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섬콩 Oct 29. 2017

할로윈의 나라 아일랜드, 어둡고 따뜻했던 그들의 축제

한국에서는 미처 몰랐던 할로윈의 진짜 의미

"엄마, 빨리 나와봐! 또 시작됐어!"

친구들과 놀기 위해 집 밖으로 뛰어나간 딸내미가 호들갑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궁금해서 한 걸음에 나가보니, 옆집 창문에 해골과 호박 장식물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10월, 슬슬 할로윈 시즌이 시작되고 있었다.

옆집의 가족들이 직접 꾸민 할로윈 장식

할로윈 데이가 아직 한 달이나 남았을 때부터 옆집은 한 발 앞서 데코를 시작했다. 더블린에 온 지 석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인 작년 이맘때, 옆집을 시작으로 온 동네의 집 창문마다 꾸며지는 할로윈 장식을 보면서 참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비단 집뿐만 아니라 거리의 상점이나 큰 쇼핑몰, 그리고 백화점도 10월에는 내내 할로윈, 11월부터는 온통 성탄절로 채색되는 더블린의 풍경이 경이로웠다.

똑같은 모양의 창문마다 제각기 개성을 담아 꾸민 우리 동네의 모습
더블린 시내 상점들마다 진열된 다양한 할로윈 장식품

서울에 살 때는 할로윈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솔직히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우리 집 인근의 이태원에서 펼쳐지는 젊은이들의 파티가 매력적이기보다는 요란스럽게 느껴지는 나이에 접어들었고(게다가 호러물은 질색이라), 아이들의 영어학원에서 벌인다는 코스튬 파티도 부담스러웠다. 우리나라 명절도 아닌데 한 번만 입을 옷을 굳이 비싼 돈 주고 사야 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밸런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 빼빼로 데이처럼 챙길 것 많은 무슨 ‘날’에 상술이 더해진 모양새가 그저 못마땅스러웠다. 하지만 아일랜드에서는 마냥 외면할 수가 없었다. 할로윈이 다가올수록 동네 전체가 들썩이는데, 아이들까지 있는 우리가 문 닫고 나 몰라라 할 수만은 없는 데다가, 학교에서도 할로윈을 기념하는 이벤트와 1주일간의 방학기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로윈이 아일랜드에서 시작됐다고?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할로윈 데이와 관련된 이벤트가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주말 오후마다 보던 텔레비전 속 ‘찰리 브라운’의 에피소드가 할로윈에 대한 첫 경험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머릿속에도 ‘할로윈은 미국 문화’라는 인식이 자연스레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오리지널 할로윈은 아일랜드에서 시작되었다는 얘기를 전해줬다. 지금처럼 할로윈 데이가 지구 곳곳에서 즐기는 문화로 퍼져가고, 시끌벅적한 파티로 자리를 잡은 데에는 미국의 영향이 크긴 하지만, 어찌 됐든 그 기원은 아주 오래 전의 아일랜드라고 했다.

처음으로 알게 된 신선한 이야기 덕분에, 오기 전까지는 미처 몰랐던 아일랜드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서서히 커져갔다. 처음 할로윈이 시작된 이유는 무엇이고,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 역시도 궁금했지만,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매년 할로윈 데이를 만끽해야 하는 아이들에게도 자세한 이야기를 알려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시작은 고대 켈트족의 Samhain 축제

할로윈의 근원을 따라가 보면 2,000년 전부터 아일랜드와 영국, 프랑스에 살았던 고대 켈트족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년이 10개월로 이루어진 달력을 사용했던 켈트족에게 10월 31일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고, 다음날은 새해의 첫날이었다. 추수가 모두 끝난 이 때는 추운 겨울을 앞둔 시기여서 먹을 것이 부족한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에 떨거나 죽었다. 우리나라에도 눈물의 보릿고개가 있었듯이 아일랜드의 겨울 역시 추위와 배고픔이 몰려오는 공포의 계절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더블린에서 보낸 지난겨울을 떠올려보면 하루의 2/3가 밤인 데다가 비바람이 내내 몰아치는 어둡고 음습한 나날이었다.


