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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오리새끼는 정말 미운가?

평범하지 않은 나를 활용하는 법, 평범하지 않음을 선택하는 용기

굳모닝! 


#1 용감한 소 클랜시

오늘 아침에 딸이 유치원에 가기 전에 책을 하나 가지고 와서 읽어달라 했어. 그 책은 "용감한 소 클랜시"라고 하는 책인데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404622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어른들이니 스포를 해도 괜찮을거라 생각하고 내용을 말하자면 

어느 마을에 클랜시라고 하는 소가 살았는데, 이 동네의 소는 다 검정색 몸에 흰색 줄무늬가 있었는데 클랜시만 줄무늬가 없어서 다른 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돼. 클랜시는 다른 소들처럼 흰색 줄무늬를 갖고 싶어서 온갖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만 타고나지 않은 줄무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었지. 

한편, 클랜시가 지내는 곳은 먹을 수 있는 풀이 부족해서 소들이 대부분 야위고 건강하지 못했는데 담장 너머 는 풀이 엄청 싱싱하고 많아서 그쪽 소들은 무럭무럭 크고 다들 튼튼했어. 

어느 날 클랜시의 구역 내 소들이 밤에 담장 너머로 몰래 잠입해 들어가서 풀을 몰래 먹으려고 했고, 클랜시 구역의 다른 소들은 몰래 풀을 먹다가 흰 줄무늬 때문에 발각되어 도망가게 되는데 클랜시는 줄무늬가 없어서 밤에 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안전하게 풀을 먹을 수 있었어. 그러다가 실수로 다른 소와 부딛히게 되는데, 우연히 만난 "헬가"라고 불리우는 이 소는 담장너머 구역에서의 "클랜시"와 같은 입장이었어. 이쪽소들은 갈색 몸에 흰색 줄무늬가 있었는데 헬가만 갈색 몸에 줄무늬가 전혀 없었던거지. 그래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친해지게 되었어

그렇게 해서 클랜시는 담장 너머의 구역에서 풀을 많이 얻어먹게 되었고, 몸집이 커지고 튼튼해졌지. 그러니까 그렇게 놀려대던 클랜시 구역 내 흰색 줄무늬 소들이 이제는 클랜시에게 잘해주게 되었어.

한편 클랜시네 동네와 옆동네의 소들은 이따금씩 씨름경기를 하곤 했는데, 잘 먹지 못한 클랜시네 동네 소들이 지곤 했었는데 옆 동네에서 풀을 많이 얻어먹은 클랜시가 옆 동네 소를 이기게 된거야. 그 틈을 타서 클랜시 동네 소들이 옆동네 소들을 몰아내고 비옥한 풀의 땅을 차지하려 했는데, 그 때 클랜시가 멈추라 했고(그 옆엔 헬가가 있었고), "우린 그 동안 너무 많이 싸우고 지냈어요. 어떤 무늬가 있던 우리는 다 같은 소에요. 서로 간 담장을 허물고 사이좋게 지내요"라고 말하며 이야기가 끝나게 돼.


아침에 딸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수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어. 아이들 동화책 치고는 너무 성인들에게도 울림이 많은걸?




#2 오징어게임


요새 세간에 난리인 오징어게임 알지? 오징어게임의 마지막 바로 전? 게임에 유리로 된 징검다리를 건너는 게임이 나와. 근데 그 게임의 정체를 참가자들에게 알려주기 전, 참여자들에게 1번에서 16번까지의 번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지. 사람들이 번호를 선택한 순서를 보면, 가운데 위치한 숫자들 위주로 먼저 선택이 되고, 가장 마지막 남은 1번과 16번을 성기훈(이정재 역)과 또 다른 한명이 서로 옥신각신 하다가 성기훈이 16번을 택하게 돼지.

결과는? 16번은 최고의 선택이었고, 1번은 최악의 선택이었던 거지.


