전, 그러니까 나름 꽤 구성지게 잘난 척을 하실 때가 배경이다. 


일본에서는 '박열 사건'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었고, 그 사건의 전모를 지켜봤다. 아주 흥미로운 사건이었고 말이다.


▼ 집에 와서 생각난 그 구슬픈 가락을 찾아보니 이 곡은 1936년에 발표된 '최승희' 씨의 '이태리의 정원'이라는 곡이다. 


가수가 아닌 그녀지만 1936년에 콜럼비아사는 그녀의 레코드를 발매하기에 이르렀고, 1937년부터 그녀는 미국, 유럽, 중남미로 공연에 나선다.


그녀가 어떤 연유로 이 곡을 부르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그녀에게 당신이 노래를 부른다면 조선의 돈은 모두 다 쓸어 담을 수 있을 거라는 정도의 유혹이 없었겠는가 싶기도 하다. 


맑은 하날에 새가 울면
사랑의 노래를 부르면서
산 넘고 물을 건너
님 오길 기다리는
이태리 정원 어서 와 주세요

저녁 종소리 들려오면
세레에나델 부르면서
사랑을 속삭이며
님 오길 기다리는
이태리 정원 어서 와 주세요
무용가 최승희가 1930년대 조선호텔 양식당 '팜코트'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 조선일보DB  [출처] 조선닷컴
출처: 위키백과
소화11년, 1936년, 월간지 '부인구락부' 10월호|만화가 와다쿠니보의 최승희 인터뷰 내용 출처: 라쿠텐 고도서 판매 블로그


▼ 사실 이 곡의 원곡은 한 Erwin이라는 작곡가가 작곡한 곡을 영국 밴드인 Billy Cotton and his band가 부른 것이었다.


언어가 영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매우 직설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가사였고, 이 곡에는 가사가 1절밖에 달리지 않았다.

 

Come to my garden in Italy
이탈리아에 있는 내 정원에 오세요

And sing to me like you used to do
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나를 위해 노래해 줘요

Come with your serenade, dear
당신의 세레나데를 들려주세요

Where the soft music plays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고

The moon is waiting and I am waiting for you
달과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그곳으로 말입니다.


https://youtu.be/0m5tXAR0wvA


▼ 이 곡을 일본 내지용으로는 일본의 '블루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아와야 노리코 씨가 불렀다.

그녀는 원래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었지만 젊은 시절 가세가 기울어 유행가를 부르게 되어서 도쿄 음악학교에서 제적당한 경험마저 있는 유명한 일본의 가수다.

사실 이 가수의 곡 제목 또한 '이태리의 정원'이다.

어디에도 그녀가 부른 '이태리의 정원'의 가사가 없어서 받아 적어 봤다.


 

아와야 노리코의 이태리 정원 레코드|출처: 일본 중고 LP판 판매 사이트, 야후 오프


瑠璃色の空には
푸른 색깔 하늘에는
루리이로노 소라니와

愛の雲たなびき
사랑의 구름이 뻗어 있고
아이노 쿠모 타나비키

水のほとりに
물가에서는
미즈노 호토리니

恋をささやく
사랑을 속삭이는
코이오 사사야쿠

楽しやな
너무 즐거웠던
타노시야나

そのひととき
그때 그 시절
소노히토토키


한글, 영어, 일본어 가사를 보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한글 가사는 원곡에 충실하게 작사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고, 일본어 가사에서는 나름의 멋이 느껴졌다. 

여기에서 말하는 멋은 좋게 말하면 멋이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아주 좋은 의미의 허세다. 

말하자면 이렇다. ^^


'이 곡의 제목은 이태리 정원이지. 아니 문명국의 국민이 이태리 정원을 이해하지 못하겠어? 다 이해한다구!! 


나는 이 곡엔 절대 이태리 정원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을 거야. 


가사를 들으면 모르겠어? 그곳이 이태리 정원이라는 것을?'


뭐 이런 정도 작사가의 허세 혹은 패기가 느껴져서 살짝 웃어봤다. 


https://youtu.be/_hlxMCMaKRg

淡谷のり子 아와야 노리코 (1907-1999) 출처: 일본 콜럼비아사


▼ 결과적으로 생각하면 영화 박열에 등장한 '이태리 정원'은 솔직히 적절한 선곡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이는 마치 1988년을 설명하는데 신승훈의 'I believe (2001년)'을 선곡한 것과도 같은 결과를 초래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1936년은 이미 세계 공황으로 일본은 허덕거리기 시작했으며 육군성은 미국과의 교전이 가능하다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독일, 이탈리아와 삼국 동맹을 체결하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었지만, 동맹을 체결하지 못하던 때였고,

차근차근 중국을 침략하려고 하던 때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작전을 계획한 당시 참모들은 알 리 없었다.)

하지만 일반 국민은 일본이 세계 무대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다는 속임수에 속고 있는 때였고, 이제는 일본이 아시아의 최강국으로 부상한 국가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던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나온 곡이 '이태리의 정원'이다.

그래서 대지진으로 피폐해진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서 조선인을 살육하던 시기와는 약간 다른 차원의 시기였던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 그런데 왜 이 곡은 이리도 커피 한 잔에 딱 어울릴 것과 같이 평화롭고 가냘플까?

20세기 후반에 태어난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자면 '그래야만 했던' 것 아닐까는 생각이 든다.

이제 일본은 시나 (중국)와 전쟁을 벌여야 하고, 조속히 삼국 동맹을 맺어 미국과의 전쟁에도 대비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점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들은 일본인들이 느긋하게 상상했던 것보다 무지막지하게 더 힘든 일들이었다.

그런 것도 모른 채 그들은 그렇게도 평화로운 곡을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마치 폭풍 전야와도 같은 그런 고요함 속에 생긴 곡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아직 표출되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도 이 곡은 '이렇게 평화롭고 가냘퍼야만 했던'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곡이라는 말 한마디를 쓰고 싶었지만, 그 곡에 매료되어 이렇게 길고 긴 글을 다시 쓰게 됐다.

이 곡의 매력인지 최승희 선생의 매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요 며칠 뭔가에 홀린 것 같았던 것만큼은 사실이 아닐까 싶다.

By 켄 in 1923~1936 ('17년 7월 11일)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영화 '박열' (박열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메가박스(주)플러스엠)에 있으며 출처는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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