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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gom Nov 21. 2023

디카페인, 무알코올

디카페인 음료가 디카페인인 것을 모르고 먹고 있었는데 오늘 자세히 읽은 결과 디카페인이었다. 어제까지는 분명 졸음이 달아가는 기분이었으나 디카페인임을 인식함과 동시에 그가 다시 내게 옴을 느낀다. 해골물 같이 과격한 사례는 아닐지라도 흔하디 흔한 교훈을 한 줄 더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 달렸다.


한편 무알코올을 무알코올이라 알면서 먹었던 지난 경험은 오늘의 교훈을 다소 의아하게 만든다. 교내 편의점에서 모든 알콜이 퇴치되고 무알코올 음료가 그럴싸한 외양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신기한 마음에 한 캔 쭉 들이켰더니만 몸에 열이 오르고 정신이 달뜨는 것 아니겠는가. 괜히 음주하였다고 오해받는 것이 불쾌해 그 이후로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참으로 낯설고 상식에 어긋난 경험이었다.


두 날의 차이는 무엇인가? 정확한 비교를 위해서는 한 가지 경험이 더 필요한데, 바로 무알코올을 무알코올인줄 모르고 마셨던 경험이다. 직접 경험한 바 없으므로 이 경험에서 두 가지 결과가 가능하다고 가정하겠다. (1) 무알코올을 무알코올인줄 모르고 마셨고 무알코올이라 느꼈다. (2) 무알코올을 무알코올인줄 모르고 마셨는데 알코올이라 느꼈다.


(1)의 경우 두 경험 모두 인식 전후에 따라 성질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동일하나, 그 방향이 반대로 되어 의구심을 자아낸다. 커피의 경우 디카페인인줄 몰랐을 때는 카페인이었고 디카페인이라고 알았을 때는 디카페인이 되었다. 반대로 술의 경우 무알코올인줄 몰랐을 때는 무알코올이었고 무알코올이라고 알았을 때는 알코올이 되었다. 해골물 사례는 전자라고 보아야 한다. 정보가 부족했을 때 오해했던 것이 정보를 얻고 나서 정정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후자는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오해하려 하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두 사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인식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커피의 사례는 인식과 감각이 합치된다. 디카페인이라는 것을 알기 전, 그러니까 카페인이라고 생각했던 와중에는 실제로 카페인처럼 느껴졌기에 인식과 감각이 일치되었다. 그리고 디카페인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카페인 효과가 사라졌기 때문에 역시 인식과 감각이 일치되었다. 반면 술의 사례는 인식과 감각이 항상 뒤틀려 있다. 무알코올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알코올이라 생각하면서도 무알코올이라 느꼈으므로 인식과 감각이 상이했다. 이후 무알코올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반대로 있지도 않은 알코올을 느껴 인식과 감각이 또 상이했다. 두 사례에서 인식과 감각이 상호작용하는 방향이 꼭 반대였던 것은 카페인과 알코올의 차이에서 연유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카페인은 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키는 반면 알코올은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신경계에 미치는 영향이 꼭 반대이다. 이것이 인식-감각의 커뮤니케이션에 관여하여 둘이 합치되거나 괴리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실제로 카페인과 알코올이 존재하였던 것은 아니므로 무슨 플라시보가 작동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의 경우 두 경험의 차이는 커피와 술에 대한 인식체계상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사료된다. 커피는 디카페인 여부의 인식 여부에 따라 있지도 않은 카페인이 느껴지거나 느껴지지 않은 반면, 술은 무알코올 여부의 인식 여부와 상관 없이 계속 알코올이라 느꼈다. 분명 무알코올인데 주야장천 알코올로 느껴지는 것은 그 성분이나 나의 인식체계를 의심케 하는데, 무알코올을 애써 알코올로 만들어 사람들을 속이는 게 판매자에게 무슨 이득이 되는지 모르겠으므로 본인의 인식체계 문제라고 본다. 본인 일상에 커피보다는 술이 덜 흔하고, 술은 명분만으로 마음을 고양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등의 분석이 가능하다.


여기서도 인식적 분석을 더할 수 있는데, 커피의 경우 인식-감각이 줄곧 합치되었으나 술의 경우 합치 여부가 변화하였다. 무알코올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전에는 알코올이라 생각하고 알코올이라 느꼈기 때문에 인식-감각이 합치되었다. 반면 무알코올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나서도 알코올이라 느낀 것은 인식-감각이 괴리되었음을 뜻한다. 인식의 문법이 변경된 것인데 이것 역시 윗 문단에서의 분석과 매한가지로 인식상의 문제로 귀결됨은 어긋남이 없다.


결국 디카페인과 무알코올이 주었던 경험의 차이는 음료의 물리적 혹은 심리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카페인을 디카페인이라고 착각했던 사례나 알코올을 무알코올이라 착각했던 사례 등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이 어찌되었든 점심 후 앉아 있기는 너무나도 벅차며, 카페인이든 알코올이든 몸에 집어넣어야 살겠다는 게 깨달음 아닌 깨달음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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