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윤 Oct 06. 2021

진짜와 가짜 사이

'진짜'의 무게를 생각하며

*해당 글의 저작권은 모두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어떤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점점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다. 사실인지 거짓인지, 그리고 그 사실이 진실로 이어지는지 확인하고 통찰하는 충분한 시간이 허락되지 않으니까. 그래서 누군가가 '진짜다' 혹은 '아니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해버리면, 금세 그게 진짜 혹은 가짜가 쉽게 되어버리는 것 같다.


매일 새롭게 쏟아지는 뉴스 기사에서도 그렇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근거는 없고 주장만 가득한 말들이 때로는 진짜처럼 보인다.(그 주장이 다수의 의견이거나 목소리가 크거나 확신에 차서 말하면 특히 더. 사람들은 그 주장에 대한 근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굳이 확인할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다. 겉으로는 조언하는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해 자신을 믿게 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게 목적이다. 요즘은 진심으로 걱정해서 하는 말이나 조언에도 가스라이팅이라는 이름을 붙여, 이 용어가 지나치게 남용 혹은 오용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타인이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어, 그 약해진 자아에 자신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을 밀어 넣고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아주 교묘하게 통제하는 이 가스라이팅은, 분명 진심 어린 조언과 확실하게 구분된다. 상대방에게 본인에 대한 신뢰를 강요하는 가스라이팅은, 누구든 어떤 관계에서든 쉽게 겪을 수 있는 경험인 것 같다.


진짜와 가짜가 구분되기 어려운 시대에,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근거는 없고 주장만 가득한 말들, 큰소리로 권위적으로 혹은 아무런 의심 없이 당당하게 말해서 '진짜'처럼 보이는 말들. 속속히 들여다보면 진실은커녕 사실조차 아닌 경우가 많은 말들. 의견은 쉽게 사실이 되고, 사실들의 짜깁기는 또 쉽게 진실이 된다.  


원래 진실은 복잡하고 여러 맥락으로 얽혀있다. 진실은 알아보기 어렵고 찾기가 힘들다. 그 복잡함과 복합성을 단순화시켜서 말하면 그건 또 어느새 진실과 멀어지게 된다. 진실은 시끄럽지 않다. 그리고 함부로 쉽게 말해지지 않는다.


이제는 진실은 물론이고 사실을 구분하는 것조차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인 것 같다. 어쩌면 사람들은 사실을,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려는 의지를 상실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젠 사실인지 아닌지의 구별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서, 그리고 그럴 시간이 없어서.  


하지만 분명 우리는 안다. 근거 있는 사실과 근거 없는 주장은 다르다는걸. 그리고 단순히 사실의 짜깁기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본질은 언제나 고요하게 존재하고 존재해왔음을. 진실과 사실인 양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것들 사이에서, 고요히 자리를 지켜왔음을.


예술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을, 우리가 진짜라고 믿기를 무의식적으로 강요당해온 것들을, 근본적으로 다시 바라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의 제대로 된 맥락을, 복잡함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며 '관점' 자체를 다시 바라보는 작업이니까. 그리고 이는 단정적인 말들, 확정적인 말들, 근거 없이 주장만 가득한 말들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예술의 또 다른 기능에 대해 생각해 보다,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을 되짚어보다 든 생각들. 그리고 위와 같은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되뇌는 한 문장이 있다.


"세상의 문제는 어리석은 자들은 늘 확신에 차 있으며 현명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나치게 의심한다는 데 있다." -by 버트런드 러셀-


글. 박지윤

2021년 9월


* 해당 글에 들어간 글과 사진의 저작권은 모두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만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