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gela B May 16. 2022

Diario BA #2 그간의 기록+내 루틴 만들기

묵혀둔 기록 끄적끄적 및 이사 후 내 부에노스아이레스 일상 속 분투 모음

0. 

마지막 글을 쓰고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린다.


하루가 빡빡하게 돌아가는 한국과 비교하면 사실 해외생활은 여유로운 편이라서, 이번 아르헨티나 파견 살이에서는 스스로에게 시간적 여유가 생긴 만큼,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글을 더 쓸 수 있을 거라 기대했건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여행계획을 짜도 휴식은 커녕 전투적인 자세로 임하며 빈틈이라고는 없이 죽어라 돌아다니는 한국인의 종특을 못 버리고, 오히려 한가로움과 여유에서 비롯되는 스스로의 부정적인 상념들을 잊기 위해 더욱 분주하게 지내는 중이다.  

 

게다가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어메이징한 도시가 아닌가. 

남미의 문화 수도답게, 여기는 스스로가 조금만 부지런하다면 도무지 심심할 틈이 없는 재미있는 곳이다. 


그 동안의 많은 밀린 이야기들 중 날짜 별로 기억에 남는 거만 정리.




1. 

2022년 4월 8일 금요일: 말비나스 박물관 현장체험학습

오전 현지 교육과정(우리 학교는 오전에는 아르헨티나 현지 교육과정, 오후에는 한국+영어 교육과정으로 나누어서 실시한다)에서 아르헨티나 국가 기념일인 4월 2일 말비나스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진행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말비나스 박물관 현장체험학습에 인솔교사로서 함께 다녀왔다. 말비나스 박물관 큐레이터도 함께 와서 유익한 설명을 해주었다. 


스페인어로는 말비나스 군도, 영어로는 포클랜드 제도로 불리는 이 남대서양의 섬은, 아르헨티나 땅 및 남극와 훨씬 더 가까운 곳이지만 식민지, 제국주의, 그리고 군부 독재 정권의 뻘짓으로 인한 전쟁 등 아르헨티나 내외의 숱한 역사적인 이유로 현재까지도 영국의 실효 지배령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혹자는 한국의 독도 같은 문제라고도 했지만, 독도는 우리나라 영토 내에 우리나라 수비대가 주둔이라도 하고 있어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갈 수도 있어 실상 우리나라 영토로 인정받고 있으나 내 개인적인 견해로 말비나스는 현재 시점에서 아르헨티나가 되찾는게 불가능해보일 정도다. 아르헨티나에서 바로 가는 교통편도 전무하다시피 하고, 이미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영국계 주민들이 주로 살고 있기에 아르헨티나로 귀속되는 것에 대한 반대여론이 매우 높기에 절대 영국이 내어줄 리가 없다. (역시, 세계 근현대사에서 좋지 않은 일, 나쁜 일에는 항상 영국이 껴 있다.)


4월 2일 말비나스의 날(말비나스 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을 기리는 날)까지 제정하여 해마다 기리고, 콘서트를 하고, 관련 책을 쓰고 조사를 하고, 참전 용사들을 인터뷰하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조명하는 등 아르헨티나로서는 최선의 노력과 함께 이를 박박 갈며 언젠가는 되찾을 날을 노리는 듯 해보이지만 한낮 외국인의 시선으로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언젠가는, 아르헨티나가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랄 뿐.  


생각보다 박물관은 넓고 정리가 잘 되어 있어 말비나스에 관련된 대한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우리 팀 말고도 많은 학교들이 왔지만, 우리 학교 학생들 관람태도는 최고라며 박물관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칭찬해주었다. 내가 봐도 우리 학교 아이들은 참 착하고 예의가 바르다.




2.

2022년 4월 9일 토요일: TOPIK 한국어능력시험 감독 지원

코로나로 인해 약 2년간 열리지 못했던 TOPIK(Test of Proficiency in Korean, 한국어가 모어가 아닌 사람을 위한 한국어능력시험 - 이하 토픽)이 4월에 임시로 열렸다. 시험 장소가 우리 학교이고, 응시자가 생각보다 많아서 감독관들이 많이 필요해서 우리도 다 지원을 나갔다. 교육원장님과 오리엔테이션을 전날 갖고, 시험 시작 전에도 회의를 하며 조율해나갔다. 시험 도중 자잘한 일들이 있었지만 원칙대로 나름 진중하게 해나갔다고 생각한다. 