일찍부터 해가 저문 어두컴컴한 10월 31일, 켈트족은 추수한 농작물을 차려놓고 Samhain 축제를 벌이며 죽은 이들의 영혼을 맞을 준비를 했다. 그 영혼 중에는 그들의 가족, 친척, 친구도 아마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새해 전날 밤에는 인간들이 살아있는 현실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 사이에 놓인 경계가 가장 얇아진다고 여겼다. 때문에 죽은 영혼들이 내세의 세계로 떠나기 전에 잠시 인간 세상에 들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착한 영혼뿐만 아니라, 악마와 마녀와 같은 악령들도 함께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날 밤, 켈트족의 제사장 역할을 하는 성직자 드루이드(Druids)는 크고 신성한 모닥불을 태우며 축제를 시작한다. 모닥불은 착한 영혼들의 갈 길을 밝혀주고 악령은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한 해동안 추수한 농작물의 일부와 동물을 이 불에 태우며 새해에 대한 기원을 함께 나누었는데, 이때 대부분 동물의 뼈와 가죽으로 만든 의상으로 자신들을 위장했다. 악령들이 자신들을 같은 악령으로 착각해 괴롭히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아마도 할로윈의 귀신 분장은 여기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켈트족의 토착신앙과 가톨릭 기념일의 만남

할로윈이라는 명칭은 아일랜드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면서 만들어졌다. 쉽게 이해하자면, 켈트족의 고대 축제와 그리스도교의 기념일이 합해진 것이 바로 할로윈이다.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 위해 선교사들이 찾아왔을 때, 켈트족은 이미 성직자 드루이드가 창시한 드루이드교를 따르고 있었다. 선교사들 입장에서는 죽음, 귀신 등이 등장하는 이들의 토착신앙이 이교도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가톨릭은 드루이드교를 악마와 연관된 종교로 낙인찍고 그리스도교를 정착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이때 교황이었던 그레고리우스 1세(서기 601년)는 파격적인 발언을 한다. "만일 사람들이 나무를 숭배한다면, 그 나무를 베지 말고 예수의 이름으로 축성한 후 계속 숭배하게 하라"는 칙령을 내린 것이다. 즉 그들의 토착신앙을 무조건 없애려고만 하지 말고 서서히 그리스도교의 교리로 변화되도록 노력하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 상징성이 남달랐던 켈트족의 Samhain 축제는 시간이 흘러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리스도교는 서기 약 9세기부터 11월 1일을 '모든 성인(Hallows)의 날'로 정하고 미사를 드려왔는데, Samhain을 이 미사에 자연스럽게 흡수시키고자 했다. 그 결과 이 기념일의 전날인 10월 31일에는 본래 켈트족이 즐기던 축제가 펼쳐지고, 다음날에는 '모든 성인의 날'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이 미사의 이름은 'All Hallows Mass'인데, 그 전날을 성탄 이브처럼 'All Hallows Eve'라고 불렀고 이것이 줄여져서 할로윈(Halloween)이라는 명칭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할로윈은 가톨릭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켈트족만의 뿌리 깊은 축제였기에, 아이리시들이 '원조'의 자부심을 가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죽음을 위로하는 슬픈 이민자들의 축제

 시간이 흐른 , 할로윈 축제가 미국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데에는 매우 슬픈 사연이 있다. 1840~1852 사이에 아일랜드에서는 대기근이 일어났는데, 이것은 아일랜드 인구의 25% 정도를 거나 외국으로 떠나게  엄청난 비극의 사건이었다. 당시 유럽 지역에는 감자 마름병이 돌아서 감자를 먹을  없게 되었다. 당시 아일랜드를 지배하던 영국은 감자 외에도 많은 농작물들을 영국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그나마 감자를 주식으로 삶을 연명하던 가난한 아일랜드인들은 감자마저 먹을  없게 되자,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유로 백만 명의 아일랜드인들은 남녀노소   없이 그저 살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많은 인구가 미국에 정착하면서 할로윈 축제도 자연스럽게 미국의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더블린의 리피강 인근에는 당시의 기근으로 고통받았던 이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들이 세워져 있다.


아이들에게 들려준 주황 호박 이야기

그렇다면 커다란 호박은 왜 할로윈의 상징이 되었을까?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지역에서는 원래 호박이 아니라 순무로 등불을 만드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즉 원래 할로윈의 상징은 순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미국으로 퍼지면서 순무보다 훨씬 구하기가 쉽고 가을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는 주황색 호박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호박등불이 상징하는 인물은 아일랜드 민담의 주인공인 구두쇠 잭 오 랜턴(Jack-O'-Lantern)이라고 전해진다. 나는 아이들에게 잭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 들려주었다.


