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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험가 Oct 24. 2021

강남에서 강북가려면 나룻배를

강남 일대 빌딩과 점포가 비어간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점포가 비는 곳이 한 둘이 아닐 텐데 유독 강남은 뉴스가 된다.


강남대로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 과거 IMF와 글로벌 금융 위기 시절에도 강남역 인근은 복작였다.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강남대로는 지하철 노선들과 경기도 곳곳을 이어주는 버스 노선들 덕분에 유동인구가 많다. 물론 회사도 많아 상주하는 직장인들이 많기도 하다.


이들 유동인구와 상주인구를 겨냥한 상권도 계속 활기를 띠었다. 트렌드에 따라 간판은 계속 바뀌었지만 강남대로 주변 건물 1층에는 패션이나 화장품 매장이, 2층에는 식음료 매장이, 3층 이상에는 각종 병원이나 학원이 들어서기를 반복했다. 


언제나 호황일 듯한 강남에 공실이 생긴 것이 뉴스가 될 만큼 강남은 상징적인 곳이다. 


2021년 7월 서울 강남대로의한 빌딩. 1층과 2층이 공실이다.


계획도시 강남은


강남대로는 총연장 6.9km의 왕복 10차로 도로이다. 한남대교에서 신사역, 논현역, 신논현역, 강남역, 그리고 양재역을 지나 염곡사거리까지 연결된다. 이름에 ‘강남’이 붙었지만 도로의 절반 이상은 서초구 지역을 지난다. 대략 강남대로 동쪽이 강남구이고 서쪽이 서초구다. 양재역부터 염곡사거리까지는 양쪽 모두 서초구에 속한다.


강남대로는 강남구와 서초구를 나누는 경계이지만 예전에도 행정구역을 나누는 경계였다. 1963년에 한강 남쪽 지역이 서울에 편입되었을 때 지금의 강남대로 동쪽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에, 서쪽은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에 속했었다. 서울로 편입되었을 당시 강남 지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1962년 한남 나루의 모습. 신사동과 한남동을 연결했다. 강 건너 신사동과 잠원동의 미루나무가 보인다.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1962년의 한남 나루. 강 건너 멀리 삼성산이 보인다.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한남동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모래사장에 도착해. 모랫길을 조금 걸으면 시골길이 나와. 지금의 신사역 인근일 거야. 거기서 한 시간 정도 걸으면 말죽거리가 보이지.”


오래전에 들은 친구 아버지의 이야기다. 그분은 1960년대에 말죽거리 인근에서 채소를 키웠다. 당시 강남 지역은 거의 농촌이었는데 주로 서울에 채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한남대교가 들어서기 전 한남동과 신사동을 잇는 나루에는 채소를 실은 리어카와 나룻배로 붐볐다고. 


“그때 서울에서 차를 타고 말죽거리에 오려면 한강대교를 건너 흑석동과 동작동 국립묘지를 지나 험한 흙길을 달려야 했지. 서울 버스는 국립묘지가 종점이었어. 동작동에서 말죽거리를 가는 버스가 있긴 했는데 (편성이) 한 대뿐이라 기다리기보다는 그냥 걷거나 웃돈 주고 택시를 타곤 했어.”


친구 아버지의 회고다. 서울로 편입되었어도 도심의 배후 역할도 하지 못한 강남이 오늘날 강남이 된 계기가 있었다. 제3한강교(한남대교)와 경부고속도로 건설 덕분이다.


한남대교 건설은 외졌던 강남 지역을 서울 도심과 빠르게 연결해 주는 역할을 했다. 1966년 한남대교가 착공되었을 때만 해도 강북과 강남을 잇는 다리는 한강대교와 서울 서쪽의 양화대교, 그리고 서울 동쪽 끝 광진교만 있었다. 광진교가 지나던 천호동 인근이 강남보다 먼저 번화하게 된 이유다.


1969년에 완공된 제3한강교. 지금의 한남대교. 강 건너로 유엔빌리지와 멀리 타워호텔이 보인다. (출처: designers;arty 페이스북)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강남 지역의 부동산 지형을 바꾼다. 고속도로와 배후 시설 용지를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토지구획정리 사업을 통해 농지와 산에 선이 그어지면 그곳은 도로가 되거나 택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남대로와 연결되는 강남대로 부지도 확보된다. 


경부고속도로 서울에서 수원 구간이 1968년 12월에, 한남대교는 1969년 12월에 완공된다. 두 대형공사의 완성으로 강남 지역이 발전하게 된 계기도 함께 완성된다. 


1983년 즈음의 강남대로. 우성아파트 네거리에서 강남역 방향. 오른쪽 멀리 국기원이 보인다. (출처: designersparty 페이스북)


한편 한남동과 신사동이 한남대교로 연결되자 한남 나루의 뱃사공들은 일자리를 잃는다. 경향신문 1972년 12월 11일의 <서울의 새길 따라 달려본 今昔風物(금석풍물)’>기사에서 한강 다리 건설로 바뀌게 된 풍경을 묘사하며 한강의 나루터와 뱃사공들이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진 것을 아쉬워한다.


한남대교처럼 현재 한강 다리가 있는 곳은 거의 나루터였고, 나룻배는 강남과 강북을 이어주는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이었다. 하지만 서울이 커지며 한강의 다른 나루터들에도 교량이 세워졌다. 교량이 세워지자 나루터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현재 나루터의 흔적은 돌에 새긴 표지석으로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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