주로 오전에 보는 1급은 아르헨티나 현지인들의 자신들의 실력 확인, 2급은 교포 학생들이 한국 대학 원서 지원을 위해 보러온다고 한다. 오디오를 점검하면서 녹음하시는 아나운서님께서 정말로 천천히 발음하시는 걸 듣고 당황했는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빨리 말하는 게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어려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앞에서는 천천히 이야기 해줘야겠다는 반성을 하며. 



난 이전에도 감독관 알바를 몇 번 해봤었는데, 이번 일도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했던 것 같다.
끝나고 감독관 팀 회식.




3. 

2022년 4월 12일 화요일: Imagine Van Gogh(이매진 반고흐) 전시회 

미술에 관심 있고 인상주의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언제나 설레는 그 이름, 빈센트 반 고흐.

음악과 함께 반 고흐의 그림을 비주얼 아트처럼 전시하는 컨셉으로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이매진 반고흐 전시회를 미리 예약해서 다녀왔다. 남미에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처음으로 열린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La Rural 이라는 전시장을 처음 가봤는데, 팔레르모 지역에 위치한 큰 엑스포 전시장으로 각종 행사가 많이 열려서 택시기사들에게 여기 가자고 하니까 바로 알아서 데려다 주시더라. 


여기는 미리 예약해야지만 갈 수 있는 곳이라서, 아직 임시 영주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나로서는 은행 계좌도 뭣도 없어서 다른 선생님께 대신 사달라고 부탁해서 예약했는데, 이 선생님도 미술에 관심이 많으셔서 함께 가게 되었다. 


아르헨 오자마자 예약해서 한달 반 가까이 기다린 전시회인데, 평일 밤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정말 너무너무 많았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마주한 감동적인 풍경. 음악과 어우러진 고흐의 그림들을 크게 감상할 수 있다.
크게 확대하여 보여주기 때문에 고흐 그림의 특징인 유화 물감을 강하게 덧칠한 질감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카페는 컨셉으로 지은 팝업 하우스였다. 기념 사진도 사이좋게 찍고 마무리.


제로 뉴욕과 암스테르담에서 고흐 그림을 보고 그 처절할 정도로 강렬한 생명력에 반해 고흐 그림 전시회라면 무조건 찾아가보게 되었는데, 지구 반대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이런 행운을 가지게 되어 참 감사했다. 




4. 2022년 4월 14일 ~17일 목요일 ~ 일요일 Semana Santa 부활절 연휴: 코르도바 여행

2월 말 파견 이후 처음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밖을 벗어나 동료 선생님과 코르도바 여행을 다녀왔다.

코르도바에 살다가 오신 교포 선생님의 극찬을 이미 들었어서인지 여행 시작부터 기대가 잔뜩 되었다.

결과는 대만족.





끝없는 평지로 둘러싸인 부에노스아이레스와는 달리 산이 많은 코르도바는 교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 마치 한국의 느낌이 많이 났었다. 어느새 곱게 물든 단풍 아래를 유유히 걷고 있자니 정말 한국의 산사에 가는 기분이 들 정도면 말 다한게 아닌가. 게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답고 친절한 코르도바 사람들, 사랑스러웠다. 기회가 되면 다시 돌아오고 싶은 곳. 역시 나는 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답게 대도시 수도보다는 소도시가 더 정감이 간다. 




5. 2022년 4월 18일 월요일: 코비드 의심 증상으로 검사 받으러 감

여행 가기 전 걸렸던 감기가 낫지를 않고 기침도 콧물도 몸살기도 점점 심해지기만 해서 조퇴하고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갔다. 한국에서 들고온 자가진단 키트 상으로는 계속 음성이긴 했지만 딱 증상이 백신 맞고 한참 아팠을 때 증상이랑 비슷해서 솔직히 매우 의심스러웠다.  