“구두쇠였던 잭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어느 날 그는 길에서 악마에게 쫓기게 되었대. 악마를 피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잭은, 악마에게 사과나무에 올라가서 사과를 먹어보라고 얘기하고는 그 사이 악마가 내려오지 못하도록 나무에 십자가를 그린 거야. 악마는 십자가를 무서워했거든. 잭은 십자가가 무서워 나무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악마에게 자신이 죽더라도 지옥에 보내지 말아 달라는 약속을 받아낸 거지. 아마 죄를 많이 지어서 지옥에 갈까 봐 무서웠나 봐. 시간이 흘러 늙은 잭은 할로윈을 얼마 앞두고 죽게 되었는데, 잘못이 많아 천국에도 갈 수 없었고 악마와의 약속 때문에 지옥에도 갈 수 없었대. 깜깜한 어둠 속에서 갈 곳을 잃은 그는 악마에게 길이 너무 어둡다고 하소연을 한 거야. 그러자 악마는 옛일일 생각해서 잭에게 지옥 불덩이를 하나 휙 던져줬대. 잭은 그것을 얼른 호박에 담아서 들고 떠돌아다니게 된 거지.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할로윈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호박의 속을 파내고 얼굴 모양으로 카빙을 하는 풍습이 생겨난 거야.”



아이리시들이 들려준 할로윈에 대한 추억

할로윈에 얽힌 긴 히스토리를 알고 나니 단순히 가면을 쓰고 웃고 즐기는 가벼운 축제 이상의 깊은 의미가 와 닿았다. 외세 침략과 우여곡절이 많은 우리나라도 ‘한(恨)’이라고 하는 슬프고 억울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아일랜드 역시 아픔과 비극이 많은 나라였다. 오래전 역사이기는 하지만, 그 일련의 사건들을 품고 있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맞이하는 할로윈은 분명 그 느낌이 남다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친분이 있는 몇몇 이들에게 어릴 적 어떤 할로윈을 보냈는지 질문을 던져 보았다.


가끔씩 만나 차를 마시면서 나의 서툰 영어를 보듬어주는 60 초반의 헬렌이라는 분이 있는데(이곳에서는 기본적으로 나이를  묻지 않기 때문에 서로의 나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녀를 비롯한 비슷한 연령대의 친구 몇몇은 요즘의 할로윈 풍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상점마다 늘어선 장식품과 요란스러운 코스튬, 술에 취해 거리를 돌아다니는 젊은이들, 모두 미국에서 건너온 스타일일  자신이 아는 할로윈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할로윈은 겨울 동안 잠자고 있는 모든 것들이 따뜻한 봄이 오면 다시 비옥한 삶을 시작할  있기를 기원하는 'Samhain' 메시지가 중심을 이룬다.

여러 남매와 함께 자랐던 헬렌은 할로윈이 되면 가지고 있는 옷을 손질해서 입고 형제들과 동네의 집을 다니며 견과류나 과일을 얻어먹었는데, 당시에 초콜릿이나 사탕은 너무 비쌌기 때문에 구경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페기라는 할머니는 1시간이 넘도록 추운 동네를 걸어 다니며 먹을 것을 얻었던 일을 회상했다. 당시에는 대부분 가난했기 때문에 음식을 받는 일은 매우 중요했고, 가끔씩 돈을 주는 이들도 있어서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 할로윈 하면 주요 행사인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을 빼놓을 수 없다. 밤이 되면 귀신 복장을 한 아이들이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고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짓궂은 장난을 하겠다고 귀여운 협박을 하며 돌아다니는데, 이 퍼포머스의 기원 역시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11일 1일인 '모든 성도의 날'의 다음날을 '모든 영혼의 날'(All Souls's Day)로 정하여 죽은 가족이나 이웃을 추모하며 기도하고,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 위해 음식과 동전을 베푸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가난한 아이들이 문 앞으로 찾아와 기도문을 읽으면 작은 케이크나 동전을 주면서 자선을 베풀던 것이 '트릭 오어 트릿'의 모습으로 점차 변화된 것이다.

먹을 것이 풍족하고 언제든지 달콤한 간식들을 먹을 수 있는 요즘은 그저 재미로 즐길 수 있지만, 그 오래전, 정말 음식이 고프고 돈이 필요해서 추운 밤길을 걸어 다녔을 아이들을 떠올리니 짐짓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런가 하면 아이들을 키우는 내 또래의 아이리시 엄마들이 추억하는 할로윈은 조금 그 분위기가 달랐다. 세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에이브릴은 할로윈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기다리는 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어릴 적 그녀에게 할로윈은 다양한 게임을 즐기는 흥겨운 축제의 날이었다.

