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선씨 Aug 25. 2021

... 할줄 알았는데

휴직 16주 차

일주일여 제법 긴 휴가를 다녀와서, 일상생활에 복귀하기 어려웠던 한 주였다. 당장 주말에 또 어딜 갈 예정이라 짐도 안 풀고 널브러뜨려놓고, 그간 쌓아놨던 공부하고 운동하는 습관들은 다 무너져버렸다. 꽤나 피로했는지 다래끼가 나는 바람에 생활하기도 은근히 불편하고, 서울은 여전히 더워서 밥 한다고 불 쓸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냥 한 끼, 한 끼 어찌어찌 겨우 먹으며 보낸 일주일이었다. 


돌아보면 참 오만했다. 안 하던 운동 좀 했다고, 공부 좀 했다고, 계속 잘할 줄 알았는데 깨지는 건 순식간이다. 한참 잘하고 있던 스터디도 갑자기 7월로 종료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매일 반강제적으로 녹음하던 걸 자꾸 미루게 되고, 결국 이번 달에는 하나도 안 했다. 두어 달, 빠짐없이 잘 해왔기에 혼자서라도 영원히 계속 잘할 줄 알았더니만, 스스로를 과신하면 안 되는 거였다.  

누가 안 시켜도 혼자 나가서 달리기하고 오던 과거의 나는 어디로 가고, 이젠 새벽에 일어났다가도 다시 잠들기 일쑤다. 어디가 아프다던지, 생리한다던지, 다른 운동을 할 거라던지 등의 정당한 핑곗거리가 있는 날은 반가울 지경이다. 


사회 초년병 때 단기 인턴으로 근무할 때가 떠오른다. 처음 입사해서 사수를 만나 이야기를 하는데, 근태를 잘 지키라 당부하길래 당당하게 대답했었다.

"저는 절대로 지각은 하지 않아요."

그간 성실하다고 자부해왔기에, 적어도 근태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집에서 버스 타고 지하철탄 후 또 지하철을 갈아탄 다음에 십여분 이상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고, 출근 시간에는 지하철도 밀린다는 걸 몰랐고, 때는 한여름이어서 가는 길이 정말 험난하게 느껴졌다. (사실 다 핑계고) 어쨌든 그러다 나는 결국 종종 지각을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몇 달 뒤 사수가 빙긋 웃으며 하던 말이 비수처럼 꽂혔다.

"지각은 안 한다면서요."

얼마나 자신 있게 말했길래 사수가 기억을 하고 있었을까. 20년 전 그 회사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이라면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알고 있었으면서, 초심을 잃었나 보다. 그새 까먹고 또 자신하고 있었다. 당연한 것은 없다. 자신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러니 함부로 호언장담해서는 안된다. 그간 나 요즘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한다며 자랑해대던 게 부끄러워지는 일주일이었달까. 계속할 줄 알았던 스터디도 끝났고, 즐겨 듣던 영어 프로그램도 끝나버렸고, 매일 뛸 줄 알았던 달리기 기록도 멈춘 지 오래고, 계속 줄어들 줄 알았던 체중도 다시 늘고 있다. 


혼란의 일주일을 보냈으니, 슬슬 다시 방향을 바꿔보리라. 하루하루 꾸준히 열심히 하되, 자신하지는 말아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위시리스트 뽀개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