결과는 역시 음성. 우리나라에서 카톡으로 검사 결과가 오듯이 여기는 WhatsApp(여기 말로는 스페인어 발음을 적용해서 '왓삽'이라고 하는데, 아르헨으로 오기 전 먼저 영국에서 유학생으로 살았던 나는 왓츠앱이 입에 더 붙어서 그냥 왓츠앱이라고 부른다)으로 결과가 오더라. 증상을 보아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코로나스러운데, 내 몸뚱아리가 알아서 항체로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 고맙다, 내 육신이여... 


이사장님 말씀으로는 여기 감기가 정말 은근한 증상으로 오래간다고 하셨는데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직접 며칠간 혹독하게 감기를 앓으며 알게 되었다.




6. 2022년 5월 1일 일요일부터 ~ :드디어 이사!!!

두 달 이상의 호텔 생활을 끝내고 5월부터 새로 계약한 집에 Alquilar Temporal로 들어가게 되었다.

학교 출퇴근하기에는 거리가 멀고, 집이 북향(남반구라서 북향집이 햇볕이 잘 든다)이 아니라서 햇볕이 잘 들진 않는다는 큰 단점이 있지만, 이를 제외하고서는 위치나 집 컨디션 등이 최상이었다.

동네 자체가 안전한 동네라 어쩌다 밤에 늦게 귀가하면 걸어다니기도 나쁘지 않고(남미에서는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이곳저곳 다니기에 버스나 지하철 등 교통도 편리하고, 마트나 세탁소 등도 다 가깝고, 근처에 맛집도 많고... 게다가 이 집은 원래 에어비앤비로 돌리던 집이라 웬만한 가구나 도구가 다 있어서 편리한 자취생활을 위해 선택했다. 물론 현재까지 선택한 결과에 대해 대만족하며 잘 살고 있다.

당분간은 짐을 다시 쌀 일이 없길 바라며, 이사 완료!
막 집 정리 및 청소까지 완료한 상태에서 찍은 사진. 100점 만점에 100점은 줄 수 없어도 80점은 줄 수 있는, 최근에 지어진 새집이다. 정말 만족하며 잘 살고 있다.
내 집 발꼰에서 보이는 풍경. 바로 앞에 나무가 있어서 벌레가 들어오고 햇볕을 가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 예쁜 풍경이 모든 것을 상쇄한다.


이사 후 일주일 뒤 주말. 학교 근처 철물점에서 산 멀티탭과 돼지코 컨센트가 하필 불량이었는지, 주방 쪽에서 잘 되는지 시험해 보던 도중에 꽂자마자 그대로 스파크가 튀면서 꽂았던 콘센트와 멀티탭 안이 다 타버리고(...) 집 전체가 하루 종일 정전이 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혹시나 다른 사람들도 불편을 겪는건 아닌지 너무 걱정되어서 어쩔 수 없이 휴가 중이던 주인에게 연락해 상황을 설명했다. 멀리 가족 휴가를 가있던 주인이 정말 미안하게도 휴가를 즉각 취소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와주었다. 


보통 아르헨티노들은 나더러 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지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데... 주인인 파비안은 유대계 아르헨티나인으로 보통 이상으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인 것 같았다. 주인이 아파트 관리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준 뒤 오후 늦게 집으로 와준 파비안과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세도 미리 현금으로 내버리고, 며칠 살다보니 보이는 사소한 문제점도 다 이야기하며 타협과 절충안을 찾아나갔다.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 정말 다행이었다. 알고보니 파비안은 제약회사 직원으로 한국 회사와 협력해서 일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출장으로 서울도 아닌 춘천에 갔었다는데, 인연이 참으로 신기했다. 그때 보았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았는지, 파비안도 첫 장기 계약(이 집은 1월 말 쯤부터 지어져서 2월에 에어비앤비로 돌렸었다 했다. 어쩐지 건물이 정말 새 거였다.) 세입자가 믿을 만한 나라에서 온 한국인이라며 좋다고 하였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남미에서는 손을 탄다고 해야할까, - 페루에서도 한 번씩 겪었던 일이다 - 생각보다 사람들이 남의 물건을 가져가는 일이 잦아서 소지품 간수나 돈 간수를 잘해야 한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이 집에 접시랑 칼이 없어서 내가 알아서 몇 개 새로 샀는데 이에 대해서 물으니 파비안은 아무래도 에어비앤비로 머물던 사람들이 들고 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나는 차라리 사 넣고 너에게 기증하면 기증했지 멀쩡한 물건을 들고갈 일은 없을 거'라고 안심시켰다. 

