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 월요일, 마크롱, 추가 연장을 발표하다.
안녕하세요. 르퐁입니다. 브런치에서의 다섯 번째 글입니다.
벌써 근 한 달 째 프랑스에서 통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봄이 왔었는데, 꽃들도 피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고 꽃잎들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며칠 전엔 빗방울도 떨어지던데, 바람이 무척 차갑습니다. 마치 겨울이 다시 오는 것 같습니다. (말 없는 하늘만 참 푸르고, 구름도 태평하게 흘러갑니다.) 문득 시가 한 편 떠오르는 군요. 독자 여러분과도 함께 시를 나누고 싶습니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조지훈, <낙화>
꽃이 지는데 바람을 탓할 수는 없겠지요. 인간의 마음이야 어떻든, 예정된 계절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고. 꽃이 폈든 졌든, 흐름이라는 것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 가겠지요. 사람의 마음만 꽃이 진 자리에 남아, 꽃이 폈던 시절을 추억하고 애달파할 뿐이겠지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간이 흐르다보면 언제고 꽃은 다시 피게 되어있다는 것이겠지요. 그 기다림이 길 뿐.
4월 13일 밤 8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통제Confinement를 5월 11일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호텔, 극장 같은 불특정다수가 모일 수 있는 공간은 5월 11일 이후 순차적으로 개장시킬 계획이라고 합니다. 약 한 달의 시간 동안 통제를 버텨왔는데, 앞으로 한 달의 시간을 더 버텨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실 13일 이전에도, 통제 기간이 5월 초중순까지 이어질 거라는 소문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실로 맞닥뜨리니, 생각보다 제가 정신적 충격을 더 크게 받은 것 같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러한 통제 기간 동안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들을 내놓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아무래도 금전적인 문제가 제일 크니, 그에 대한 방안을 내놓겠다는 것이겠지요. 독일처럼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천 유로를 줄 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해줄지, 기다려보면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방안이 저나 제 아내에게까지 닿을 수 있는 것인지도, 기다려봐야 알 것 같습니다.
1. 프랑스인들은 정말 마스크를 끼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까?
저는 이 물음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답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언론에서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아픈 사람만 마스크를 착용하면 된다고 했고, 모두가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것이 정말 효과가 있다는 것도 밝혀진 바 없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또 다른 전문가들이 나서서 마스크 착용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요.
실제로 거리에 나가보면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여럿 보입니다. 열 명 중 세 명 가량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 명 중 두어 명 가량 수건이나 스카프 등으로 입을 가리고 다니고 있고요. 물론 나머지는 그냥 다닙니다. 마스크 착용은 절대로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죠.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이 정말 시쳇말로 '깡다구'가 쎄서, 혹은 정말 무지해서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마스크가 없고, 있는 것도 의료진들을 위해 양보해야 한다니 일반 사람들이 구하기는 정말 힘듭니다. 한국처럼 발빠르게 정부가 마스크 생산 및 유통을 관리한 것도 아니라서요.
한국은 중국발 황사 때문에 마스크 착용이 거의 상식처럼 자리잡았고, 그만큼 물량도 충분히 만들어낼 만큼의 설비를 갖췄습니다. 반면에 프랑스에는 마스크란 환자만 착용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오래전부터 자리잡혀 있고, 지금껏 벌어진 수많은 테러 때문에 사람이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는 것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저는 소위 전문가들이나, 프랑스인들이 마스크를 끼지 않는 이유가, 도움이 되지 않아서라고들 말 하지만, 사실 그 이면에 다른 의미가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
2. 프랑스인들은 마스크 착용 여부를, 단순히 문화-관습적 차이라고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저는 프랑스인들이, 마스크 착용 여부를 문화-관습적 차이로서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마스크 착용이라는 것이 그리 어렵고 힘들까요? 필요하면 쓰고, 필요하지 않으면 벗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프랑스가 이렇게 마스크 착용에 대해서 지루할 정도로 토론하고,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따지는 것 이면에, 표면적인 이유와는 다른 내면적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인에게 있어서 어쩌면, 마스크가 실제로 바이러스를 막는데 유용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쓰기 싫은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 마스크는 환자만 착용하는 것이라는 인식, 테러에 따른 터부감, 그리고 한국, 중국, 일본이 황사-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것을 보고 아시아인들 특유의 유난스러움의 발현이라고 생각을 해왔는데, 정작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니 마스크를 쓴다는 것 자체에 어떤 거부감이 생긴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마스크 착용 여부를 단지 실용적인 이유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화-관습적 차이로 인식하여 무의식적으로 착용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주 순수한 추측입니다. 만약 제 추측이 맞다면, 프랑스인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게 하려면, 실용적인 이유를 댈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줄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3. 5월 11일까지, 프랑스는 잘 버틸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서 저는 일단 "Oui" 라고 대답하겠습니다. Yes 입니다. 현재 프랑스의 확진자 수는 10만명을 넘었고, 사망자 수는 15000명 이상입니다. 안타깝지만 아마 당분간 수치가 더 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완치자 수는 28000명 이상입니다. 확진자 대비 완치자 수가 다른 나라 대비 비교적 높은 편입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프랑스인들은 이 통제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마 정부가 뭔가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가능한 거겠지만요. 이럴 때 보면 프랑스는 자본주의 국가라기 보다는 사회주의 국가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중에 기회될 때 이 부분을 좀 더 다뤄보려고 합니다.
이날 밤 이후로 찬바람이 거세지더니, 지금은 낮에 잠깐 나가는 것 빼고는 추워서 집에서만 지내고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테라스에서의 밤을 즐기고 나서인지라, 그나마 다행이지요. 요새는 최대한 낙관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어공부도 조금이라도 다시 하고, 사업 준비도 다시 하고, 한 끼 차려먹더라도 열심히 만들어서 차려먹고 있습니다. 아파트 중앙 정원에 폈던 꽃들이 시들시들하고, 일부는 꽃잎이 다 떨어졌네요.
언제고 꽃은 다시 피겠지요. 그리고 빼앗긴 일상도 어쨌든 5월 11일 이후에는 돌아오겠지요. 사람들의 마음에 평안이 들어서고, 다시 전처럼 마음놓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도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언젠가 돌아오겠지요. 그 전까지 얼마나 긴 시간을 버티고 또 버텨야 할 지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 그리고 내일, 그리고 모레, 하루 하루를 열심히 버텨 보렵니다. (프랑스야 잘 버티겠지요. 제가 큰일이 났으니 문제지^^;)
한국, 프랑스, 그리고 다른 전 세계에 계신 구독자분들 모두, 무사히 이 순간을 잘 버티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버티시길 소망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프랑스가 가진 한국의 이미지"라는 주제로 여러분을 찾아뵈려고 합니다. 여기 와서 보고 듣고 생각한 내용들을 간추리느라 시간이 좀 걸리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요? 여러분들이 궁금해실것 같아서 열심히 써보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궁금하신 것이 있다면, 댓글을 남겨주세요. 내용에 따라 다음 글을 쓸 때 참고하고자 합니다. 여하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내와 함께 프랑스에서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의 삶, 프랑스에서의 이야기를 앞으로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저와 제 아내에 대한 개인적일 수 있는 정보들은 밝히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