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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란지교 Jan 08. 2021

홍보 우먼이 되고 싶었어요.

진로 유목민(2).   

지금은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단어지만, 커리어 우먼이나 OO 우먼 등의 단어가 사회적으로 엄청 쿨했던 시절이 있었다. 여자들의 사회 진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는 방증이었겠지만, 언어적으로는 여전히 갈길이 먼 시기였었다. 시대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나 역시 저런 그때는 OO우먼에 동참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우먼'앞에 '홍보'라는 분야를 붙이고 싶었다.


입학을 하고 오래지 않아 광고에의 비전은 접었지만, 내 전공 명칭의 다른 한 축인 홍보는 아직 살아 있었다. 광고만큼의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배운 것은 아니지만, 홍보 분야로 간다면 내가 전공 배신자가 될 거라는 죄책감을 덜 수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홍보에 대한 이론 개념을 배울수록 광고보다 더 거시적이면서, 덜 자본주의적이고 공익적이고 사회적인 느낌까지 받았기에, 다시 설레었다. 


4학년 마지막 학기에 규모가 작은 '홍보 대행사'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재직 증명서를 학교에 제출하고 출근했다. 그 당시 나의 목표는 취직이 된 상태로 졸업식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지금의 나였다면 마지막 학기 수업을 더 꼼꼼히 들으면서 소중한 시간을 보냈을 텐데, 그때의 나에게는 그것만이 살 길 같아 보였다. 가뭄에 마른 논바닥 같은 내 스펙에 어디에서라도 물대기를 해야 했다. 경력에 굶주린 나는, 서둘러 홍보 우먼으로의 첫걸음을 딛고자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홍보우먼은 되지 못했다. 인턴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나왔다. 간절했던 그곳에 더 이상은 있을 수가 없었다. 모든 회사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 회사에서 요즘 흔히 말하는 열정 페이의 문제, 갑질 문제 등 사회 초년병이 겪을 수 있는 뻔한 클리셰들을 그 짧은 기간에 겪어 봤다.  부조리함을 떠나서, 일도 배울 것이 없었다. 물론, 인턴은 걸스카우트가 아니니까 배우기만을 바라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내가 보람차게 기여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생각했다. 들어갈 때의 고민보다 몇 배의 큰 고민을 하면서 나왔다. 


학기의 막바지에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 흘러간 몇 개월이, 빌려주고 떼인 돈처럼 너무 아까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전쟁에서 분산 도주한 잔병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 자신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더 초라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까먹은 시간 속에서도 깨달음은 존재했다.   


- 이론 속에서는 홍보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는데, 효과적인 홍보력은 결국 자본빨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   

- 정말 재미있는 이슈라면, 언론들이 다뤄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기사 게재는 광고 게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미디어에 노출되는 사람들은 다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다. 대다수는 대단한 분들이겠지만, 속 빈 강정도 더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포장의 한 끗 차이로 막장이 예술이 되기도 한다라는 사실이 나 같은 애송이에게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 그리고, ''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탐스러운 기회를 놓쳐서도 안 되겠지만, 조금 더 무르익는 시간도 필요하다. 배울 때는 잠잠히 더 배울 줄도 알아야 한다. 눈 앞의 지하철을 놓쳤다고 해서 목적지에 못 가는 것도 아니기에... 

 


그렇게 풋내기의 보송했던 솜털들이 조금씩 말라가고 있었다.  


 

* 홍보 업계에서 일하시는 분들, 오늘도 수고가 많으십니다! 당신의 땀을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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