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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선씨 Jan 16. 2021

새삼 깨닫는 학교의 역할

다른 상은 못 받아도 개근상은 받아야 한다고 배웠다. 아파서 가기 싫다고 해도 꾀병으로 치부되기 일쑤였고, 꾸준히 빼먹지 않고 등교해야 성실하고 착한 아이라고 칭찬받았다. 그만큼 학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연히 가야 하는 곳인 줄 알았다. 

내 아이들도 맞벌이 부모를 둔 덕에, 만 한 살이 되기도 전에 사회생활이란 걸 시작했고, 결석은 거의 하지 않았다. 아니 결석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수년간 당연하게 여기며 쌓아온 생활습관이 무너지는 데는 2주도 걸리지 않았다. 코로나는 건강함이 확인되지 않으면 출석을 하지 말라고 했고, 간헐적으로 건물 방역으로 교육기관이 문을 닫아버리는 일도 있고 해서, 점점 안 가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방학과 2.5단계 격상을 기점으로, 회사는 재택근무를 대대적으로 시작했고, 아이들은 원에 갈 이유가 더더욱 없어졌다. 


그렇게 2주, 힘들게 아이들과 진종일 복닥대며 재택근무를 하는 중이다. 좁은 공간 안에서 셋이 수시로 투닥거리고 하염없이 놀기만 하는 게 눈앞에 보이는데, 나도 일은 해야 하니 애들을 컨트롤할 수가 없다. 회사에 나가 있을 때도 아이들은 이랬겠지만, 직접 보는 것과 상상하는 것은 꽤나 다르게 느껴진다. 이걸 그냥 두고 보는 건 엄마로서의 직무유기임이 분명해진다. 나 혼자 모든 역할을 다 해낼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아이들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거나,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때인 거다.

더 이상 어떻게 너그럽지? 큰 애는 하루 종일 좋아하는 아이돌 덕질이고, 둘째와 막내는 각각 태블릿 들고 종일 유튜브만 보는데... 눈만 나빠지고 유튜브에 중독되고 딱히 배우는 것도 없고, 긍정적인 효과를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못 찾겠는데, 얼마나 더 내려놓아야 하는 걸까. 차라리 밖에 나가서 한 바퀴 산책이라도 하라 하는데, 이젠 집 밖에 나가기도 귀찮다고 안 나간다. 


학교와 학원은 '교육'기관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생활습관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었던 거였다. 그걸 이렇게 호되게 겪어 보고 나서야 깨닫다니. 늘 감사하다고 선생님께 인사는 드렸지만, 상상으로 의례적으로 했던 거랑 이렇게 체감하고 나오는 말은 다를 것 같다. 예전엔 그저 '감사합니다'였다면 이제는 '이 어려운 일을 해주고 계셔서 우리 가정이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느낌이랄까.


재택 2주 차가 마무리된 날이다. 혼란스러운 이 시기를 살아가는 법을 체득해야 할 텐데. 우리 가족은 아직 이 시기를 현명하게 살아내는 법을 못 찾았다. 특히 나는 많이 헤매고 있다. 일하는 와중에 어떻게 삼시 세 끼를 효율적으로 잘 차려서 먹일 건지, 하염없이 늘어져 있는 아이들의 교육과 건강은 어떻게 챙길 건지. 


재택근무 중에 자꾸 와서 같이 놀아달라는 7살 막내에게 물었다.

" 엄마가 회사 가는 게 좋아 안 가는 게 좋아?"

" 안 가는 게 좋아"

"그럼, 일을 하는 게 좋아 안 하는 게 좋아?"

" 일 안 하고 돈 버는 게 좋지."

" 일을 안 하는 데 누가 돈을 줘?"

" 그러게. 그러면 세상이 참 좋아질 텐데."


막내 말이 정답이다. 세상이 좋아져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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