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가는 시.공간과 팔자..
장애아이들과 만나면서 정말 궁금했다. 이렇게 특별한 타자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그리고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해'였다.
그리 길게 살아 본 경험도, 그리 많은 다양한 사람을 만난 경험도 없던 나에게 이렇게도 생소한 타인이란... 정말 쉽지 않았다. 어떤 타인은 학교에서 수업하고, 점심 잘 먹고 갑자기 뭔가에 꽂쳐서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학교를 이탈해서 2박 3일 만에 서쪽 끝... 군사 분계선을 넘으려다 탈진해 쓰러져 군인아저씨들 손에 이끌려 부모에게 이관되었던 친구도 있었고...(물론 담임인 나는 거의 초죽음이 되었고 세상의 알고 배웠던 모든 신들께 울부짖으며 기도했고...라디오 방송에 계속 '찾아요.'를 했었던..ㅠ.ㅠ) 요즘에도 또다른 자폐스펙트럼 혹은 기타 명명하지 못하는 각양각색의 꿩의 부채꼬리 같은 모습을 삶에서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화두로 삼아 지금껏 질문에 몰두하는 것은 알고 보면 '나는 누구인가?'에 귀결되고 싶어했던 질문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랬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왜 요즘 이러는지.. 궁금했고 그래서 나의 여덟개의 글자를 읽어주는 사람을 찾아가게 되었던 거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내 얘기를 하러 갔는데.. 얘기하다보니 장애아이들의 부모, 가족, 친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이들 뿐 아니라 편고된...소위 치우친 경향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역시나 치우친 모습을 보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상담사는 자신이 가장 보람을 갖게 된 것은 그렇게 어려움이 있는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한계와 운명을 이해하게 된 것이 수확이고 자부심이라 결론 짓는 모습을 보고서다.. 어쩜 나는 우리 인간들의 운명과 장애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의 운명에 대한 객관적이고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그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상담사와 이야기 하면서 맞닿드리게 된 문제가 있었다.. 아직 극복하지 못한 내적 갈등과 웅크러진 감정의 실타래를... 그래서인지 누군가가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 순간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그의 설명이 현학적인 모습도 감성적인 위로도 아닌데 받아들이는 나는..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았고..마치 지난날 고난함을 위로해 주는 말들 같은 그런 것이었다. 오늘 그런 시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에른하르트의 '소멸'... 즉..써서 자신의 좋은, 혹은 나쁜 기억을 소멸해야 하는 시간에 다다름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올해 과연 지난 시간의 아픔과 대면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이런 질문 자체는 이미 도전 받고 있고, 의지의 싹도 있다는 거다. 그런데 이렇게 밍기적 거리면서 시간이 지나길... 그런 생각이 익어가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사람은 40이 되어서 비로서 '나'로 설 수 있게 된 것이고... 나 역시 지난 20년간 자신의 운명을 실현하기 위해 바닥을 치며 올라온 사람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땅이 나의 운명과 함께하는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많은 징조가 있었지만 뭔가를 맹신하는 사람이 아니니 늘 그러려니 했을 뿐 인정하지 못하는 그저 우연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우연이 잦으면 필연이고 운명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런 경우가 그 예라 생각했다.
40세에 시작된 다른 인생이 20년을 지나면서 향후 20년을 생각하며 준비한다는 것이 세속적인 나이로 판단해서는 답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잡 소리 덮고... 올해는 지난 시간의 아픔과 고통과 직면해서 '소멸' 행위를 해야 겠다는 맘이 드는 시간이다.**