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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와정피디 May 19. 2018

멈춘 항구의 시간들 IN Huskvik Ⅵ

DAY 5 여섯 번째 이야기




여전히 아름다운 우리들의 밤


아이슬란드에서는 일단 ‘사람의 손을 거치면’ 가격이 급속도로 오른다. 때문에 동일한 메뉴더라도 마트에서 재료를 사서 요리하는 금액과 레스토랑에서 사 먹는 금액은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그래서 한국에서부터 간단히 조리할 수 있는 식재료를 많이 챙겼다. 덕분에 간신히 두 사람의 텅장을 채울 수 있었다는 후문이..


하지만 분명히 마지막 날까지는 이걸로 버틸 수 없다. 그리고 아이슬란드까지 왔는데 현지 음식은 먹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타협한 것이 ‘현지 식재료를 사서 조리해 먹는 것'이었다. 모두들 ‘아이슬란드의 물가 진짜 비싸다’라고 하지만, 마트에 가면 어떤 것들은 심지어 한국보다 저렴한 재료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고기, 그리고 고기.) 우리도 마지막 날은 마트에서 장을 보기로 하고, 숙소도 조리가 가능한 아파트먼트 형태로 예약을 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얘기한 대로 외식요리가 정말 정말 비싸기 때문에 조리할 수 있는 ‘아파트먼트’ 형태의 숙소가 제일 많다. 가난한 여행자들의 지갑을 지켜주는 고마운 곳들이 아주 많은 것. 우리가 예약한 숙소 역시 조리가 가능한, 레지던스 형태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뽑기 하나는 제대로 한 것 같다. 이 숙소, 무지하게 마음에 든다.


출처 익스피디아



무인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우리의 숙소는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스태프가 미리 알려준 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웰컴 인사와 함께 안내문과 머무르는 기간 동안 사용할 수건, 휴지 등이 놓여있다. 더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추가로 쓸 수 있는 넉넉한 여유까지 있다. 원룸 형태로 되어있는 방 역시 대여섯 명은 거뜬히 머물 수 있을 정도로 넓고 깔끔하다. 뒤쪽에는 작지만 쉴 수 있는 작은 테라스도 있어 마음껏 일광욕도 가능했다. 비싼 가격에 별로면 어쩌지, 하는 마음은 문을 열 때부터 사라진 지 오래. 푹신한 침대에 누워 팡팡 뒹굴뒹굴 행복을 만끽했다.


앗, 하지만 방심은 금물. 벌써 마트가 문을 닫을 시간이다. 뭐든지 다 빨리 문을 닫는 아이슬란드에서 마트도 예외는 아니다. 시간을 체크하지 못해 비싼 편의점에서 쓸데없는 지출을 했던 첫 날을 떠올리곤 부랴부랴 마트로 향했다. 오늘의 저녁 만찬 메뉴는 바로 스테이크! 그동안 마트에서 가격을 비교한 바, 의외로 고기 종류가 저렴한 편이었다. 오늘의 숙소에는 기본적인 조리도구와 조미료까지 다 준비되어 있다. 게다가 첫날 공항에 도착해 호기롭게 샀던 와인이 아직도 반 병이나 남은 채 캐리어에서 뒹굴고 있으니! 오늘 같은 날 마시려고 그렇게 내팽개쳤나 보다. 

문 닫기 30분 전, 가까스로 마트에 도착해 스테이크용 고기와 곁들일 채소, 군것질 거리들을 잔뜩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먹은 거라곤 아침에 후사비크를 출발하기 전 먹었던 피시 앤 칩스와 휴게소에서 먹은 간식들이 전부. 마트에서 빛깔 고운 고기를 영접한 순간 잊고 있던 배고픔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숙소에 오자마자 저녁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짐 정리는 저녁을 맛있게 먹은 한 시간 후의 내가 해주겠지. 지금의 나는 밥부터 먹어야겠다.


그동안 내내 아껴온 재료들을 모조리 오늘 저녁에 쏟아부었다. 몇 개 남지 않은 즉석밥도 꺼내고 수프도 탈탈 털어 준비! 마트에서 사 온 따끈따끈한 고기는 채소와 함께 굽고 와인도 꺼내 준비. 호화롭고 완벽한 저녁이었다. SNS에 올릴 음식 샷과 갬성샷들을 찍고 최고의 만찬을 먹기 시작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타로 언니가 분명히 우리 두 사람한테는 일복이 넘쳐난다고 했는데 그 말은 틀렸다. 우리는 아마 먹을 복이 넘칠 것이다. 그동안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그 자체로 호화로운 식사를 했다. 그중 최고는 아마 오늘, 지금인 것 같다. 알쓰인 우리 두 사람의 몸에 기분 좋게 알코올이 퍼지고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노곤노곤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짐을 정리할 거라는 한 시간 후의 나는 다시 정리를 내일의 나에게 미룬 채 간신히 씻기만 하고 잠이 들었다. 내일의 나와 내일의 레이캬비크가 더더 아름다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채.


스테이크 느님 간단히 굽굽 구워 한 상 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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