 

여튼 파비안은 내가 가지고 있는 한국 물건들이 신기한지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아르헨티나의 법이나 각종 물건 사는 방법 같은 걸 알려주기도 하였다. 여튼 정말 미안한 상황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서로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주인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찍었던 처참했던 현장. 사진에 자세히 안나오지만 콘센트와 멀티탭이 접촉한 부분은 스파크와 동시에 모두 새까맣게 타버린듯 했다. 뭔 이런 일이 ㅠㅠ



이런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집과 동네는 참 마음에 든다.

우리 집 근처에 일이 있어 방문했던 동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열쇠만 있으면 훔쳐살고 싶다는 표현을 썼으니 ㅋㅋㅋㅋㅋㅋ (열쇠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 건물 들어가는 대문은 어쩔 수 없지만, 주인이 집 열쇠는 남미에서는 보기 힘든 지문인식으로 달아주어서 정말 편하게 다니고 있다). 행복한 마음으로 이곳 동네 주민으로 하루하루 사는 중.


동네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찍은 사진들.
집 근처 파리샤에서 만난 넘나 귀여운 고양이 :) 내 옆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하던 귀여운 녀석이었다.


집 근처인 빠르께 센테나리오는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는 사람들이 참 많다. 요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로, 날씨가 정말 좋아서 다니기 좋다.
동네 맛집 빵집. 항상 줄을 서서 주문해야 하는 곳이지만 그만큼 맛은 보증할 수 있는 곳.





7. 2022년 5월 14일 토요일: Feria Internacional de Libros de Bs As 국제 책 시장/박람회(이하 페리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정기적으로 책 페리아 행사를 연다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너무나 가보고 싶던 행사였다. 그동안은 코로나 때문에 못했다는 것 같은데 올해에서야 다시 열리는 걸 보면 - 남들은 거의 겪어보지 못한 별의별 해괴한 일이 일어나며 매일을 인생을 시트콤처럼 사는 것과는 별개로 - 내가 복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입장 티켓은 예약 없이 현장에서도 살 수 있으며, 저 티켓은 책 할인 쿠폰도 겸한다.  


책 자체를 사랑하고 향후에 출판 계획도 있는 한 사람으로서, 눈 돌아가게 재밌는 행사였다. 이번 책 페리아를 통해 아르헨티나에 주(State) 별로 출판사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정말 다양한 출판사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를 홍보하는 것을 보면서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생각보다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긴 지하철만 타도 같은 칸 사람들이 한 두명씩은 연필로 줄을 그어가며 열심히 책을 읽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종이와 환경, 편리함을 생각해서 아르헨티나에도 EBook 시장이 크게 형성되면 좋겠는데,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닌 것 같더라. 



한국에서 한 번씩 읽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아틀라스 시리즈가 나와있어서 나도 모르게 지갑을 탈탈 털어 두 권을 샀다. 내년엔 스페인어를 좀더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르헨 덕후들을 위한 일본 망가와 마블 코너도 있다. 일본이란 나라를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이미지메이킹과 문화 수출이라는 점에서는 인정할 건 해야할 것 같다.


나는 '뭐 행사장이 크면 얼마나 크겠어~'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두 시간 전 쯤 갔는데 두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알차게 돌면서 구경했다... 이런. 나중에 나오면서 보니까 심지어 다 돌아보지도 못한 구역들이 있더라. 내년 행사 때는 반드시 세 시간 전에는 오리라 다짐하며. 다양한 책들을 보며 지적 호기심 및 허영심도 채우고, 이 나라 사람들의 책에 대한 열정도 배우고. 즐거웠다.





