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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Sep 30. 2020

공포 영화는 왜 무서울까?

공간 침투의 서스펜스


관객들은 공포 영화를 볼 때 언제 무서움을 느낄까? 갑자기 뭔가 튀어나올 때? 무서운 귀신이 나올 때? 아니면 잔인하거나 기괴한 뭔가가 등장했을 때?


공포 영화는 우리를 겁주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알고 있으나 대부분의 공포 영화들이 관객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부분에서 깜짝 놀라게 하면서 겁주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일명 "점프 스케어" 라 불리는 이 기법은 공포 영화 입장에선 즉각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기에 굉장히 효과적인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공포감은 관객이 극장 밖을 나가는 순간, 영화를 보고 뒤돌아선 순간 잊혀지기 쉽다. 우리가 극장 밖으로 나오고 나서도 쉽게 잊지 않는 공포영화들은 대부분 엄청난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영화들이다. 이 서스펜스를 만드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늘은 그중에서도 공포 영화가 공간 침투를 활용해 서스펜스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자.


우선 우리는 영화 속 공간에 대한 간단한 원리를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영화의 화면을 볼 때, 특히 그 영화가 공포 영화고 빈 공간이 나온다면 우리는 바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분명 그 빈 공간에서 뭔가 나올 거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각 있는 감독들은 그 빈 공간에 무언가를 바로 투입시키지 않는다. 관객들은 빈 공간에서 무언가 튀어나올 거 같은 그 느낌으로부터 서스펜스를 느끼고 있고 감독은 이 서스펜스가 가능하면 길게 유지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의 한 장면을 보자.



공포를 느끼는 여주인공은 화면의 오른쪽으로 몸이 몰아넣어져 있고 나머지 전체 화면의 2분에 1을 차지하는 왼쪽은 그저 흰 문 뿐이다. 문 밖에는 악령에 씌인 남편이 문에 도끼질을 하고 있다. 이 왼쪽 공간을 부수고 미치광이 남편이 들어올 것은 분명한데 우리가 보고 있는 건 문을 부수고 있는 도끼의 일부분과 여주인공의 겁에 질린 표정뿐이다. 그 와중에 잠깐씩 보이는 도끼는 여자보다 전경에 위치해 여자의 몸을 완전히 가려버리며 더욱 위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게다가 사운드는 여성의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로 가득 채워져 있다. 카메라는 이 시퀀스를 무려 약 30초간 가만히 응시한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서스펜스를 충분히 느낀 관객들은 아마 바로 이어지는 이 장면에선 기절초풍을 하게된다.


스탠리 큐브릭 <샤이닝>, 히얼 이즈 쟈니


이번엔 다른 영화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보자.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다.



홀로 기숙사 방 안에 있는 여자가 창 밖에서 뭔가 이상한 기척을 느끼곤 창문으로 점점 다가간다. 이상한 기척에 계속 창 밖을 내다보지만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다. '분명 창 밖에 뭔가 있을 거 같은데?' 하는 관객들의 의심은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다리오 아르젠토 <서스페리아>, 창 밖 어둠 속의 눈


여자는 한참을 반복하여 창 밖을 내다보지만 보이는 건 깜깜한 어둠뿐이다. 하지만 결국엔 창 밖에서 이상한 무언갈 발견한다. 그리고?



창 밖에서 정체불명의 눈을 발견하고 놀란 여자는 계속해 창 밖을 보는데 왼쪽에 비어있던 창문에서 팔이 튀어나와 여자를 공격한다. 이 시퀀스는 사실 앞에서 봤던 <샤이닝>의 공간 기술과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약간 다르다. 샤이닝에서는 공포의 대상이 빈 공간으로 침투해 올 것이 확실한 서스펜스였고 <서스페리아>는 공포의 대상이 침투해 올지 말지 불확실한 서스펜스였기 때문이다. <샤이닝>에 비하면 서스펜스보다 '서프라이즈'에 가까운 공간 활용이라 볼 수 있겠다.


그럼 이번엔 완전히 다른 의미로 공간을 활용하는 공포 영화를 한 번 보도록 하자. 아리 에스터 감독의 <유전>이다.



이 장면은 관객이 화면의 깊이감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은 거실에 불타버린 시체를 보고 놀라 점점 다가간다. 전경엔 누군가의 불타버린 시체가 있고 중경엔 주인공이 시체를 보며 공포를 느끼고 있다. 눈치가 빠르거나 영화를 미리 본 사람들은 후경 천장에 누군가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주인공이 차지하고 있지 않은 공간에 '처음부터' 공포의 대상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관객들은 이 사실을 알지만 주인공은 모른다. 주인공이 인지하지 않은 공간에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던 공포의 대상은 언제든 주인공의 공간으로 침투할 수 있기에 관객들은 조바심을 느낀다. 또한 이 조바심은 공포의 대상이 오히려 너무 뻔히 보이기 때문에 더욱 증폭되어 극한의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공포 영화는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 관객에게 서스펜스를 전달한다. 이게 단순히 깜짝 놀라게 하는 것보다 훨씬 영화적이고 기억에도 남기에 좋은 공포영화들은 이러한 방식들을 즐겨 쓴다. 이제 앞으로 공포영화를 볼 땐 빈 공간에 '더' 집중해보자. 물론 알고봐도 무서운건 무서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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