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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선씨 Jul 21. 2021

넓고 얕은 경험을 수집합니다.

휴직 12주 차

매일매일 이벤트로 스케줄표가 꽉 차 있던 한 주였다. 코로나로 예약해둔 공공기관 프로그램들이 많이 취소되었음에도, 한 주를 돌아보니 이것저것 한 게 제법 많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항상 같이 있는 건 힘드니까... 가끔씩 Me Time을 확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번 주 혼자만의 시간은 아크릴화 원데이 클래스를 예약해두었다. 일전에도 한 번 그려본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좀 더 개성을 살려서 그려보리라 생각하며 갔는데, 이번 선생님은 완성도를 매우 중시하는 작가님이셔서, 미리 구상해오신 스케치와 색상 그대로 따라 하는 활동이 되었다. 시작할 땐 좀 아쉬웠는데, 간사하게도 결과물을 보니 완성도가 제법 높아서 마음에 든다.


본격적으로 온라인 클래스로 펜글씨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솔직히 사은품 만년필에 홀려서 신청했는데 강의에서 알려주는 대로 따라 하면 뭔가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오니, 왠지 소질이 있는 것도 같고 계속 취미로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샘솟는다. 내친김에 낙관용 도장도 파고, 작품화하기 위한 엽서지도 구매하고, 전용 인스타 계정도 팠다. (쓴 지 며칠이나 됐다고 ㅎㅎ) 여하튼 준비물이 갖추어지니 더 신이 난다. 본격적으로 끄적대기 시작했다.

엄마가 안 하던 걸 하니, 아이들도 관심을 보인다. 아이들은 그림을 담당하게 하고 나는 글씨를 쓰고 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번 주의 협업 작품들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써야지


무더운 주말, 온 식구들이 복작대는 집에 있으려니 스트레스가 올라오던 참에, 아이들이 박물관에 가고 싶다고 한다. 그래? 그렇다면 얼리버드 티켓을 사두었던 '파라오의 비밀' 전시를 보러 가자며 급작스럽게 용산으로 향했다. 표는 사두었지만 아이들이 이해할까 싶어 취소여부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잘되었다.

둘째는 '이집트에서 보물찾기'라는 만화책에서 투탕카멘 이야기를 봤던 모양이다. 기특하게도 열심히 사진 찍고 오디오 가이드도 들어가며 구경한다. 걱정했던 막내도 오디오 가이드를 끝까지 듣더니(어린이용 오디오 가이드가 따로 있었다), 나한테 투탕카멘의 이름에 대해서 설명도 해준다. 와우! 마냥 어리게만 봤던 7살 막내도 많이 컸네! 정작 나는 어른용 오디오 가이드 내용이 어렵고 아이들 챙기느라 집중하기 힘들어서 다 이해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아이들이 반응해주니 뿌듯했던 전시회 관람이었다.  

 

용산까지 간 김에 전쟁기념관도 둘러보기로 한다. 막내를 데리고 다니며 전쟁에 대해서, 6.25에 대해서 설명해주면서 한자어의 어려움을 여실히 느낀다. 참전, 퇴각, 수복, 남침, 인해전술, 연합군.. 7살짜리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 자체가 별로 없다ㅠ.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표시된 지도상의 변화를 중심으로 나름대로 설명한다고 애를 썼다. 전쟁기념관은 시간을 두고 좀 더 자세히 봐야 할 곳인데, 나도 지식이 짧고 아이도 온전히 이해하기엔 어리고, 다들 체력도 바닥나서 다 돌아보지도 못하고 돌아오기로 했다. 이 정도가 그날의 우리들에게 최선이었다.


매년 여름엔 한강에서 수상레저 체험을 하곤 했는데, 작년과 올해는 프로그램 자체가 많이 없어져서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러다 무료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하여 꽤 오래전부터 신경 써서 카약 체험을 예약해뒀고, 일요일에 인천으로 출발했다. 이 더운 날씨에 카약이라니, 내 손으로 예약하긴 했지만 정작 내가 탈 자신은 없어서 나머지 가족들만 들여보냈다. 아빠가 태워주는 배 위에서 막내는 마냥 즐겁고, 첫째와 둘째는 나름대로 둘이 구령 붙여가며 방향 맞춰 노를 젓는다. 두 팀 다 꽤 잘한다. 몇 년간 시켜온 보람이 있다.  




요약하자면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들을 덧붙이려고 애쓴 한 주였다. 내가 워낙에 특별한 이벤트나, 안 해봤던 체험을 알아보고 실행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문제는 특정 분야에 꽂히지도 않고, 깊이 있게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다양한 걸 시도하지만 무엇하나 전문가 수준으로 파고들어 한 적이 없다. 얇은 경험을 넓게 넓게 벌리고만 있는 느낌이다. 좁고 깊은 경험과 얇고 넓은 경험, 둘 다 장단점이 있겠으나 내가 후자에 특화된 사람이라는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나를 돌아볼 때면 결국, 또다시, 우리 엄마 생각을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나와 엄마의 성격은 상당히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분야에 한해서는 엄마와 꼭 닮았다. 1980년대에 무려 윈드서핑도 하게 해 주고, 음악회나 미술관은 거의 매달 다녔고, 각종 전시회도 챙겨 다녔던 우리 엄마. 그때 봤던 것 중 중국의 병마용 갱 전시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한 전시, 사람의 근육과 뼈를 생생하게 볼 수 있었던 인체의 신비전은 아직도 기억난다. 그 시절 음악회 티켓은 당시 기준으로 꽤나 비쌌을 텐데, 심지어 차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어서 정보를 찾기도 어려웠을 텐데, 우리 엄마는 참 부지런히 무언가를 하셨었다. 그리고 그 피는 나에게도 흐르고 있다.


다만 딸인 나는 엄마가 보여준 많은 것  중 어디 하나에도 관심이라는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고, 엄마가 된 지금도 경험을 넓히고만 있다. 삶의 재미를 위한 넓고 얕은 경험이랄까.

가끔, 내가 어떤 분야에 빠져들어 전문가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잘 못하는 영역이라 그런지 무언가를 깊이 있게 아는 사람을 보면 좀 멋있어 보인다. 나도 좀 멋있는 사람이 되었으려나. 과연 행복했으려나.


잡다하게 이것저것 해보는 걸 좋아하는 지금의 나도 나쁘지 않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언젠가는, 어떻게든 내 삶에 영향을 미칠 테니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 그러니, 이번 주도 참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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