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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얀 Nov 21. 2024

하늘과 새싹과 땅과 땀

아이와 텃밭 생활 2년의 기록



텃밭,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봤을 로망.

텃밭을 가꾸어 자급자족의 삶을 이루는 것은 우리 가족에게도 로망이었다.



 몇 해 전, 아이 친구네 가족이 주말농장을 시작한다는 말에 충동적으로 옆 이랑 하나를 빌렸다. 농사라고는 학부 시절 농활이 전부였는데 덜컥 밭을 분양받다니. 농활의 고통은 이미 아스라해질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가능했다. 무식해서 용감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텃밭의 청사진을 그렸다. 호기롭게도 2년 간의 텃밭 생활의 서막이 열렸다. 두 해 동안 우리 가족은 이랑 하나에서 5평 땅까지 밭의 규모를 키웠다.


우리 가족의 주말농장 첫 출근날

 

 

 첫 해에는 들인 노력에 비해 농작물이 잘 자랐다. 초짜 농부는 상추가 그렇게 잘 자란다는 말에 지레 겁을 먹고 아주 소박하게 밭을 일궜다. 땅을 고르고, 멀칭을 하고, 모종을 심었다. 여러 종류의 작물을 아주 조금씩만 파종했다. 주말마다 밭에 나가는 건 우리 가족의 일과가 됐다. 작물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고 물을 주었다. 아이도 같이 땅을 파고, 물을 주며 고사리손을 보탰다. 잎채소는 무럭무럭 자랐고, 작디작은 아기 열매들이 맺히는 모습은 신비로웠다. 밭에서 갓 딴 푸성귀의 내음을 맡고, 싱싱한 맛을 본 후에는 마트에서 구입한 야채는 성에 차지 않았다. 직접 심고 물을 준 아이는 토마토도 오이도 잘 먹었다. 아이들 먹거리 교육에 직접 재배하는 활동이 필수적인 이유를 알게 됐다.

 물론 모든 작물이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향이 강한 작물은 벌레를 잘 먹었다. 샐러리, 고수, 케일, 루꼴라, 브로콜리는 모두 결과가 좋지 않았다. 땅과 해와 비가 아무리 도와줘도 안 되는 것도 있었다. 우리가 사 먹는 샐러리, 고수, 케일, 루꼴라, 브로콜리에는 얼마나 많은 약품이 쓰였을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 이후로는 재배가 쉽지 않은 작물들은 가능한 유기농으로 신경 써 고르게 됐다.



 텃밭은 한 해 두 개의 사이클로 돌아간다. 봄에 심어 여름에 수확하면 밭을 다시 한번 갈아엎고 가을밭을 새로 만든다. 그때는 주로 구황작물과 김장에 쓰일 작물을 심는다. 가을 파종을 하기 전 여름이라는 시험대를 통과해야 가을밭을 준비할 수 있다. 여름의 뙤약볕과 장맛비는 식물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름이지만, 농부에게는 고난이다. 더위에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장마에 비가 없는 날을 골라 밭에 나가는 일 또한 쉽지 않다. 급기야 밭은 방치되고 잡초로 뒤덮인 고랑은 초짜 농부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잡초의 선전 포고로 전쟁이 시작된다. 한 번 잡초로 뒤덮인 밭에서 혹독한 김매기전을 치른 후에는 항복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밭에 뜸했던 시간만큼 자라 있을 잡초를 생각하면 더욱 텃밭에 가기 싫어진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 아니라 아는 만큼 두려움도 커질 뿐이다. 가을 작물은 언감생심 우리의 첫 해 농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이듬해에는 첫 해의 (방치된 여름 밭은 잊은 채) 성공에 힘입어 보다 넓은 곳에 텃밭을 분양받았다. 무려 5평이었다. 5평의 땅이 어느 정도가 되는지 가늠도 못하는 여전히 초보 농부였다. 그래도 땅이 넓어진 만큼 더 많은 작물을 심었다. 지난해에 실패한 작물은 피하고, 잘 자랐던 작물들 위주로 모종을 골랐다. 야심 차게 시작한 두 번째 텃밭이지만 하필 비가 많이 내려 수확이 좋지 않았다. 당근은 물렀고, 토마토는 벌레를 먹었다. 전해에는 토마토가 너무 쉬웠었는데, 못 먹고 버려지는 토마토를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땡볕에 노동한 보람이라곤 없으니 텃밭에 가는 재미가 점점 사라졌다.

 수확이 좋지 않았던 여름밭이 아쉽고, 가을 파종을 못해본 것도 아쉬워 이번에는 가을밭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밭을 갈아엎고 멀칭을 새로 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가을 텃밭은 잡초 걱정이 없다. 벌레가 많다는 배추는 용기가 나지 않아 무와 파만 심었다. 잡초도 잘 자라지 않겠다, 심고 나서 해 준거라곤 없는데도 무와 파는 기특하게도 알아서 잘 자랐다. 이렇게나 많은 무를 수확하게 될 줄이야. 무가 너무 많아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처음으로 동치미도 직접 담고, 그래도 남는 무는 싸들고 친정으로 향했다. 엄마에게 남은 무를 안겨주면 엄마는 석박지를 담가주셨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수확이 좋았던 것도, 결실이 미진했던 것도 결국 땅과 해가 준 결과물이었다. 농부의 게으름이나 부지런함이 결과로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첫 해에는 날이 참 좋았다. 작물들이 자라기 좋은 조도와 강수량이었다. 작물을 키워주는 것은 자연이지 농부가 아니었다. 밭에서 풀 한 포기의 생명력은 우리의 땀방울 보다 강했다. 우리의 어머니 자연의 위대함 앞에 무릎을 꿇으며 우리 가족의 텃밭 생활은 마무리되었다.


 그럼에도 땀으로, 정성으로 농작물을 길러내시는 세상의 모든 농부님들께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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