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생활
6년 전 , 운 좋게 입사한 대기업은 당시 모든 문과생이 가고 싶어하는 회사 중 하나였다. 합격과 동시에 온갖 선물 꾸러미가 집에 배송되었다. 당시 회사에서는 부모님께 드리는 감사 편지와 함께 합격 케이크 그리고 맞춤 정장까지 선물로 보내주었다. 이후 입사하면서 제주도로 2주간 신입사원 연수도 다녀왔다. 7개월 넘는 취준생활을 이제 막 끝낸 내게는 회사의 선물이 정말 고맙게 느껴졌었다.
이후 입문 교육을 마친 신입사원들이 팀을 이뤄 발표하는 행사가 이어졌다. 그룹 주요 사업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대회였다. 해당 대회는 그룹 전 계열사가 참여하며 예선과 본선으로 나뉜다. 약 5주간의 준비기간을 거쳐서 예선을 통과한 팀은 그룹 모든 경영진과 회장이 참석하는 결선대회에 진출하여 발표를 한다. 준비 과정 중에는 그룹 내 실무자의 코칭이 이어지며 아이디어의 사업성과 실현 가능성을 사전에 검증받는다. 우리팀은 계열사 1등으로 예선을 통과했다. 이어진 최종 결선에서 3등으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 발표를 직접 맡아서 했다. 500명이 넘는 청중과 회장님, 전 계열사 임원 앞에서 했던 발표였다.
생각해보면 입사 초기, 이와 같은 짜릿한 순간들이 많았다. 오랜 취준생활을 보상받는 것 같은 만족감, 커리어적으로 한층 더 성장한 것 같은 기분 그리고 조직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기쁨과 만족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룹에서 인정받는 인재가 된 것 같았던 자신감은 박살나기 시작했다. 현업 부서에 배치받으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조직 특유의 수직적인 문화였다. 입사 후 한동안은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으니까. 경직된 분위기에서 업무를 익히니 배우는 속도도 더 더뎠다. 업무 강도는 높아서 퇴근 후 야근을 해야하는 경우도 잦았다. 당장이라도 퇴사하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업무에서 재미를 느꼈던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주말에는 자발적으로 제안서를 쓰기도 했다. 그만큼 업무에 몰입했고 또 일로 인정받고 싶은 생각이 강했다.
당시 사무실은 강남에서도 손꼽히는 매우 좋은 건물에 위치해있었다. 입사 후 마주한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그럼에도 번듯한 사무실로 사원증을 걸고 출근 하는 순간만큼은 그 실망감을 잠깐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부끄럽지만 스물여덟의 나에게 멋진 건물과 명함은 삶에 큰 만족감을 주는 요소였다.
멋진 건물과 나를 동일시했던 순간이었다.
그것이 곧 나의 삶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것들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회사를 나오는 순간부터 나는 그것과 완전히 무관하다. 폭발적인 성장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는 시점부터 시작이니까. 그러나 당시에 나는 그와 같은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동시에 프로젝트가 5개에서 많으면 10개까지도 진행해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퇴근 후에도 이메일을 보내거나 휴가를 가서도 전화를 받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저녁을 먹다가도 거래처 전화를 받으러 나가는 내 모습을 보며 친구들은 "너보면 대기업 절대 못다니겠다." 라고 말했다.
당연히 나를 위해서 투자할 시간은 없었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더 많은 소비를 하거나 혹은 즉흥적인 여행계획을 잡는 식이었다. 부업을 하거나 투자 공부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회사를 사랑하고, 업무에 집착할 수록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삶의 전부라고 느껴진 순간도 있었다. 따라서 분노하거나, 서운한 일도 많았다.
나는 그렇게 점점 회사에 종속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