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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콩 May 17. 2020

내가 동양인이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무서워졌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어떨까.

참 신기한 일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불문하고 아일랜드는 어느 때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몰아치는 것이 맞다. 하루에 몇 번이든 맑았다 흐렸다 변덕을 부리고, 일주일 내내 회색 먹구름이 하늘을 장악하고 있어도 별다른 불평을 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셧다운이 시작되고 학교도 문을 닫고 집에 갇히게 된 이후로 주야장천 기가 막히게 좋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때마침 해가 길어지고 잎이 푸르른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라 안 그래도 마음이 설레는데, 아침마다 창밖으로 비치는 햇살이 야속할 정도로 해맑다.

이곳에서조차 이런 사진을 주고받을 정도로 맑디 맑은 요즘 날씨

이러다 보니 하루 내내 뛰어놀아야 성이 풀리는 둘째 딸아이는 매일 나가자고 성화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동네 아이들과 잔디밭에 모여 자전거를 타고 장애물 넘기를 신나게 했었는데, 갑자기 그곳에 경찰차가 찾아왔단다. 재미난 곳이라고 어느새 소문이 나서 옆동네 아이들까지 모여 북적대다 보니 누군가 신고를 했는지, 그저 순찰을 돌던 중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경찰이 주의를 주고 간 이후로 딸아이의 친구 몇몇은 바깥출입을 삼가게 됐고, 덩달아 아이도 자전거를 끌고 나가지 않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특히 요즘은 골키퍼 연습에 한창인 딸아이는 며칠 집에 잠잠히 있다가 더 이상은 견디기가 힘들었는지 나가서 같이 축구를 해달라고 줄기차게 졸라댔다. 여전히 날씨가 너무도 좋아서 오늘은 나도  아들 녀석까지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 두 녀석이 잔디밭에서 신나게 축구를 하는 동안 우리 동네에 단 하나뿐인 인근의 작은 식료품점에서 필요한 몇 가지를 사러 나섰다.


평소에 그곳에 갈 때는 마스크에 장갑을 끼고 갔었다. 그런데 한두 명 정도밖에 사람이 없을 때가 많고, 오히려 그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이들이 종종 있어서 오늘은 그냥 잠깐 한두 가지만 얼른 사 와야겠다는 생각에 마스크도 장갑도 없이 편하게 들어섰다.

평소보다 사람이 조금 많은가 싶더니, 이내 점점 손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계산을 하려고 미리 줄을 선 사람들 뒤로 따라가는데 전보다 줄이 길어져서 계속 걷다 보니 조금 좁은 통로를 지나야 했다. 그때 갑자기 앞에 서 있던 한 백인 여성이 내게 조금 큰 소리로 다급하게 소리쳤다.

너무 오랜만에 영어를 들어서인지, 아니면 다소 공격적인 그녀의 말투에 놀라서인지 나는 ”No!”라는 첫마디 말고는 제대로 들리지 않아 그녀를 쳐다보며 ”Pardon?”하고 되물었다.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는 그녀는 여기는 통로가 좁으니 저쪽 길로 돌아서 줄을 서라며 행여나 내가 자신에게 다가갈까 봐 다급하게 손가락으로 다른 길을 반복해서 가리키고 있었다. 뒤늦게 그녀의 말을 이해한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내 실수가 부끄럽기도 해서 일단 알겠다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막상 돌아서고 나니 그제야 불쾌감과 수치심이 확 밀려왔다.


좁은 상점 안에서 2미터 간격을 두기 위해 서로 떨어져야 하는 건 맞다. 그리고 줄의 끝을 찾느라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간 것은 분명 내 잘못이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큰 소리로 손가락질을 했어야 했을까? 더군다나 첫마디가 'Sorry’나 'Excuse me’가 아니라 'No’였다는 것에 매우 심기가 불편했다. 줄의 끝을 찾아 걸어가는 짧은 몇 초 동안 마음이 너무 복잡해진 나는 나보다 몇 사람 앞선 줄에 서 있는 그녀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했다.


’나한테 왜 그렇게 예의 없게 소리를 질렀냐고 다가가서 따져야 할까, 바로 사과하지 않고 계속 나한테 쏘아대서 옥신각신 싸움이라도 나면 어쩌지, 영어로 싸울 자신은 없는데.....’


벌게진 얼굴로 고민하는 사이 그녀는 이미 계산을 하고 있었고, 좀 전에 내게 했던 것과는 달리 점원과 무슨무슨 얘기를 주고받으며 하하호호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속이 더 부글부글 끓었지만 아직 계산을 하려면 나는 더 기다려야 했다. 오늘따라 손님이 많아서 예민해진 사람들 틈에서 더 민폐를 끼치게 될까 봐 안에서는 그저 잠잠히 참고만 있다가 얼마 후 급히 계산을 마치고 나와보니 이미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따라 손님이 늘어난 식료품점 밖으로는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줄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바보, 결국 그녀를 발견했다고 해도 난 이 사람들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했을 거야.’


