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기 자랑대회 6

소음 참기

by 아륜

소리를 좋아한다. 부드러운 목소리, 풀벌레 소리, 졸졸 물소리, 낙엽 밟는 소리, 사각사각 이불 소리, 연필 소리, 모든 종류의 악기 소리, 가쁜 숨을 고르는 소리, 커피콩 가는 소리, 맥주캔 따는 소리 등. 소리는 나를 흔든다. 감정을 움직이고 몸에 생기를 준다.


노래를 하거나 피아노 치는 사람이 있다면 귀의 마음을 활짝 열어 들어본다. 그가 음악으로 하는 이야기를 잠자코 듣는 것이다. 나의 음감 능력이 어떤지는 모른다. 청각으로 느끼는 즐거움이 엄청난 것만은 분명하다. 마음에 드는 멜로디를 만나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벅차다. 목소리가 좋은 사람이 말하면 소리를 듣느라 내용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소리에 민감해 쉽게 즐겁지만 거슬리는 소리에는 금세 피로해진다. 여러 소음이 있지만 그중 유난히 힘든 소리는 말소리다. 듣기 좋은 음성은 소리를 듣느라 무슨 말인지 듣지 못하는 것과 반대로, 소리로서의 가치가 특별히 느껴지지 않는 경우는 말에 집중되어 내용이 더 크게 다가온다.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나 혼자 조용히 쉬고 싶을 때, 글을 쓸 때. 누구나 시끄럽다고 느낄 만한 소리는 큰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데 말소리가 특히 어려운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말은 곧 이야기여서 내 사고를 확장하기 때문인 듯하다. 너무 많은 단어, 펼쳐지는 장면, 이어지는 상상. 그 이야기가 없어도 이미 내 안에 이야기 공장이 돌아가고 있는데, 내가 원치 않을 때조차, 결이 다른 말들이 내 귀에 들리면서 나는.


싫다기보다는 버겁다는 느낌. 이런 감정을 느낄 때면 죄책감이 든다. 말소리는 사람의 존재감인데 나는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인가? 사람이 말을 하는 게 자연스럽지. 아는 사람이든 낯선 사람이든. 나에게 말을 걸든 말들이 들려 오든. 말이 있어 관계가 있고 세상이 있는데. 왜 그걸 힘들어하냔 말이야! 하고 자책하기 시작하면 힘이 빠진다. 나의 특성을 받아들이고 나만은 날 이해해주며 나는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해본다.


이야기에는 핵심 줄거리가 있다. 핵심에는 뭘 말하려는지 담겨 있다. 크게는 주제, 구체적으로는 제목도 있으면 좋다. 글을 읽을 때는 제목부터 읽으니까. 화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대강 파악하고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말에서도 지금 이 사례의 연속이 어떤 핵심으로 귀결되는지 궁금해진다. 핵심이란 기준에 의지해 이야기를 듣는데, 그게 뭔지 파악되지 않을 때면 모든 단어는 낱낱이 찢어져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집중이 흐트러지고 수많은 단어에 깔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말하는 사람은 무엇을 왜 말하고 싶은지 정해두지 않을 수 있다. 그저 도란도란 얘기하고 싶은 건데. 나도 그럴 때가 있는데. 내면에 정돈되지 않은 형태로 쌓인 감정을 아무렇게나 풀어헤치기 원할 때도 있는 것이다. 너가 들어줬으면 좋겠어, 하는 마음. 그렇게 마음먹고 이야기를 들으면 편히 들리기도 한다. 나는 누가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자주 찾아오지는 않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혼자 글의 형태로 이미 풀어냈기 때문에 내 얘기는 내가 잘 들어주며 사는 셈이다. 그런데 가끔은 그냥 막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잘 들어주지 않으면 얼마나 속상하고 무안해지는지 알고 있다. 그때의 감정을 떠올려 보면 누가 말할 때 소음이라 생각하지 않고 잘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들어줄 수 있다면 조건 없이 그저 말하도록 허락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무음보다는 소음이, 공허보다 고통이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