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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란지교 Jan 05. 2021

창의적인 광고인이 되고 싶었어요.

진로 유목민 (1)

 

고3 시절,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그들에게는 없었고, 나에게 있었던 단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뛰어난 성적도, 외모도, 멋진 이성 친구도 아니었다. 장래 희망 직업이 확실하게 있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대학에서 배우고 싶은 전공 또한 확실했다. 그들은 종종 나에게 "너는 좋겠다, 꿈이 있어서...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종종 했다. 살다 보니 고3이 되었고, 그냥 밀려가듯 일단 진학부터 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니까. 진로에 대한 고민은 그때나 지금이나 고3 에게는 여전히 사치일 수 있다.   

    

20세기 말, 당시 인기 학과 중 하나는 미디어 관련(유튜브 아님) 학과였다. 21세기는 언론의 시대라고 어디서 들은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당시 방송반이나 광고동아리 등을 배경으로 한 청소년 내지 대학생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기도 했다. 신문방송학과, 언론정보학과 등의 관련 학과 합격 점수대는 그 이전보다 점점 높아졌다. 그런 맥락의 영향이었을까? 나는 '광고'를 전공해서 광고기획자가 싶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장점이라고 자부했던 나에게는 너무나 적합한 대학 전공이었다. 스토리보드가 깔려있는 멋진 사무실에서 커피 마시면서 아이디어 회의하는 상상은 19세 소녀의 마음을 충만하게 해 주었다. 창의적인 사람들과 창의적인 장소(?),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것! 마치 칼빈 선생님의 '소명 의식'처럼 광고 분야는 나의 소명이라고 여겼다.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던 그 시점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고등학생 내내 나는 전공만 봤다. 내가 대학교를 다닐 21세기에는 엄청난 혁명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래서 대학교의 간판적 구실은 구태의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그런 일은 너무나 창의적이지 못한 일이었다. 아니 정의롭지 못한 일이었다. 전공은 반드시 직업으로 연결되어야 하며, 취업을 할 때 나의 전공은 엄청난 변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서 주입된 바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때까지는 그렇게 내 세계가 세상보다 더 컸다. 뭘 몰라도 너무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꽤나 귀여웠다.


수능이 끝나고, 친구들은 본인 점수대에 맞추어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온 세포를 집중시켰다. 모두들 자신들의 키 보다 더 커 보이기 위해 깨금발로 위태롭게 서있는 것 같아 보였다. 교실은 긴장의 기운으로 가득 찼고, 담임 선생님은 무척이나 바빠 보이셨다. 나는 그분을 더 바쁘게 하지 않기로 했다. (배려심 깊은 학생).  바로 원서를 접수했다. 늘 생각했던 그 전공과 그 학교로! 게다가 남들처럼 여러 군데 원서를 내면서 부모님의 귀한 돈을 탕진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의 접수, 1타로 끝냈다!(대단한 효심) 그리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긴장할 필요도 없었다. 합격은 자명했으니까(!) 긴장의 시간도 생략해 드렸다. 

  

원서 접수 완료 후, 이미 나는 광고 학도가 되었고, 전공 관련 선행학습을 하고 있었다. 선배들의 학과 카페에 찾아가서 당돌하게 인사글도 남겨보았다. 나의 취미였던 광고 아이디어를 수첩에 메모하기도 했다. 내 머릿속에서 나는 이미 칸 국제 광고제에서 수상한 거목이 되어 있었다.  




21세기가 되고, 밀레니엄 학번 대학생이 되었다. 몇 년을 소명 전공이라 여겼던 이 광고홍보학이 점점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몇 가지 중요한 현실이 보였다. 첫째, 창의성만이 광고 기획에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난 그렇게 창의적이지 않았다. 셋째, 회사에서 직원을 뽑을 때, 해당 직무 관련 전공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넷째, 성공하는 광고인이 되려면 어쩌면 술을 잘 먹는 것이 꽤 큰 덕목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그리고, 학교 바깥세상에 대해서 조금씩 눈을 뜨게 되었다. 내가 학교에서 배우는 '브랜드 파워'가 기업이나 브랜드뿐만 아니라 사실은 인간 개개인에게도 적용되고 있으며,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학 간판'은  인간 브랜드의 가장 큰 요소라는 점이었다.    


그 당시에 그것은 창의성의 배신이었다. 전공한 '전공'대로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고 너무나 융통성 없는 생각을 했었고, 그것을 옆에서 말려주지 못했던 주변 어른들이 원망스러웠다.(두꺼운 콩깍지를 누가 벗기냐고!) 그 후의 나의 진로 원정기는 속리산 말티고개처럼 구불구불했다.   


20년이 지나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 전공은 결국 나에게 아주 맞는 전공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감사한 전공이다. 그 길을 전혀 가고 있지도 않고, 다른 분야에서라도 소위 성공한 사람도 아니지만,  감사한 오늘에 있어서 그 옛날 4년의 그 시간은 꽤나 중요했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모든 전공은 소중하다. 그 길을 연장해서 직진하고 있든지, 유턴을 하든지 말이다. 



* 추신: 기발한 광고로 경제에 활력을 주고 계시는 광고 업계분들, 어쩌면 나의 선배이자 후배일 여러분들, 오늘도 수고 많으십니다. 당신의 열정을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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