이 게임에서 사람들이 중간을 택한 건 심리적으로 극단적인 위험은 회피하기 위한 성향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해. 어떤 게임을 하든, 단체전을 하지 않는다면 게임을 하는 순서를 정하게 될 수 있고 그러면 일반적으로는 앞에서 시작하든 뒤에서 시작하든 나는 앞의 사람이 하는 성공 또는 실패를 보고 뭔가 배울 수 있거든. 

또는, 나란히 서서 곡선 레인에서 달리기를 하는 것을 가정해봐도, 양쪽 끝은 모 아니면 도가 될텐데 (즉, 그 레인의 실질 길이가 가장 짧거나 김) 나는 어떤 방향으로 곡선이 나더라도 중간은 할 수 있으니까. 


오징어게임의 룰은, 잘 알다시피 탈락자는 죽고 승자는 엄청난 부를 거머쥐게 돼. 이렇게 실패하면 마이너스, 성공하면 플러스가 명백한 게임에서는 심리적으로 마이너스에 대한 두려움이 굉장히 크게 작용하게 되고 그래서 중간을 택하지 않았나 싶어.

만약에 탈락자가 죽지는 않고 그냥 상금만 포기해야 한다면? 그렇다면 사람들의 번호 선택이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 봐. 


오징어게임의 위 장면은 Higher Risk의 결과에는 Bigger Return 또는 Bigger Loss가 자리잡고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 그리고 사람들은 흔히 Bigger Loss에 더 주목하다 보니 보다 안전한 "평범함"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캐치할 수 있어.





두 가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통해 생각을 좀 해 봤어.


투자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평범하지 않은 선택을 하거나 외부의 요인으로 평범하지 않게 된 사람은 High Risk라는 방향성 안에 놓인 것이고, 이 방향성 앞에 펼쳐진 편차가 큰 스펙트럼 (즉, High Risk의 결과로서 얻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는 Big Return 또는 Big Loss 사이 어느 지점이 될 것이니) 중 어느 결과를 얻게 될 것인가는 몇 가지 요소들이 좌우할 것으로 보여.

그 요소들은 무엇일까? 크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요소와 그렇지 않은 요소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1) 통제할 수 있는 요소 : 내 끈기, 집념, 의지, 노력

2) 통제할 수 없는 요소 : 기회, 운

기회와 운은 언제 나에게 올지 통제할 수는 없으나, 크고 작은 것들이 인생에 몇 번씩은 오고 가는 것으로 본다면, 통제할 수 있는 요소를 완벽하게 잘 해서 갖추고 있다면 통제할 수 없는 요소도 결국 언젠가는 올 것이고, 준비가 되어 있으면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지겠지?



이를 바탕으로 위 두 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나만의 룰을 정리해봤어.


상황 1. 내 인생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보편적인 사람들이라면 선택하는 것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선택할 것인가?

1) 우선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 나는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는 요소(끈기/집녑/의지/노력 등)를 발휘할 수 있는가?

- 나는 어떤 부류의 사람이 되기 원하는가?

2) 1번 답에 따라 나에게 주어진 수많은 선택에 대한 기준점을 마련한다.

3) 선택 전후로 이 선택을 하는 기준점은 다른 어느 사람도 아닌 "나"에게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상황 2. 내 선택이 아닌 외생적인 원인으로 인하여 보편적인 사람들과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면? 

1) 내 앞의 펼쳐진 선택지들이 High Risk High Return임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끈기/집념/의지/노력 등 통제할 수 있는 요소들을 더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

2) 보편적인 사람들과 다른 상황인 것이 "창피"하게 여겨지는 순간은 내가 그것 빼고 다른 모든 것이 평범할 때다. 내가 어떤 다른 면이나 분야에서 위 언급한 통제할 수 있는 요소를 십분 활용하여 High Return을 쟁취할 수 있다면, 나를 어려운 상황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던 "보편적인 사람들과 다른 상황"이 "우월"한 점으로 변모한다.  



한가지 사례를 들어볼게


얼마 전에 누군가 찾아와서 커리어 고민상담을 하는데, 본인이 부동산 운용업에서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업종으로 이직하려고 고민하고 있고, 이에 대해 선배 중 한명이 만류를 했는데, 그 이유가 "커리어가 깨진다."였다는 거야.

