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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B Apr 24. 2018

남미/페루살이 정산 특집 시리즈 시작 알림

퍼즐 조각처럼 낱말 키워드로 하나씩 "남미", "페루"를 살펴보려 하다


얼마 전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일이 있어 수도 리마에 갔었다. 

(개발도상국일수록 거의 모든 재화나 서비스가 수도에만 집중되어 있는 편이라 어쩔 수 없이 누구나 Permiso를 내고 수도에 가야할 일이 종종 생긴다. 특히 외국인이라면 더욱.)


내가 리마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가는 나의 세컨드 홈그라운드 같은 미라플로레스 지역 내 호스텔이 하나 있는데, 그곳 주인네도 미국 텍사스 출신 남자와 페루 리마 출신 여자가 미국 LA에서 만나 결혼해서 이곳에 돌아와 눌러 앉은 케이스다. 그곳 주인네와 앉아서 두런 두런 대화를 하다가 - 내가 8월에는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9월 말 부터는 영국 대학원에서 석사를 시작한다고 하니 주인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래, 지금까지 있으면서 너의 페루 생활은 어땠니?
너의 동아시아 문화권과는 완전히 다른 이곳에서 어떤 시간들을 보냈니?
 

그 질문들에 참 많은 일들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혼자서든 가족이나 친구와든 해외 배낭여행은 단기든 장기든 참 많이 해보았지만, 이렇게 내가 외국에서, 그것도 시스템 자체가 미비한 개발도상국에서 혼자서 모든 것을 헤쳐가며 사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어떤 이민 생활이든, 혹은 장기 파견식이든, 선진국이든 개도국이든 - 해외 생활 시작 시에 처음와서 적응하는 동안 6개월 정도의 허니문 기간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에는 내가 사는 이 나라가 끔찍하게 싫어지는 시간이 수시로 찾아오고, 또 몇 년 주기로 주기적으로 고비가 계속 찾아온다고 했다. 허니문 기간을 넘기면 1년 차 이후, 그리고 2년 차 쯤에는 정말 모든 걸 다 때려치고 싶을 정도로 위기가 찾아온다고.

그 이후 순간들을 잘 넘긴다 하더라도, 사실 그건 극복이 아니라 반쯤은 체념을 하게 된 거라는 웃지 못할 농담들을 들었을 때 나는 그땐 그러려니 했는데 - 지금은 아주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한 후, 나는 주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경험과, 함께 한 내 2년 여의 시간은 - 내 인생의 부분을 완성하게 될 여러 퍼즐 조각들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해외 생활을 하면 어느 정도는 모두가 낭만적인 상상을 해볼 것이다. 주변의 현지인 친구를 사귀고 그들과 잘 지낼 것이다. 그들과 친절히 잘 지낼 것이다. 그리고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순진하고 착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라는 심리적인 편견까지. (이 편견은 이후 아주 산산히 조각나게 된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건대 - 전체적으로 볼 때, 내 생활은 솔직히 그런 낭만과는 거리가 몇 광년은 떨어져 있는 삶이었다. 어쩌면 내가 사람 운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 내가 사는 페루 모케구아라는 지역 자체가 전체적으로 그런 성향이 강하다는 결론도 함께 내렸다. (이에 대해 함께 있는 코이카 단원들과 성토대회 비스무리한 것을 열기도 했다.) 내가 온 가장 커다란 이유인 현지 학생들과는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을 다 들고 잊지 못할 추억을 주고 받았지만 - 그 외에 내가 일상에서 만난 수많은 어른들과는 크고 작은 마찰과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까? 적고나니 뭔가 스스로가 서글퍼지지만 그러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일들을 통해 나는 내적으로 크게 성장했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여전히 과거에 묶여있는 이들의 현재를 직시했고, 더불어 이들의 미래를 위해 국제개발 교육학 석사를 지원할 것을 결심하고 여기서 주경야독하며 합격했으니 크게 손해 본 것은 없는 셈이다. 더군다나 여지껏 몰랐던 내 발군의 요리실력도 함께! 그러므로 이곳에 대한 애증의 시소는 아직까지는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약 세 달 반의 시간이 흘러 남미를, 페루를, 모케구아를 온전히 떠나게 되면, 내가 현재 기억하는 이 시간들의 퍼즐 조각 모양 따위도 흐릿해질 것이 분명하기에, 하나씩 키워드를 정해 거기에서 내가 여기서 알고 경험한 만큼의 지식을 더해 차분히 글로 써서 남기기로 결심했다. 


혹시나 나의 생활 속 경험이, 나의 추억팔이가, 미래에 남미로 올 사람에게, 혹은 이곳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겨자씨 한 톨만큼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중남미 지도. 참 많은 나라들이 있다. 그리고 나역시 여기서 직간접적으로 주변 이웃 나라들을 접했다.
페루 전역의 주를 나타낸 지도이자 지하자원을 나타낸 지도. 나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구리광산이 자리한 남부 모케구아라는 곳에 있다.


+

한국어 화자에게 주어진 영어와 스페인어라는 언어 삼중고, 가족과 친구의 남미 방문, 틈틈이 대학원 준비 및 계속된 어학 시험 등으로 긴 시간 개인적으로 굉장히 바빴기에 브런치를 방치했기에 그동안 전혀 글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이제서야 조금씩 정신이 듭니다 ㅠㅠ 


이 키워드 프로젝트는 예전부터 페루 생활 정산 시기가 오면 반드시 해보고 싶은 것이었는데, 슬슬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라 생각이 드네요. 아무쪼록 용두사미가 되지 않고 꼭 마무리 할 수 있길 스스로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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