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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험가 Sep 28. 2022

강남에 있었던 서울시립공동묘지

대모산과 구룡산 그리고 개포동 일대에 자리했었던 공동묘지

한강 남쪽 강남에 추석이면 성묘객이 찾아왔다. 그곳이 고향인 이들도 있었겠지만 예전에는 강남 곳곳에 있었던 공동묘지를 찾는 성묘객도 많았다. 많이들 모르는 사실이지만 서울 강남에 서울시에서 운영하던 공동묘지가 있었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의 교가는 '구룡산 솟아오른'으로 시작한다. 구룡산은 대모산과 함께 강남구 개포동 일대에 자리한 산이다. 1970년대 중반 초등학생이었던 기자는 어떤 소문을 들었다. 구룡산 어딘가에 공동묘지가 있었고 그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다. 으스스했지만 궁금했다.


당시 역삼동 아파트 단지에 살던 내게 개포동은 너무나 멀었다. 개발이 안 된 도곡동을 지나 정비가 안 된 양재천을 건너야 도착하는 개포동은 머나먼 시골이었다. 어린이가 탐험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 너머 어딘가에 있다는 공동묘지의 소문은 차츰 기억에서 사라졌다.

               

1973년 영동지구. 개발되기 전 영동지구, 즉 강남은 농촌이었다. 그래서 1970년대 개발이 본격화 되어도 농촌의 모습을 갖고 있었다. ⓒ 서울역사아카이브


그런데 얼마 전에 접한 과거 신문기사가 어릴 적 기억을 소환했다. 1962년 9월 14일 <조선일보>에 실린 '대혼잡 이룬 나루터'라는 기사였다. 추석을 앞둔 한강 서빙고 나루터에 성묘객 5천여 명이 몰려 크게 혼잡했다는 내용이다. 


서빙고 나루터에 성묘객이 몰린 이유는 한남 나루터가 침몰 사고의 여파로 폐쇄되었기 때문이고, 5천여 명의 인파는 "광주군 언주면 반포리에 있는 시립 언주 공동묘지로 가는 성묘객들"이라고 기사는 전한다. 광주군 언주면은 지금의 강남구 일대를, 반포리는 지금의 개포동 일대를 말한다. 

            

1962년 9월 14일 조선일보. 한남 나루터가 폐쇄되어 서빙고 나루터로 성묘객들이 몰려 혼잡했다는 기사.ⓒ 조선일보


한남대교는 계획에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강북에서 육로를 통해 강남으로 가려면 한강대교를 이용해야 했다. 다리를 건너도 광주군 언주면의 공동묘지는 흑석동과 동작동을 거쳐 멀리 돌아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그러니 도심에서 가까운 한남동이나 서빙고에서 배를 타고 잠원동으로 건너가서 말죽거리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 훨씬 가깝고 편했을 것이다.


한편, 위 기사는 과거 개포동 일대에 서울시에서 운영하던 공동묘지가 있었다고 알려준다. 우연히 보게 된 과거 기사가 옛 기억 속 소문을 떠올리게 했고 호기심도 자극해 언주 시립 공동묘지 관련 자료들을 계속 찾아보게 되었다. 


미아리에서 반포리로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에 공동묘지가 설치된 기록은 1939년 3월 18일 <조선일보> 기사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경성부는 서울의 공동묘지들이 포화 상태라 시흥군 동면(지금의 신림동 일대)과 광주군 언주면에 각 10만 평의 땅을 구매해 공동묘지를 신설한다. 이때 언주 공동묘지는 경성부립(京城府立)이 되었고 해방 후 서울시가 행정 권한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거의 20년이 흐른 후 언주 공동묘지가 다시 뉴스에 등장한다. 1957년 9월 여러 신문이 미아리 공동묘지를 옮겨야 한다는 취지의 기사들을 내보내는데 미관과 공중위생을, 미아리에 도시계획이 필요함을 이유로 내세운다. 주거지가 부족해 확장이 필요한 서울 부도심에 공동묘지는 방해물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기사들이었다. 


결국 서울시는 미아리 공동묘지를 광주군 언주면으로 옮기기로 한다. 1958년 연말 즈음의 기사들을 보면 미아리 공동묘지의 연고자가 있는 분묘 6천여 기와 무연고 분묘 약 1만 3천여 기를 언주 공동묘지로 이장했다고 전한다. 신문기사들은 언주 공동묘지를 '서울시 지정 공동묘지'라거나 '서울시립'으로 표현한다.


한편, 1963년 1월 1일부로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은 서울시에 편입된다. 서울이 된 언주면은 성동구청 관할이었고, 구청에서는 이 지역에 언주출장소를 개설한다.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자 언주출장소는 1973년에 영동출장소로 개편되었고 1975년에는 강남구로 승격한다.