아일랜드에는 밤 브랙(Barm Brack)이라는 전통 빵이 있는데, 이 빵 안에는 반지나 돈 등이 들어있어서 자신의 빵에서 반지가 발견되는 사람은 그 해에 결혼을 할 수 있고, 돈이 나오는 경우에는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밖에도 콩이나 골무가 나오면 결혼을 못하고, 천조각이 나오면 가난해진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우리 가족도 작년 할로윈 시즌에 퀘이커 모임에서 이 빵을 대접받은 적이 있는데, 이때 열 살인 우리 아들의 빵에서 반지가 나와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

 또한 물 위에 사과를 띄워놓고 입으로 건져먹는 '밥 더 애플'(Bob the Apple)이라는 게임을 하는 것도 큰 재미였다고 했다. 그녀는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1~2주 전부터 장작들을 모으고 할로윈 밤에 각자의 의상을 입고 불꽃놀이를 하던 추억들을 즐겁게 떠올렸다. 물론 할로윈이 상업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안타깝지만, 중고물품 상점에서 얼마든지 저렴한 의상을 구입할 수 있고, 아이들과 직접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하는 데코 작업은 또 다른 즐거움이기에 조금만 신경 쓰면 저렴하고 유익하게 할로윈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만화 <찰리 브라운>에서 할로윈 데이에 파티를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 오른쪽 사과는 밥더애플 게임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밤 브랙빵은 집에서 직접 만들기도 하지만 요즘은 마트에서도 쉽게 살 수 있다. 반지가 포함되었다는 글귀가 포인트!

위로, 나눔, 재미를 아우르는 할로윈 콘텐츠

에이브릴의 얘기를 듣고 보니, 조금만 지혜를 보태면 얼마든지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콘텐츠가 가득한 날이 바로 할로윈이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할로윈이 다가오기 일주일 전, 아이들 학교에서는 메일이 날아왔다. 할로윈이 있는 1주일은 매년 홀리데이로 보내는데, 그 전의 1주일 동안에는 북페어를 연다는 내용이었다. 학부모들의 주도 하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다채로운 동화책들을 전시하여 판매하고, 그 수익금은 학교생활에 필요한 학생들의 물품을 사는데 보태거나 교육프로그램에 활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페어가 끝난 다음날에는 각자가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의 캐릭터로 분장을 하고 등교하는 ‘Character dress up’ 이벤트가 있다. 아이들 모두 이날을 고대하며 어떤 캐릭터로 단장할지 스스로 결정하고 한껏 멋을 낸다. 책 읽기와 연계한 이 행사는 아이들이 책도 읽고, 할로윈을 더 흥미롭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저마다의 캐릭터로 멋을 낸 학교의 아이들. 선생님도 빠질 수 없다.

그런가 하면, 가끔 집으로 배달되는 지역신문에는 할로윈을 앞두고 자선기금을 모은다는 뉴스가 실리기도 한다. ‘트릭 오어 트릿’을 통해 자금이나 물품을 기증하면 아동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인큐베이터나 기타 장비들을 구입하는데 보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가족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위로를 전하고, 먹을 것이 부족한 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아픈 환자들과 이웃들을 되돌아보는 것이야 말로 할로윈의 본래 취지를 살리는 진정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미국이나 우리나라에도 이런 행사가 더 풍성해진다면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역 신문에 실린 자선모금을 위한 기사

띵동!

벨 소리에 나가보니 무리를 지은 동네 아이들이 우리 집 딸아이를 찾는다. 같이 놀자는 것이다. 가끔 있는 일이지만, 현관문을 열 때마다 이런 상황이 새삼 신기하다. 빌라나 아파트에서 주로 살았던 한국에서는 몰려다니며 친구를 불러내는 일이 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때마침 찾아온 아이들에게 나는 이번 할로윈 데이에 우리 동네에서도 무슨 특별한 이벤트가 있느냐고 물었다. 작년 할로윈에는 우리 가족이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느라 미처 동네의 분위기를 경험하지 못했었다.

“밤이 되면 모두 분장을 하고 동그랗게 모여서 집집마다 다니며 초인종을 누르고... ”

신이 난 아이들은 저마다 서로 자기가 얘기하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 집 애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을까?”

“물론이죠!”

그럼 됐다. 이번 할로윈을 계기로 좀처럼 밖에 나가지 않으려는 수줍음 많은 아들 녀석이 또래의 동네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나 역시도 아직은 조금 서먹한 이웃들과 정겨운 추억을 하나 쌓을 수 있다면 아일랜드에서 이방인으로 보내는 첫 할로윈 치고는 나름 따뜻하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꼬마 유령들을 맞이하기 위한 호박등불과 초콜릿부터 어서 준비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