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겨울의 찬기가 채 가시지 않은, 따스한 봄 햇살이 구름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애매한 계절. 3월이다.
"어! 오늘 우리 시밀러룩이다!"
약속 장소에서 만난 친구와 나는 둘다 그레이톤의 외투를 입고 있었다.
"오잉, 근데 넌 왜 자켓이야? 좀 춥지 않아?"
겨울이면 온 몸의 에너지를 빼앗기고 추운걸 질색팔색하는 나는, 친구를 보며 경악했다.
캐시미어 코트에 벨트로 야무지게 여민 나와 달리 친구는 가벼운 자켓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몰라? 지금 아무렇게나 입는 시기잖아."
"뭐라구?"
아무렇게나 입는 시기. 재밌는 표현이었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중간인지 어딘지 모를 애매한 시기. 각자 입고 싶은대로 아무렇게나 입는 계절.
체감상 겨울인지 봄인지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이 계절은 흡사 그레이존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니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그럴싸한 명분이 생긴다.
그 중간지대를 해석하는 일은 저마다의 몫이다.
기존의 모습을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동태를 살피는 사람(이를테면 나같은)이 있는가 하면,
춥든 말든 다가올 봄을 온몸으로 맞이할 준비가 된 사람(이를테면 친구같은)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단순히 추위를 못 견디냐 잘 견디냐, 패션에 관심이 없냐 많냐의 차이를 넘어,
어쩌면 '기대'의 영역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어제는 추웠지만 오늘은 더 따뜻할거란, 봄에 한발 더 가까워질거란 기대.
자, 봄이여 오라!
가벼운 차림으로 나선 오늘. 찬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젠장, 춥다.
아무렇게나 해도 되고, 의외의 상황에 헛웃음이 나기도 하는 이 애매한 계절이 꽤나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