1960년대 들어 언주 공동묘지 관련 기사는 설날과 추석 등 명절 즈음에 주로 볼 수 있다. 성묘객을 위해 임시버스를 언주 공동묘지까지 배치했다는 정보성 기사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1960년대 말부터 서울의 공동묘지에 변화가 생긴다. 공동묘지가 꽉 찬 것이다. 특히 망우리 공동묘지는 더는 매장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언주 등 시립묘지들은 월평균 5백 기의 묘소가 늘어나는 형편이라는 기사를 볼 수 있다.


1970년이 되자 서울시는 강남에 묘지를 더는 허용하지 않고 기존에 있는 시립 공동묘지들도 서울 외곽으로 이전할 계획을 밝힌다. 당시 기사들을 종합하면 서울시는 강남 개발 계획에 유리하도록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한다. 토지 이용을 원활히 하고 묘지 관리를 일원화 하는 목적도 있었다.


이에 따라 한강 이남의 8개 공동묘지의 분묘들은 1970년 6월부터 이장을 해야 했다. 8곳 중에 언주, 신사, 학동 등 3개의 공동묘지가 지금의 강남구에 있었다. 언주 공동묘지는 미아리에서 이장한 지 10년이 조금 지났는데 또 이장하게 되었다. 


강남에서 공동묘지 찾기


강남구와 개포동의 역사를 검색하면 공동묘지와 관련한 언급이 없고, 서울시 자료를 뒤져봐도 과거에 시가 운영했었던 지금은 폐쇄한 공동묘지의 자료를 찾을 길이 없다. 다만 몇몇 블로거들이 글로 남긴 오래 전 기억의 잔상만 확인할 수 있다. 

                

1972년 개포동 일대 항공사진 공동묘지를 개장하고 덮지 않은 구덩이들이 보인다. 현재의 개포공원 인근이다.ⓒ 국토지리정보원

            

1977년과 1982년의 개포동 일대 항공사진 위 사진에 나온 공동묘지 자리가 수풀로 덮였다. 현재의 개포공원 인근이다.ⓒ 국토지리정보원

  

그러다 항공사진에서 과거 흔적을 찾았다. 1972년에 촬영한 개포동 일대 항공사진에서 공동묘지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서울시가 분묘 개장과 이장을 명령하고 2년 정도 지난 후의 모습이었다. 평지에 농지가 있었다면 구릉에는 묘지들이 있었는데 마치 분화구처럼 보였다. 분묘를 개장하고 이장한 후에 덮지 않은 채로 놔둔 모양이었다. 


위치 확인은 <중앙일보> 1970년 6월 20일 기사에 실린 언주 공동묘지 주소를 토대로 했다. 이 기사에 "성동구 개포동"으로 시작하는 언주 공동묘지의 29개 지번이 나와 있었는데 그 주소들의 현재 지번을 확인해서 지도에 대입해 보았다. 이 결과로만 보면 과거 대모산과 구룡산을 포함한 개포동 일대에는 공동묘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특히 두 산과 인접한, 나중에 양재대로와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곳에서 분묘들을 파낸 흔적이 많이 보였다. 대모산과 공중보도로 연결되는 한 공원은 구릉 전체에 구덩이가 있었다. 공원과 이웃한 아파트 단지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50년 전 항공사진에 그렇게 나왔다는 것. 이후 항공사진들에서는 구덩이 주변이 수풀로 덮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양재대로가 지나는 개포동 이 일대에 서울시립 언주 공동묘지가 있었다.ⓒ 강대호


대모산에서 바라본 개포동 아파트단지 사진에 보이는 숲과 구릉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주변으로는 산책로가 조성되었다.ⓒ 강대호

     

이번에 강남의 공동묘지를 취재하며 참고할 만한 문헌이 부족함을 느꼈다. 강남과 공동묘지를 연관 짓고 싶어 하지 않는 분위기도 느꼈다. 사실 역사가 오랜 우리나라는 주거지나 도시의 지층 아래에 무덤이 있을 확률이 높다. 어느 재벌의 이태원 저택 안마당에서 유해 61구가 나올 지경이니까.


한편 서울시는 1970년대 서울 개발을 위해 한강 이남에 있었던 8개 공동묘지를 경기도 파주군 용미리 등으로 옮겼다. 명절이면 배 타고 한강을 건너던 성묘객들은 그 후로 경기도 여러 곳에 산재한 서울시립 공동묘지들로 몰려가게 되었다. 동산이 된 개포동의 옛 공동묘지 터는 인근 주민들이 즐겨 찾는 산책로가 되었다. 





오마이뉴스에서 <도시탐험가의 강남이야기>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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