스스로를 한탄하며 속상한 마음으로 돌아섰다. 잔디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과 한 시간 가까이 축구를 하며 뒹굴어도 기분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잘못했던 부분이 있다고 해도 분명 그녀의 행동은 예의가 없었고, 마치 가까이 오면 병이라도 옮을까 봐 다급히 나를 밀어낸 이유는 내가 동양인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더블린에서 3년 넘게 지내는 동안 나는 한 번도 이런 일을 직접 당한 적이 없었고, 코로나 이후로 큰 마트에 갔을 때는 오히려 내가 경계하면 경계했지, 마스크도 끼지 않은 이곳 사람들은 별 의식이 없어 보여서 갸우뚱할 때가 많았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남편에게 모든 얘기를 쏟아냈다. 그리고 내가 잘못한 건 맞지만, 그녀의 행동도 무례하지 않았냐고. 물론 내가 동양인이라서 받은 대우라고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런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고 털어놓았다. 내 얘기에 충분히 공감해준 남편은 요즘 들어서 자신도 가끔 밖에 나가면 전보다 더 예민하게 비슷한 상황을 느꼈다고 했다.

좁은 보도블록을 걷다 보면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이와 마주치는 일이 종종 있는데 예전에는 몇 미터 앞에서 비켜주며 서로 "sorry”라고 말하곤 했는데, 요즘은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저 멀리서부터 크게 돌아서 옆길로 가는 이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나 싶어서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참 관찰해봤는데, 동양인이 아닌 사람들끼리는 확실히 자신에게만큼 과하게 떨어져서 돌아가지 않더란다. 나 역시도 요즘 비슷한 경험이 종종 있었는데 설마 그런 이유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며칠 전 저녁에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기사를 보다가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쓴 글을 읽었는데, 글 말미에 링크된 아일랜드의 젊은 남자애들이 한국 여성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욕하며 공격하는 동영상을 보고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터였다. 이곳에서 적어도 내가 아는 지인들은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없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어지럽게 한 이후로 우려했던 일이 내 주변에서도 발생하고 있었다.

아직 이곳에서 인종차별과 관련된 직접적인 사건이나 기사를 접하지는 못했지만, 영국과 미국에서의 인종차별 문제는 최근 더 심하게 대두되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일상이 멈추고 있기에, 그것으로 인해 받는 경제적인 타격을 비롯한 여러 불편함에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될수록 사람들의 불만은 더욱 커질 것이고, 결국 이렇게 된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처음 이 병이 발병되었던 중국으로 화살을 돌리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이들의 생각에 절대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심리가 발전하여 눈 앞에 보이는 동양인들에게 화풀이를 하듯 무례한 언행을 일삼는 일이 발생하는 현실이 무척 걱정스러워졌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일부 유럽인들이 느끼기에 동양인은 한국에서 왔든, 일본인이든 중국인이든 그저 다 비슷한 사람들처럼 보이고 대표적으로 ‘Chinese'라고 불린다. 더블린에서 지내고 다른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그런 일들을 여실히 피부로 느껴왔다.


얼마 전 지인과 넷플릭스에 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는데, 아이리시인 그녀는 <킹덤>을 일본 드라마라고 알고 있었다. 친하지는 않지만 가끔 길을 오가며 인사를 주고받는 동네 엄마와 잠깐 얘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올해 안에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더니 "북한이야? 남한이야?"라고 물어서 당황했던 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딸아이의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올 때마다 김밥을 말아주곤 했는데, 아무리 '김밥'이라고 이름을 정정해줘도 아이들은 '스시'라고 말하는 것에 더 익숙했다. 굳이 한국의 김밥과 일본의 스시를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페스트 푸드점이나 식당에서 점원에게 고맙다는 표현으로 “셰셰”라는 말을 듣는 일은 다반사다. 물론 아주 세세하게 아시아 속 여러 나라의 차이를 알려고 노력하고 한국만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동양에 대해 무지하거나 아니면 이것저것 섞여 뭉뚱그려진 어렴풋한 이미지로 인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동안은 아시안을 무조건 중국인이라 판단하고 대하는 이들을 대부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때가 많았지만, 가끔은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난 중국인 아니고 한국인이거든.”하고 쏘아붙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아시안에게 함부로 대하는 이유가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것이 명백할 때는 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정정하는데 그치는 것은 “그러니까 나한테 화풀이 말아”하며 화살을 중국인에게 돌리는 또 다른 인종차별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문제는 국적이 어떻든 아시안을 하나로 싸잡아서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이들의 저급한 의식과 태도이기 때문이다.


