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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아피디 Mar 04. 2021

이사 가는 날


‘우당탕탕 쨍그랑’

밖에서 깨지는 소리가 마치 작은 전쟁이라도 시작된 듯 요란하게 들렸다.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니 맞은편 빌라의 이층에서 한 아저씨가 길가에 세워진 트럭으로 물건을 마구 던지고 있었다. 이사를 하는 건지 집을 약탈하러 온 건지 모를 정도의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너무 놀라 일층으로 내려갔다.  부동산 아저씨도 나와 얼굴을 찡그리고 지켜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래요?”라고 나는 물었다. 아저씨는 담배를 비스듬히 꼬나문 채로 대답했다. “저기 혼자 살던 할머니 죽었대. 며칠 전에 국과수도 왔다 갔대. 경찰차가 보이길래 물어봤더니 누가 죽었다고만 하고 어떻게 왜 죽었는지는 말 안 해 주더라고. 근데 내가 누구야? 알아냈지" 자못 자랑스러운 투로 말했다. 어이가 좀 없었다.


사실 얼마 전부터 역겨운 토사물 냄새가 진동을 했다. 생전 처음 맡는 냄새였다. 100명이 술 먹고 토해 놓은 것을 며칠 동안 썩힌 것 같은 냄새가 더운 열기를 타고 동네 여기저기에서 진동했다. 그저 누가 음식쓰레기를 몰래 어디 버린 줄 짐작했다. 한낮의 최고 기온이 연일 경신되는 여름 이었으니. 그런데 그게 사람 썩는 냄새였다니. 그것도 오가며 인사 나누던 그 할머니였다니...  


옆집에서 썩은 냄새가 역하게 난다고 그 집주인에게 전화를 해서 집에 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구더기 천지였단다. 그 집은 방이 세 개나 있는 제법 큰 집이었는데 할머니 혼자 월세를 살고 있었단다. 참으로 미스터리 한 정황이다. 연고도 없는 할머니가 그 비싼 월세를 주며 혼자 살고 있었다니. 오늘 마침 특수 청소용역을 불러 집을 비우는 중이었다. 어느 물건 하나 온전한 것이 없이 냄새와 습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한 트럭에 다 담으려니 다 내던져서 부셔버리는 방식으로 집을 비우는 중이었던 것이다. 죽은 사람의  물건들이 두번 죽어가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사람은 냄새로 죽음을 알린다는 것을 알았다.  


TV에서만 보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니 소름이 끼친다기보다는 먹먹했다. 말로만 듣던 고독사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나 역시 원룸에 혼자 사는 40대이다. 내 미래와 전혀 관계없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나의 미래라고 연결시키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신문에 TV에 나오는 숫자와 통계들이 눈 앞에 실제로 환원되어 펼쳐지니 인위적으로라도 나와 연관시켜야 되겠다는 어떤 직감이 스쳐 갔다.


망설여지는 것도 당연하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인생인 것은 살면서 터득한 진실 한 가지이다. 지금 어떤 선택을 면 어느 것이 포기되는지는 나중에 알게 된다는 것이 큰 맹점이다. 선택과 포기의 항목들을 샐러드 소스 고르듯이 미리 알 수만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단순하고 쉬워질까? 눈 앞에 이런 말도 안 되는 풍경이 펼쳐지는 것은 나에게 일종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계시에 부응하기 위해서 나는 그동안 거절하거나 미뤄왔던 숙제 같은 것을 해야 된다고 느꼈다. 더 생각하거나 망설이면 못 할 것 같은 숙제 말이다.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나 자기 집으로 들어갈게. 응 날짜는 같이 조정해 보자. 그래 맘 바꿨어. 들어간다고. 그렇게 좋냐? 아무튼. 철없기는... 같이 살면 힘든 게 더 많을 텐데. 그래 알았어. 들어간다고. 이따 만나서 얘기하자. 퇴근할 때 연락해. 응 그래 끊을게.” 인생의 선택들은 가끔 무연고한 한 장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집으로 돌아섰다.                


PS 구독자님들께

제 글을 읽으시고 부디 비판의 글을           부탁드립니다 어려운 일이라는 건 잘 알지만 자유롭게 비평해주세요, 그냥 말이 아니라 간절하게 부탁드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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