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리터러시'의 핵심 내용 점검
2024 경남 e스포츠 인력 양성 아카데미에서의 두 번째 강의를 영상으로 제작해 올려 드립니다. 또한 이 영상을 소개하는 글을 작성함에 있어, 이 강의가 오늘날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그 의미를 설명하는 시간도 가지려 해요. 그런데 그전에, '왜 브런치에서 그 설명을 하려 하는가'에 대해서 답변이 필요합니다. 묻지 않은 질문, 즉 스스로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긴 하나, 이는 제가 저 자체로서의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입니다. 제 글은 언제나 그렇듯 저에게 가장 크게 집중하는 듯하네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제가 브런치에서 만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 글에 '좋아요'를 눌러 주시는 분들이시지요. 글을 읽으시니까 '좋아요'를 누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외의 다른 논리를 가져갈 이유는 별로 없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분들은 이스포츠를 찾기 위해서 계시는 분들은 아니십니다. 보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양질의 글을 찾기 위해서 계신다고 말을 해도 큰 틀림이 없을 거예요. 결국 이 과정은 저 스스로 납득을 하지 못하는 활동이라면 누구도 납득할 수 없다는 철학에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강의에도 포함되어 있는 내용입니다만 우리는 이스포츠를 누구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 시점에서 정리를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우리를 아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우리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이스포츠 관련 토크쇼, 세미나, 포럼, 컨퍼런스 등을 할 때면, 이는 이스포츠를 모르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하는 경우보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스포츠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트렌드임을 확정하고 그 배경 내에서 각 주제에 맞게 필요한 내용들을 펼쳐내는 것이지요.
최근 이슈 중에 예를 들면 '이스포츠 국제 표준화'가 있습니다. 간략하게 줄이면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더 빠르게 이 일을 추진한다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우리의 논리는 우리가 종주국인데 이 일은 중국이 아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는 이스포츠가 왜 가치를 가진 활동인지, 세대 간의 이해를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이 문화와 문화산업을 설명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할리는 없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왜 종주국인지에 대해서도 그다지 설명을 하지 않죠. 소결론을 내리면 대상과 상황이 서로 다른 것입니다.
물론 저는 위와 같은 자리가 필요 없다는 내용을 피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과연 우리 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스포츠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는 제가 '많다'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나 실제로 많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정치인들이나 기업인 혹은 가까이에는 여러분들의 부모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세대를 초월할 수 없죠. 이 세상에는 게임 때문에 갈등하는 영상이 차고 넘칩니다.
<아들의 게임기를 뺏거나 부수는 그 영상들이 그리 특별할 게 없어요>
늘 같이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세계에는 게임 그리고 이스포츠 종목이라고 부르는 것들로 인해 갈등이 분명히 존재해요. 그것을 누구도 '없다' 할 수 없습니다. '어두움을 더 밝음으로 덮어지나요?' 이를 테면 '태양이 더 밝으면 그늘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게 됩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밝은 빛 아래 더 짙은 어두움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하되 우리를 설명하는 일도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에요. 그늘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빛 가리개를 치우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이스포츠 리터러시'라는 단어는 저 외로는 아직 아무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게임 리터러시도 게임 산업이 본격화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이슈의 반열에 올랐으니 충분히 예상되는 내용이지요. 그런데 더는 미룰 수가 없습니다. 첫째, 세상이 너무 '급변'합니다. 이 부분은 그 자체 외로의 설명이 필요 없지요. 그다음은 '밝음이 진해지기 때문'입니다. 이스포츠는 더 거대한 세계로 나아가고 있고 그 흐름은 누구도 막지 못해요. 따라서 자연스러운 결론은 '우리나라에서도 다 이해를 하지 못하는 개념을 어떻게 글로벌에 설명할 것인가'입니다.
애초에 구조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자, 이제 제 강의 영상을 공유드릴 차례입니다. 만약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참고가 되셨으면 좋겠네요.
갈등의 해결은 바른 지식을 소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유는 우리는 논리라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갈등을 해결하고 싶은데 갈등의 대상에 대해서 깊은 탐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은 갈등을 해결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을 해도 무방합니다. 계속 갈등하고 싶다는 말 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먼저 필요한 지식을 정리하고 그것을 전달해야 할 루트를 마련해야 해요. 그것이 첫째 우리가 전문가로 존재하는 이유이고 둘째 우리가 권위(어른)로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사회적 갈등은 사회가 나서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그 사회적 이슈의 중심에 우리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 내 우리 분야에 일을 우리가 담당하는 것입니다. 다른 분야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담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사회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을 각자가 담당합니다. 사회는 늘 이슈를 해결해 나가면서 진보하게 됩니다. 이슈 자체는 없어질 수 없어요. 다만 언제 심각성을 드러내는 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안 할 때입니다.
<큰 이슈가 될 때까지 방치하면 큰 사회적 비용의 발생을 필연하게 됩니다>
<그때 세상은 우리를 원망하게 되며 이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이 과정에 참여한 수강생들에게 제가 강의에서 당부하는 내용으로 긴 글을 마무리할게요. 이 시대에 우리가 이스포츠를 안다라는 것은 단순하지 않게 되었어요. 이유는 이 주제는 주목을 받게 되었고, 대하는 세대들이 많아지고, 또 이해관계가 다양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다 각자의 관점이 있어요. 세련된 소통이라는 것은 그것을 관통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e스포츠'를 바로 알 수 없고 'e스포츠'를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e스포츠'에 관한 정책을 지지할 수 없습니다. 진보를 희망하나 답보 상태에 늘 갇히게 됩니다.
"우리가 만약 오늘의 강의로 인해 논리의 실마리를 얻었다면 그 논리로 적극적으로 우리와 우리 문화를 설명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란' 수강생들 말하며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님들은 아니시지요. 그러나 독자님들은 제 의도는 정확하게 이해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매체인 브런치의 이 포스트는 그것이면 충분한 것이지요. 저는 앞으로도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할 생각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아무것도 가져갈 것이 없는 한 세상을 살면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그 사실' 말이지요.
글 : 구마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