최근 유튜브를 항해하다가 '림킴 Lim KIM'이라는 한국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몇 년 전 '김예림'이라는 익숙한 이름으로 주로 달콤한 발라드와 나른한 보사노바 풍의 노래를 불렀던 그녀는 동일인이라는 것을 깨닫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적으로 달라진 모습과 창법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부르는 'Yellow'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사운드, 창법, 소품, 배경, 의상, 화장 등 모든 것이 생경하면서도 익숙하다. 도무지 일본, 중국, 인도, 한국 그 어느 나라의 스타일이라고도 정의 내릴 수 없는 동양의 여러 이미지가 뒤범벅되어 기이하면서도 묘한 느낌을 준다. 나와 같은 한국인이나, 다른 아시안들이 접하더라도 아마 비슷한 생경함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다를 수 있다. 그들 중  우리가 느끼는 미세한 차이와 이상함을 눈치 채지 못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오히려 어쩌면 ‘그래 저게 동양의 이미지고 분위기지'라고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림킴의 ’Yellow’는 바로 그런 서양인들의 관점과 시선을 꼬집는 듯 보였다. 애초에 그녀의 목적은 한국적인 것, 우리의 것을 서양인들에게 선보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너희들이 동양인을 바라보던 추상적이고 왜곡된 관점이 이것이라고 얘기하는 듯했다.

 ‘We Yellow! 그래 나 동양인이야, 아시안이라고!’ 외치는 반복적인 가사는 마치 ’당신들이 우리에 대해 얼마나 뭘 알아?’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한 발 더 나아가 ‘당신들이 알고 있고 상상하는 아시안이 이런 거 아냐?’ 하며 비웃으며 그들이 동양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규정짓든, 나의 정체성은 변함이 없고 나의 위치와 자리는 내가 정하겠다는 강한 메시지가 매우 통쾌하기까지 하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나의 감상과 해석이다.

https://youtu.be/o5S3sPpkd8w

대중적이진 않을 수 있지만 Lim Kim은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음악을 통해 새로운 메시지와 의식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있다.


서양인들이 동양인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무턱대고 잘못이라 할 수는 없다. 나 역시도 백인은 그저 다 미국인이라고 여겼던 무지한 어린 시절이 있었고, 유럽에 와서 지내면서 얼마나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만일 내 앞에 다양한 국적의 유럽인들을 뒤섞어놓고 그들을 구분하고 그들의 문화와 특색에 대해 설명하라면 나 역시도 자신이 없다.

관심과 노력이 부족해서 모르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얕은 편견과 선입관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것. 혹은 저 밑바닥 아래에 자리 잡은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으로 아시안을 바라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평소에는 잘 감추고 있던 이러한 의식들은 위기의 상황이나 예민한 때에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좀 더 무난히 넘겼을 작은 사건이 오늘따라 더 무겁고 두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그 밑바닥 안의 증오와 차별의 찰랑거림을 살짝 엿본 것 같아서다.

지금은 5km 내로만 이동할 수 있고 아직은 위험하다는 생각에 대중교통도 이용하지 않고 있지만, 조금씩 셧다운이 풀리고 사람들이 오고 가며 조심스레 타인과 마주치는 일이 늘어나게 된다면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행여 나 같은 동양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따갑지는 않을는지, 혹은 누가 뭐라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나 스스로 위축되지는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나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아이리시 할머니 헬렌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마치 엄마에게 이르듯 이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네가 그런 일을 당했다니 정말 속상해. 아무도 상점 안에서 너를 위해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니? 내가 대신 사과할게. 어디에든 예의 없는 사람들은 있어. 어제 우리 동네의 마트에서도 물건 때문에 두 사람이 싸우기도 했다니까. 네가 동양인이어서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말아 줘.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매너가 없었기 때문일 거야.”


애써 나를 위로해주는 헬렌의 말처럼 내가 겪은 일이 부디 별 것 아닌 작은 해프닝이었으면 좋겠다. 매일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서로를 가까이하고 신뢰할 수 없는, 충분히 불행한 지금의 세상에 타인을 향한 증오와 인종차별까지 보태는 것은 너무 아프고 잔혹한 일이다.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그 이후의 세상은 분명 그 이전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펜더믹 속에서도 공기는 정화되고 자연은 맑고 풍성해지고 있듯이 우리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누군가의 곁을 자연스레 스칠 수 있게 됐을 때는 함께 이 불행을 극복해낸 서로를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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