왜 그런 이유를 들었을까? 그 이유는 부동산 운용업을 하는 사람이 계속 이 업에서 착실히 커리어를 쌓는 것이 "보편적으로" 더 빨리 커리어적으로 성장하고 더 좋은 기회들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겠지.

난 거기에 만류를 하지 않았고, 위의 원칙에 근거해서 이야기를 했어. 


그 Outlier 선택을 한다면, 그 결과에 대한 만족도는 편차가 매우 클텐데, 그것을 긍정적인 결과치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몇배의 노력(위에서 언급한 "통제할 수 있는 요소")은 더 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신이 있다면 좋은 선택일 수 있다고. 만약 긍정적인 결과치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기대값은 평범한 선택(같은 업종에 남아 있는 선택이겠지? Low Return에도 만족하니 Low Risk를 택하는 경우일거야)보다 더 클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 통제할 수 있는 요소를 잘 견지할 수 있는 자신감이 없을 경우 그 선배의 말을 따르는게 나을 수도 있다고는 했어.


또 하나의 장애물은, 이러한 선택을 하면 주변에서 그렇게들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다는 거고, 항상 그럴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다는 거야. 


또 한번 나는 위의 원칙에 근거해서 이야기를 했어. 위에서 말하는 통제할 수 있는 요소를 어느 정도 발휘할 수 있을 지는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이야기 해온 많은 사람들 중 일부는 본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선택할 수 없을 것이기에 그렇게 의견을 준 것일 가능성이 있고, 그 주체가 "나"라면 어떻게 될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을 수 있어. 만약 그중에 누군가는 조금 더 사려깊어서, 오랫동안 지켜봐 온 "나"의 모습에 근거하여 그와 같은 조언을 했더라도, 내 미래 모습은 반드시 과거와 같을 필요가 없는 것이고, 그건 나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이고, 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


따라서, 선택은 철저히 "나"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하고, 선택을 했다면 그 결과를 훌륭한 결과치로 만드는 것도 결국 "나"의 내면에 있는 통제 가능한 요소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클랜시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클랜시가 평범하지 않은 소가 된 것은 스스로 선택하게 된 것이 아니고 그에게 주어진 상황이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담장 너머에서 풀을 먹을 때 줄무늬 없는 몸이 본인을 보호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리고 우연히 만난 헬가와의 만남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건강한 풀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쟁취하고 그것을 통해 몸집을 키웠고, 그렇게 되니 클랜시를 따돌리던 주변의 소들이 클랜시에게 우호적으로 변하게 돼. 


우리는 흔히 결과론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보고 그 사실을 흠모하고 부러워하지만, 정작 그들이 밟아 온 과정들에 각기 다른 형태로 High Risk에 대한 선택, 또는 평범하지 않은 방향으로의 선택이 있었다는 것에 주목하지 않는 것 같아. 그런 것들 중에는 심지어는 선택이 아닌 수동적으로 주어진 환경인 경우도 있었지.




다시 한번 나를 들여다 볼 시간이야. 내가 바라보는 나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인가? 내가 발휘할 수 있는 통제 가능한 요소는 어디까지인가? 평범하지 않은 선택(Higher Risk)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물(즉, Bigger Loss가 아닌 Bigger Return을)로 가져올 수 있게 할 수 있을 만큼인가? 만약 그렇다면,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을 부끄러워 할것도 없고,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대해 남들의 케케묵은 조언에 휘둘릴 필요도 없다고 봐.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긍정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은 생각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요소들에 의해서 100%에 가깝게 수렴할 수 있어. 그러니, 될 놈은 된다는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알것 같지?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의 스스로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 평범하지 않은 방향으로의 선택을 응원해. 또는 이미 주어진 상황으로 인하여 평범하지 않다면, 그것을 Bigger Return으로 승화할 수 있는 여러분만의 통제 가능한 요소를 응원해.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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