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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 Nov 11. 2022

조직 이동 예정입니다.

대기업 프로 용병기


당신은 저희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or 있습니다.






연말은 조직 발표와 인사의 시기입니다. 어느 기업에서나 이때쯤 내년도 사업에 필요한 조직을 새로 그려보고 기존 조직의 비효율을 어떻게 조정할지 검토합니다. 그리고 조직변동에 따라 자연스럽게 인사 이동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오랜 대기업에서의 재직기간 동안 항상 이 시기에는 무성한 소문 사이에서 일을 해나가기가 힘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조직에서 멘탈을 부여잡고 일하기도 힘들지만, 저의 카운터 파트인 동료들도 언제 떠날지 모르는 조직의 목표를 위해 가열차게 일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대신 평소의 과업에 더해 하나더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무성한 소문의 흐름 속에서 진짜 정보를 찾고, 앞으로 세팅될 곳의 힌트를 얻는 겁니다. 사리 분별을 우선순위로 하며 하던 일을 유지 하기. 프로 직장인이라면 이 시기에 해야할 일 입니다.



용병으로 새로 이직한 이 조직에서는 이제 막 10개월차를 코앞에 두고 있는데, 조직 이동 시기에 맞물려 저는 조금은 심란하고 불안한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몸담고 있는 사업부, 팀 조직이 모두 개편될 예정이라는 정보를 들었거든요. 조직이 없어지고 바뀌니 현재의 임원들도 모두 변동될 예정이고, 몸 담았던 팀도 모두 사라질 거라고 합니다. 즉 어디론가 새로운 곳으로 가야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과연 나와 내 동료는 어느 곳에 가서 일하게 될 것인가. 이런 미지의 상태에서 그냥 오늘하루 최선을 다하며 해오던 일을 계속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고민되는 순간입니다.


문득 예전에 봤던 대작인 영화 타이나닉이 생각납니다. 타이나닉호는 침몰되어 결국 물 밑으로 사라질 운명이었죠. 그런데 그 침몰되는 와중에도 바이올린 등 악기를 연주하고 계시는 연주그룹이 있었습니다. 웃으면서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까지 찬송가 인가를 연주했던것 같습니다. 소란스러운 함 내에서, 침몰할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고급스러운 삼중주 연주를 해주시던 그 그룹을 보며 생사의 기로에 선 분위기로 심각했던 관객들이 폭소를 터뜨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마치 제가 그 그룹의 연주자가 된것 같습니다. 곧 사라질 조직에서 명랑한 마음을 장착하고 마지막까지 제 과업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한명의 용병입니다.



그런데 이런 혼란한 시기를 겪으면서 아주  교훈이 하나 있었습니다. 대기업 평생직장인과 저와같은 대기업 프로 용병들의 인식에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조직 이동시 고려하는 '우선 순위' 에서의  차이입니다.



기존부터 일해오셨던 공채 분들의 조직이동 관련 고민은


'내가 갈 자리가 있는가'


가 가장 많았습니다. 팀장이면 팀장, 직원이면 직원 모두 내가 갈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고 혹시라도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 조직의 상사가 함께 일하기에 어려운 분인지 아닌지가 가장 큰 서칭 포인트 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용병이 되기전 이전 오래 몸담았던 회사에서 그 부분이 조직이동의 가장 큰 고려 사항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어진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제가 이렇게 다양한 조직에서 일하며 다양한 업무 경력을 가지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공채와 달리 프로 용병들의 가장 큰 고려 사항은


 '추구하는 경력에 맞는 일을 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가'


입니다. 변동되는 조직에서 내가 추구하는 경력을 쌓지 못하거나 방향성이 희석되는 곳이라면 향후 몸값에 지대한 영향을 주므로 계속 잔류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심지어 현재의 조직에서 변동없이 일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추구하는 경력에 맞는 일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 퇴사를 진지하게 고려하시는 분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 출처로 정보를 들어보니 다행히 저는 어디론가 나쁘지 않은 곳으로 이동 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한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이동하는 곳이 컨트롤 타워인것 같고 좋은 일, 멋진 일을 하는 곳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나의 경력 방향에 맞는 경험을 줄 수 있는 곳인가 싶어서요. 저는 유통, 데이터 쪽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의 경력을 심화시켜 줄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 그곳이 어떤 곳이든 그저 저의 경력을 소비하는 포지션입니다.



경력이 손상되는 것은 프로 용병에게는 철저히 나쁜 선택입니다. 현재는 동일한 돈을 준다고 하더라도 1년뒤, 2년뒤에 연봉을 상승시켜주지 못하는 곳이므로 나쁜 포지션입니다.



프로 용병의 마인드로 일하니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공채의 마인드로 근무했을때는 회사에서만 나를 선택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회사  아니라 나도 매년 회사와 팀을 계속 선택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상사나 동료들과 특별한 문제가 없고, 일이 할만 하다고 해도 고민은 쉬지않고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요.



당신은 저희와 함께   ............  

없습니다 or 있습니다  



어느 티비채널의 경연 프로에서 들었던 이 멘트는

직장인 관점으로는 참 무서운 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프로 용병은 냉정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은 회사로부터 들을 수 있는 이야기 이기도 하지만

내가 매년 회사에 말해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프로 용병은 참 주도적인 직장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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