8. 그외 번외 편: 

1) 그 와중에 현지 친구들을 만났다. 나에게는 남미가 처음이 아니라 - 페루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보니 그 계기로 알게 된 친구들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인 세바스티안(이하 세바스)은 페루에 파견 근무를 하던 도중에 나를 만났고, 미셸(이하 미치)은 브라질을 여행하다가 만났다.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았던 친구들을 여기 다시 와서 인연을 이어가게 되어 참 반갑다.


세바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에 살면서 일하는 친구고, 집이 멀어서 나를 보러 CABA(까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를 말함)까지 오려면 왕복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 정도 운전해서 와야하는데 프로젝트 매니저라 바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시간을 짜내어 나를 보러 와 주었다. 그리고 한국에 관심이 있는 자기 친구들도 소개시켜 주었다. 다음에 이사하면 집으로 초대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이 놈이 두 달간 내내 하루에 16시간 정도 일하던 바쁜 프로젝트를 끝내고 긴 휴가를 얻어 지금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멀리 떠나있다 ㅋㅋㅋㅋ 미치는 기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자 인디 아티스트로, 얼마전 미치가 공연하는 미니 콘서트에 가서 그녀를 응원하고 왔다. 미치네 집은 비샤 크레스포에 있어서 여기서 별로 멀지 않지만 현재 심한 감기가 걸려서 감기가 나으면 놀러오라고 했다.

 

일회성으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인연이 다시 이어질 거라 누가 생각했을 까.



어쩌다보니 어린 교포들과 친해지게 되어 어느 날은 진심 볼링을 칠 수 있을 정도로 소주를 퍼 마시기도 했다 ㅋㅋㅋㅋㅋ 나에게 있어서 이 나라 교포들은 참 흥미로운 사람들인데,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고 자라 스페인어가 한국어보다 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한국 음식이 더 맛있다는, 늘 자신의 정체성이나 뿌리에 대한 화두를 가지고 있어서 대학원에서 교육사회학 분야과 관련이 있는 전공을 공부한 내겐 연구 대상이다. 조만간 밥 사준다는 핑계로 한 명씩 나의 개인 연구 목적 인터뷰를 진행해 볼 생각이다.





2) 여튼 이사온 이후부터 안정을 찾고 나만의 일상 루틴을 고군분투하며 만들고 있다.

원래 하고 있던 탱고 레슨과 골프 레슨 이외에도 델레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5월부터 스페인어 과외도 시작했다. 덕분에 일주일이 꽉 차고 있다는 느낌. 

바쁘게 살아야지만 때때로 나를 찾아와 좀먹는 근원적인 외로움이나 우울감 같은 부정적 심연의 늪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일요일 루틴은 일주일 치 식료품 장보기다. 일요일 오후에 가면 사람이 끔찍하게 많지만 오전은 한산해서 힘들고 괴롭더라도 무조건 오전 일찍 일어나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간 해먹거나 준비하는 것들을 찍어보았다. 확실히 소고기의 나라라 소고기가 싸서 많이 먹었다... 이러다간 정말이지 고지혈증 걸릴 거 같으니 채식 위주로 좀 식단을 바꿔야겠다


벼르고 벼르던 탱고 슈즈도 기본으로 하나 맞췄다. 골프도 이제 배운지 한달 되었는데 갈수록 폼이나 스윙이 실력이 는다고 칭찬을 받고 있어서 그런지 재미있다.
처음으로 이 나라에서 머리도 해보았다. 이 나라는 사람들이 염색을 많이 하는 편이라 염색 비용이 비싸지 않다.



그 외에는 간간히 오는 친구나 지인들의 연락을 통해 그들의 소식도 듣고, 한국 소식도 듣고(열심히 시사 프로그램도 보고 있다) 그렇게 살고 있다. 

사람들이 내 걱정을 많이 한다는데, 내가 적응을 못 할까봐 걱정한 거라기보다는 - 너무 적응을 잘해서 안돌아오고 거기에 오래 있을까봐(...) 걱정하는 거였다. 이런!


몸은 떨어져 있고 시간도 차이가 나지만 이렇게 그들을 그리워하면서, 가끔 마음을 표현하며, 서로 연결된 채로 내게 주어진 일상을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Diario BA #1 아르헨티나라는 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