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미디어 저편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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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며 얼굴을 본 사람들하고만 대화하고 살면 얼마나 편하겠냐만 때로는 한 번도 못 본 사람들과 일하며 사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도쿄지사에 근무했던 미시즈 타니우치 谷内 다.
그녀와는 거의 3년여 동안 같이 가격정산 업무를 함께 했다.
그녀는 나보다 두 살 어렸고, 성격이 비슷해서 일이 술술 잘 진행됐었다. 어느 날 그녀는 퇴사를 했고, 아깝게도 그녀를 처음 만날 수 있는 기회였던 나의 도쿄 출장 3일 전 그녀는 그녀의 남편과 함께 호주로 떠났다.
그 후 난 그녀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 지난 4년여 동안 농림수산부의 공무원들이 쓴 보고서나 정보를 접하면서 보고서의 미묘한 차이를 느낀 적이 있다.
A나 A부서 사람들은 이렇게 쓰는데 B나 B부서 사람들은 저렇게 쓰는 그런 차이다. 그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제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의 보고서를 보면서 그들의 성향을 느낀다.
그러면서 그들의 움직임을 읽는다. 이번 주 내내 그들은 2014년 보고서의 총정리를 하느라 바빴고, 그들 중 일본 정보를 발신하는 친구는 꼼꼼하고 일본어도 잘 하는 친구지만 중앙아시아 담당자는 엉터리다.
처음에는 미디어로만 알게 되는 두 사람이 있다. 존 맥클레인 (브루스 윌리스 분) 경사와 앨 파월 경사다.
나카토미 빌딩에 갇힌 존에게 무전으로 바깥의 정보를 말해주는 것이 앨 경사다. 물론 이들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두 사람이다.
해군정보국의 정보 분석 파트 소속이지만 미사일 탄두를 수집해서 귀환하는 것이 미션인 해병대 분대에게 퇴로를 무전으로 알리는 일을 한다. 위성이 잠시 동안 통하지 않는 시간임에도 오닐 중위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그들에게 가장 안전한 퇴로 정보를 제공한다. (영화의 앞부분이라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때까지도 오닐 중위는 근육 빵빵 해병대 부대원들과 만나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독일군 무전을 해독하는 한 영국군의 여군이 그 독일군의 특징을 얘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녀는 그 독일 병사가 암호문 앞에 항상 CILLY라는 문자를 쓰는 걸 관찰했고, 당시 독일의 암호 체계에선 해선 안 되는 일을 하는 걸 보며 그가 사랑에 빠져 있다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 그런 걸 보면 인류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미디어 저편에 있는 상대방과 연락을 하며 살았고, 그 와중에도 상대방의 성향마저 파악하면서 살았나 보다.
영국군 여군은 상대방이 적군인 독일 병사여서 나와 마찬가지로 미디어 저편에 있는 상대방을 만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오닐 중위는 해병대 병사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존 맥클레인 경사는 사건을 정리하고 잠깐이나마 함께 상황 속에서 울고 웃던 앨 파월 경사를 만난다. 존은 앨에게 말한다.
짧은 시간 동안 미디어를 가운데 두고 일한 사이지만 서로의 성향을 파악한 사람들이 나눌 수 있는 인사다.
▼ 미디어 저편에 있는 사람을 전화나 서면이나 화면에서 만날 때마다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저 사람을 만나 빙긋 웃으며 인사를 하자.
"당신이었군요."
그리고 그때 지금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를 웃으며 얘기하자.
의외로 큰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이런 다짐을 하기 훨씬 전에 미디어 너머로 만난 미시즈 타니우치께 죄송할 따름이다.
By 켄 in 한의원 ('15년 4월 1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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